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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NER VIEW] <엘리자벳>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통제감 [No.143]

글 | 누다심 사진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2015-09-01 4,713

사람은 통제하고 싶어 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과 환경까지,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 싶어 한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이 있다. 조선 시대의 평양은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였다. 중국을 오가는 사신이나 상인들이 꼭 들르는 곳이고, 내로라하는 유력가들도 많이 살고 있기에 평양감사는 모두가 탐을 내는 자리였다. 그러나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스스로 원하지 않으면, 자기가 결정하지 않는다면 시킬 수가 없는 법.


이제 갓 태어난 아기부터 죽음 직전의 노인까지 누군가 억지로 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을 싫어한다. 뭐든 하라면 하기 싫어지고, 하지 말라고 하면 갑자기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 역시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의 대표적 예다.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하며 자신의 선택을 비난하는 것도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 때문이다. 일례로 약속 시간에 늦을까 싶어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으나 코앞에서 버스를 놓쳤다고 하자. 이런 상황에서 더 빨리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 이런 비난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아침에 준비할 때는 버스를 코앞에서 놓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준비해서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탔을 때 자신의 빠른 준비를 칭찬하는 것도 착각이다. 사실 세상일이란 벌어진 다음에야 모든 것이 선명하지 그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통제했다는 듯, 혹은 통제했어야 한다는 듯 생각한다. 이를 가리켜 통제력 착각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은 착각을 해서라도 갖고 싶어 할 정도로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중요시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니의 맞선 자리에 참석했다가 황제의 눈에 띄어 황후가 된 그녀는 황후에 어울리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처음부터 자신이 원했던 삶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황실 생활에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불가능했다. 겉치레로 가득 찬 그곳에서, 시어머니와의 갈등과 남편의 무관심까지 그녀는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까지 빼앗겨 무력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난 싫어, 그 어떤 강요도 의무들도 날 이제 그냥 둬
낯선 시선들 속에 숨이 막혀버릴 것 같아
난 자유를 원해
당신들의 끝없는 강요 속에 내 몸이 묶인다 해도
내 영혼 속 날개는 꺾이지 않아 내 삶은 내가 선택해

- ‘나는 나만의 것’ 中

불행 중 다행으로 엘리자베트의 무력감을 보완할 만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아름다움이었다. 여성에게 아름다움이란 생명과도 같다.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발휘할 좋은 기회다. 아름다움으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엘리자베트 역시 뛰어난 외모로 남편의 마음을 얻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계략으로 그녀는 남편에게마저 배반감과 무기력감을 느끼고 마침내 황실을 떠나 어느 한 곳에서도 쉬지 않고 세상을 배회했다.


엘리자베트가 자신만의 통제력을 추구하는 데 시간을 보낼수록 그의 아들 루돌프 황태자는 더욱 무력감에 사로잡혀만 갔다. 따뜻한 사랑이 필요했던 어린아이는 결국 오랜 시간 동안 무력감에 싸여만 갔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엘리자베트를 떠올렸지만, 정작 어머니는 그의 옆에 있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극단적 갈등 속에서 루돌프는 엘리자베트를 찾아갔으나 그녀는 아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기댈 곳이 없었던 루돌프는 무력감 속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자살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극단적 무력감 속에서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 모든 상황을 끝냄으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의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아들에게 무력감을 주었듯이, 이번에는 아들의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엄마에게 무력감을 가져다주었다. 이를 계기로 엘리자베트는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외국을 떠돌며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평민이 아니었다. 황실을 떠났어도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없는 신분이었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력감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녀는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토드(죽음)를 택했다.

엘리자벳 이제 내게 와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만의 여인
어둠은 끝났어 영혼의 안식처를 원해 기억은
모두 지우고 이제는 자유를 찾아 세상 따윈 버려 
이 세상을 가라앉게 둬 우리는 영혼 속으로 
안식과 자유를 향해
세상을 스치며 나를 지키려 했어 언제나 간절히 
최후를 갈망했어
더 이상 무엇도 중요하지 않아
내 주인은 영원히 나야 

‘베일은 떨어지고’ 中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양날의 검과 같다. 우리의 삶을 살맛 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죽음으로 이끌 수도 있다. 자신만의 무력감을 극복하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얻기 위한 선택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무력감을 선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유란, 진정한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누다심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을 꿈꾸는 이.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연과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3호 2015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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