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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ECIAL INTERVIEW] <라이온 킹>.<스파이더맨> 조명디자이너 도널드 홀더 [No.94]

글 |이민선 사진 |박진환 2011-07-25 4,978


모든 조명 디자인은 자연에서 나온다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이 모두 착석하면 극장 안은 온전히 어둠에 쌓인다. 제각각 무언가를 상상하는 찰나,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 관객은 새로운 세상으로 입장하게 된다. 무대 위 조명은 시시각각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관객을 이끌며, 주인공의 감정 전달에 힘을 싣기도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 중인 조명디자이너 도널드 홀더는 조명에 대해 그의 멘토인 제니퍼 팁튼의 말을 인용했다. “99퍼센트의 관객은 조명을 의식하지 않지만, 100퍼센트의 관객은 조명에 영향을 받는다.” 도널드 홀더는 <라이온 킹>과 <남태평양>의 조명 디자인으로 토니상을 받았고, <스파이더맨>을 비롯하여 <무빙 아웃>, <속속들이 모던한 밀리>와 <시라노 드 벨주락> 등의 무대에 조명을 밝혔다. 그는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4일까지 열린, ‘아르코 국제 공연 예술 전문가 시리즈’의 일환인 국제 조명 디자인 심포지엄 및 워크숍을 위해 방한했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명디자이너들이 워크숍의 수강자로 참여해 도널드 선생님의 오랜 경험과 생각을 배웠다. 조명 기술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기술의 시대적 변화, 조명 실습뿐만 아니라 뮤지컬 창작을 위한 협업의 중요성, 미국의 조명 디자인 산업에 대한 귀띔까지 일주일간의 커리큘럼치고는 굉장히 알찬 강의가 이어졌다. 친절하고 꼼꼼한 그의 수업 분위기와 인터뷰 내용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한국 방문은 처음인 것으로 아는데, 한국의 조명디자이너들과 워크숍을 진행해본 소감을 말해달라.

조명디자이너들은 어느 나라든 비슷한 것 같아서 세상이 작다고 느꼈다. 같은 일을 하는 이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단지 수업 때 조금만 덜 조용했으면 좋겠다. 한국에는 처음 왔지만 아시아 국가에 가봐서 이런 분위기가 놀랍지는 않다.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긴 하지만 훌륭한 학생들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쳤던 어린 학생들에 비해서(그는 예일대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 출강했다), 현업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들이라 정보를 얻고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수업에 집중했다.


어릴 때부터 공연을 많이 접하고 빛에 매력을 느낀 것 같은데, 조명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글쎄, 내게는 빛을 다루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무대 뒤에서 조명 작업을 맡았고 그 일을 정말 재밌어했다. 그리고 이후에 그 일을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누군가가 내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니, 보이스카우트 캠프파이어에서 불을 붙이는 건 늘 내 몫이었고 오솔길에 등을 밝히는 것도 내가 했다. 난 늘 빛 담당이었다. 나 자신이 이 일을 할 때 열정적이라는 걸 느꼈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조명은 무대 위 세계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조명디자이너로서 작품에 참여해서 처음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대본을 읽는다. 두 번 읽는데, 처음에는 관객의 입장에서 쓱 읽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조명을 고려해 분석하며 읽는다. 하지만 내가 처음 해야 할 일은 내가 고용되는 시기에 따라 다르다. 어디서 공연이 열리고 어떤 과정으로 진행될지에 따라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달라진다. 제작 초기에 투입되었을 때는 공연의 목적이나 앞으로의 과정 등 더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개입할 수 있다.


대본을 읽으면 조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나?

대본을 읽고 나서 이 장면이 어떤 그림일지 상상한다. 당신이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 나도 그렇다. 대본을 읽고 나면 빛이 그려진다. 그 상상 속의 빛이 무대 위에 실현된다. 대본을 두 번 읽은 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빛이 어디에서 들어오고, 왜 빛이 존재해야 하며, 어떻게 공간을 분할하고 드러낼지 등을 고민한다.


워크숍 때 조명이 무대 위에서 시공간 정보를 주고 스토리텔링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조명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시각적 맥락을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조명은 관객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공연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준다. 조명이 작품 전체의 일관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요소로서 기능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조명은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의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어서, 자기표현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에 반응하는데, 나의 반응은 무대 위에서 빛으로 표현된다. 나는 빛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그들의 공감을 얻으려 한다.

 

“점점 많은 관객들이 조명의 역할을 알게 되고 조명 디자인에 더 많은 기대를 한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공연의 예산은 줄었고, 제작 과정은 더 복잡해졌다. 더 높은 기술에 대한 요구와 최고의 조명 디자인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정해진 기간과 예산 내에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내게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프로듀서와 프로덕션 매니저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한지 충분히 설명한다. 작업 조건이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내 의사를 전달하고 납득시켜서 그들이 계획을 바꾸도록 한다. 하지만 그 작업 조건에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평소보다 더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기구와 장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려해서, 가능한 한 목표한 바에 맞추려고 더 계획적으로 일한다.

 

오랜 경험으로 다져진 노하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 같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도 옛날에는 실수를 굉장히 많이 했다.


최근 조명 기술의 경향으로 LED를 꼽았다. LED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일단 LED의 큰 장점은 아주 밝은 빛을 낸다는 것이다. LED는 공간을 덜 차지하고 유지 보수가 간단하며 에너지가 적게 소모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느낌을 표현하긴 어렵다. 인위적이다. 햇빛이나 달빛, 자연스러운 하얀 빛을 표현하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다. 또한 공연의 리듬에 맞춰 조명을 조작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LED가 분명 최신 기술이고 나 역시 그 장점을 알고 사용하지만, 모든 경우에 대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근래에는 사실적인 세트가 자주 전환되는 것보다 단순한 구조물 위를 소품과 조명이 채우는 무대가 눈에 많이 띈다. 무대 디자인의 변화에 따라 조명 디자인에 어떤 변화가 있나?

무대 디자인이 단순해질수록 조명 디자인은 더욱 복잡해진다. 세트가 했던 일의 많은 부분을 조명이 하게 되었다. 스토리텔링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작업 스타일을 비교했을 때, 기술의 발전이  아닌 개인의 취향에 따른 변화가 있는가?

나는 옛날보다 지금 더욱 모험이 될 만한 시도를 하며 위험을 감수하곤 한다. 지금은 나의 실력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도전이 가능하다. 젊었을 때는 소심하게 안전한 선택을 주로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획기적인 디자인을 시도하게 된다. 대체로 젊은 친구들이 과감하고 나이가 들면 무난한 선택을 하곤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변하는 듯하다.

 

<라이온 킹>이나 <스파이더맨> 등 당신이 참여한 작품에서는 강렬한 색상이 눈에 띈다.

강렬하고 대비가 강한 색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주 확실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줘서 좋다. 하지만 작품에 어울리는 적절한 색상을 고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뮤지컬은 공동 작업이다. 기술의 측면보다 작품의 컨셉에 맞춰 작품에 접근해야 한다. <라이온 킹>을 만들 당시에 스태프들은 모일 때마다 아침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긴 회의를 많이 했다. 줄리 테이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해야, 작품의 컨셉과 의도에 맞는 조명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자극했다.”

 

 

뮤지컬 제작에서 협력자 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업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으며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의사 전달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은 협의를 해야 할 텐데, 조명 디자인이 전체 공연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의 경우,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가 빠지면서 새 크리에이티브 팀이 들어와서 공연의 전체적인 톤이 바뀌었다. 그때 한편으로는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소중한 친구를 보호하려는 마음 때문에 바뀐 부분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저항하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공연 전체를 위해서 이런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스파이더맨> 같은 경우는 굉장히 특별한 상황이다. 내가 바라던 대로 작품이 완성되진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이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스파이더맨>은 국내 관객에게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어떤 공연인지 소개해달라.

프리뷰 때 있었던 사고들은 기술적인 결함이 아닌 사람의 실수 탓이었다. 바뀐 공연에서 더 많은 플라잉을 선보이지만 더 안전해졌다. 어떤 정신 나간 청중들은 ‘누가 또 안 떨어지나’ 하며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스파이더맨>은 정말 흥미롭고 평범하지 않은 작품이다. 원작의 이야기를 오직 공연에만 맞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스토리가 분명하고 관객들은 무대 위 배우들의 열연에 환호한다. 원작이 만화라는 점에서 박스가 열리면서 집이 등장하는 팝업형 세트와 만화처럼 강렬한 배경색을 사용했다. 만 개의 LED가 설치된 쇼데크로 최신 기술을 보여준다. 전통적인 형식이 아닌, 서커스와 인형극의 요소와 로큰롤이 만난 새로운 공연이다. 뉴욕에 오면 꼭 봐야할, 머스트 씨(Must See) 뮤지컬이다.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난관을 겪고 도전을 감행한 작품이기 때문에, 이 작품이 무대에 올려졌다는 게 굉장히 자랑스럽다. 비평가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관객들은 아주 좋아하고 있다.

 

“나는 자연을 공부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 실제 환경에서의 빛을 완벽히 이해해야 무대 위에서 현실 세계를 비추는 조명뿐만 아니라 환상을 표현하는 빛도 만들어낼 수 있다. 멋진 풍경을 보면 이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명 기구가 어울릴지 고민해보곤 한다.”


워크숍 때 빛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사진과 명화 등을 보여준 것이 흥미로웠다.

사진과 그림 속 빛의 방향과 색을 공연의 조명 디자인에 적용하곤 한다. 짧은 시간 내에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아이디어가 쏟아질 리 없다. 평소에 시간을 내서 디자인에 도움이 될 그림이나 사진을 공부하도록 학생들에게 권유한다. 또한 자연 풍경을 보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고, 풍경을 보며 가만히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권하기도 한다.

 

그림과 사진이 조명 디자인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부터 명화를 굉장히 열심히 연구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캔버스 위에 빛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그림들을 보면서 빛이 어디서 왔고, 왜 이 부분에 빛이 나는지 고민했다. 내가 화가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작품으로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도 좋아하는데, 그 역시 빛을 많이 연구했고 그의 작품에서는 빛이 인물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의 그림을 무대에서 본다면 얼마나 훌륭할까 생각하곤 한다. 머릿속에 그렸던 컨셉이 실제로 무대 위에서 실현되고, 그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될 때 그 공간은 살아 있는 것이 된다.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어떤 사연과 감정이 담겨 있는지 분석하는데, 빛은 그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유용하며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다.

 

조명디자이너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라이온 킹>이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에 올려졌던 때가 생각난다. <라이온 킹>이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그곳의 문화를 담고 있지 않나. 요하네스버그의 빈민 지역인 소웨토의 아이들에게 공짜로 공연을 보여주었는데, 난생 처음 좋은 극장에서 환상적인 공연을 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았을 때 정말 감동적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4호 2011년 7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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