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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MUSICAL] <로미오 앤 줄리엣> 연출 비교 [No.144]

글 | 안세영 2015-10-08 7,160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프랑스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과 안무가 레다가  재창조한 작품이다. 유려한 음악과 격정적인 안무,  푸른색과 붉은색을 대비시킨 강렬한 무대미술,  그리고 죽음을 형상화한 캐릭터까지 매력적인 요소로 가득한  이 작품은 2001년 초연과 함께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동안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이 늘 같은  모습으로 공연돼왔던 건 아니다.이미 5년 전에 프랑스에서  뉴 버전 공연이 올라갔을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라이선스 공연 또한 저마다 다른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오리지널 공연에서 변형된  <로미오 앤 줄리엣>의 색다른 버전들을 소개한다. 


프랑스 뉴 버전 공연

사실 한국 관객은 이미 두 차례 새로운 <로미오 앤 줄리엣>을 맛본 바 있다. 2007년과 2009년 내한한 <로미오 앤 줄리엣>이 초연의 무대, 의상, 안무, 음악 등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극작·작곡·작사를 담당한 프레스귀르빅은 두 공연에서 편곡을 넘어 넘버 재구성을 시도했다. 2007년에는 기존 넘버 일부를 삭제하고 신곡 ‘뚱뚱해(Grosse)’, ‘영원히(A la vie, a la mort)’, ‘사랑하고 싶어(Je veux l’aimer)’, ‘대가는 무엇인가(Quel est le prix)’, ‘인형들(Poupees)’ 다섯 곡을 추가했으며, 2009년 커튼콜에서는 또 다른 신곡 ‘스무 살이 된다는 건(Avoir 20 ans)’을 선보였다. 아시아 투어 공연을 통해 변화의 기틀을 다진 <로미오 앤 줄리엣>은 마침내 2010년 파리에서 뉴 버전 공연의 막을 올렸다. 초연의 부제 ‘증오에서 사랑까지(De la haine a l'amour)’와 구별되는 뉴 버전의 부제는 ‘베로나의 아이들(Les enfants de verone). 부모 세대가 물려준 증오의 유산으로 인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자녀 세대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그해 발매된 실황 DVD와 초연 실황 DVD와 비교하면 두 공연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간결하고 웅장했던 세트는 아담하고 디테일해졌고, 조명은 전반적으로 어두워졌다. 가사와 대사 수정을 통해 캐릭터도 조금씩 변했다. 허수아비 영주는 탐욕적인 권력가가 됐고, 줄리엣의 아버지 캐플렛 경도 권위에 집착하는 가부장적인 인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캐플렛 부인이 줄리엣에게 결혼을 권하는 넘버 ‘결혼해야만 해(Tu dois te marier)’는 초연 때의 유쾌한 곡이 아니라 남자들의 권력 다툼 때문에 팔려가듯 결혼해야 하는 여자들의 운명을 노래하는 비통한 곡으로 변했다. 한편 자존심이 센 티볼트는 캐플렛 경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그는 무도회 한가운데서 홀로 ‘내 잘못이 아니야(Cest pas ma faute)’를 부르는데, 손을 뻗을 때마다 주변의 앙상블이 그대로 쓰러져버리는 안무는 그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후 죽음의 손짓에 맞춰 앙상블이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인형들’ 장면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티볼트와 머큐시오가 서로를 마주함으로써 둘의 죽음이 암시된다. 초연 캐스트는 로미오 역의 다미앙 사르그와 티볼트 역의 톰 로스만 빼고 모두 교체됐는데, 달라진 출연진도 캐릭터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초연 당시 17세의 나이로 소녀 같은 줄리엣을 보여줬던 세실리아 카라와 달리, 뉴 버전에 참여한 조이 에스텔의 줄리엣은 성숙하고 강단 있는 모습이다. 또 초연 머큐시오 필립 다빌라가 로미오와 벤볼리오 사이에서 듬직한 맏형 역할을 했다면, 현재는 삼총사 중 가장 젊은 배우 존 아이젠이 말썽쟁이 막내 같은 머큐시오를 연기하고 있다.


넘버 구성에서도 변화가 눈에 띈다. 기존 넘버 ‘왜(Pourquoi)’가 사라지고 대신 내한 공연에 사용했던 ‘인형들’, ‘대가는 무엇인가’와 커튼콜 넘버 ‘스무살이 된다는 건’이 추가되었다. ‘세상의 왕들’ 뒤에 이어졌던 머큐시오의 넘버 ‘광기(La folie)’는 수정을 거쳐 ‘결투(Le duel)’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주가 로미오를 추방한 뒤 부르던 넘버 ‘권력(Le pouvoir)’은 2막 첫 곡이 되었고, ‘베로나 2(Verone 2)’라는 리프라이즈 넘버가 추가되었다. 내한 공연에 없던 신곡도 추가됐다. ‘티볼트(Tybalt)’, ‘맵 여왕(La reine Mab)’, ‘기도(On prie)’가 그것이다. ‘티볼트’는 어렸을 적 부모를 잃은 티볼트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넘버, ‘맵 여왕’은 광기 어린 머큐시오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넘버다. 두 곡이 추가되면서 티볼트와 머큐시오의 비중이 강화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뿐 아니라 ‘베로나의 아이들’ 모두를 조명하고자 한 뉴 버전의 의도가 느껴진다. ‘기도’는 추방당한 로미오와 남겨진 줄리엣의 듀엣곡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는 연인의 모습을 담았다.


올해 내한 공연은 신곡을 포함한 뉴 버전의 <로미오 앤 줄리엣>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DVD에서 벤볼리오를 연기한 씨릴 니꼴라이가 로미오로 변신하고, 줄리엣 역에 조이 에스뗄, 티볼트 역에 톰 로스, 머큐시오 역에 존 아이젠이 출연한다.



헝가리 라이선스 공연 


<로미오 앤 줄리엣>은 라이선스 공연의 현지화를 허용한 작품이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로미오 앤 줄리엣>은 무대, 의상, 음악, 캐릭터 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헝가리 공연은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버전이다. 일단 비주얼부터 남다르다. 스모그가 깔린 칙칙한 무대는 슬럼가를 연상시키고, 중세와 현대가 뒤섞인 의상은 훨씬 탈 시대적인 느낌을 준다. 넘버에 있어서는 ‘시인(Le Poete)’, ‘딸이 있다는 건(Avoir Une Fille)’, ‘왜(Pourquoi)’가 빠지고 기존 곡을 편곡한 새로운 넘버들이 추가됐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신선한 캐릭터 해석이다. 티볼트는 줄리엣의 사진을 담은 목걸이와 줄리엣을 닮은 인형을 애지중지하며 흥분하면 발작을 일으키는 병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줄리엣의 약혼자인 파리스는 비중이 대폭 늘었다. 그는 줄리엣이 약을 마신 이후 ‘광기’를 개사한 솔로곡을 부르며 분노를 표현하고, 이후 ‘결투’의 리프라이즈 곡을 부르며 로미오와 몸싸움을 벌인다. 머큐시오와 벤볼리오는 전형적인 뒷골목 패거리처럼 묘사된다. 머리를 세우고 가죽 잠바를 걸친 이들은 ‘세상의 왕들(Rois du monde)’ 중간에 랩과 팝핀을 선보이기도 한다. ‘죽음’은 아예 사라졌다. 이 공연의 가장 파격적인 부분은 바로 엔딩. 줄리엣이 죽었다고 생각한 로미오는 자신의 몸에 줄리엣을 묶은 채 목을 매서 자살한다. 뒤이어 깨어난 줄리엣은 로미오의 단검으로 가슴을 찌르는 대신 손목을 긋는다. 컬트적인 매력의 헝가리 공연은 DVD로 발매되어 오리지널 공연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았다. 



일본 라이선스 공연


일본의 <로미오 앤 줄리엣>은 다카라즈카 극단에 의해 처음 공연되었다. 다카라즈카는 여배우가 남성의 역할까지 모두 소화하는 극단으로 화조(花組), 월조(月組), 설조(雪組), 성조(星組), 주조(宙組)의 다섯 개 팀이 돌아가며 공연을 올린다. 2010년부터 성조를 시작으로 여러 팀이 <로미오 앤 줄리엣>을 공연했으며 각 팀의 공연은 실황 DVD로 발매되었다. 다카라즈카의 공연에는 ‘죽음’ 외에도 ‘사랑’이라는 또 하나의 추상적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죽음과, 흰 드레스를 입은 사랑은 서곡에서 함께 춤을 춘다. 이후 인물들이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힐 때는 죽음이, 행복한 사랑 노래를 부를 때는 사랑이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오리지널 공연에 없던 몬태규 경과 유모를 따라다니는 멍청한 시종 피터가 새롭게 등장한다. 엔딩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영혼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추가되어 오리지널 공연보다 밝은 분위기 속에 극이 마무리된다. 2011년에는 토호 극단이 남녀가 등장하는 일반적인 라이선스 공연으로도 제작했다. 출연진은 바뀌었지만 연출은 다카라즈카 공연을 연출했던 코이케 슈이치로가 그대로 맡았다. 당시 줄리엣 역으로는 실제 나이 18세, 20세의 신인 배우들이 발탁되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4호 2015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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