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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REATIV MINDS] <리심>의 박윤영, <사랑을 포기한 남자>의 민준호 [No.95]

글 |박병성 사진 |이맹호 장소협찬 | 전광수 커피하우스(대학로점) 02-3672-0233 2011-08-15 5,921

 

어린싹을 키우는 마음으로

 

지난해 시작한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가 달마다 한 작품씩 여섯 작품을 선보인 후, 후반기에는 7월부터 다시 네 작품을 발표한다. 더뮤지컬은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의 작품에 참여한 창작자들을 소개해오고 있는데, 이번 호에는 전반기 공연 중 아직 소개되지 않는 두 작품 <리심>, <사랑을 포기한 남자>의 박윤영, 민준호를 만났다. 극단 간다의 대표인 민준호 연출은 물론이고 박윤영 작곡가 역시 공연계에서 낯선 이름이 아니다. 새로운 연극성을 실험해왔던 민준호 연출, 그리고 <나르시시아>, <솔거의 꿈> 등 안정된 기량을 보여주었던 박윤영 작곡가에게 <사랑을 포기한 남자>와 <리심>에 대해 들어보았다.

 

문화의 번짐과 사랑, <리심> 박윤영

 

심리학을 전공하고, 실용음악학과에서 배우다, 뉴욕대로 유학을 떠났다. 갑작스러웠던 것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윤복희 선생님을 뵈었는데 네 살짜리 꼬마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셨다. 나를 어른으로 대해주고 있다는 기분을 받았다. 연기도, 노래도 잘하시고 굉장히 존경스러웠다. 아, 나도 저분처럼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뮤지컬을 하고 싶었는데 집안에서 반대했다. 어머님이 뮤지컬을 잘 만들려면 음악적인 기술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알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하셔서 심리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왜 리심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점을 부각시키려고 했는가? 리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흥미로웠다. 조선 시대에 프랑스인의 아내가 되어 프랑스에서 생활했던 사람이다. 자연히 이중 문화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중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리심에 끌렸는데 조사를 하다 보니 프랑스 공사였던 에밀 빅토르 꼴랑 드 플랑시란 인물이 흥미로웠다. 아버지가 작가인데 귀족 신분을 갖기 위해 이름을 고쳤다가 마을에서 쫓겨났다. 실제로 동양 문화에 조예가 깊어서 한문에 능통했다고 한다. 프랑스 문서가 공개되었는데 일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조선을 동등한 나라로 대우해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위키피디아에서도 굉장히 칭찬 일색이다. 6개월간 작업하고 리딩을 했는데 그렇게 짧게 할 작품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심>의 대본, 작사, 작곡을 모두 혼자 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외국에서 작업했을 때도 대본을 같이 썼다. 이번처럼 혼자서만 쓴 적은 없지만 공동으로 대본 작업에 참여해 왔다. 작년 에딘버러에 올렸던 작품도 그랬고, <나르시시아>도 공동 작가로 대본에 참여했다. 혼자 쓰니까 외로움이 있다. 잘 진행됐을 때는 괜찮지만 한순간 표류하기 시작하면 망망대해다. 내가 어디로 가든 잡아줄 사람이 없다. 그나마 오순택 선생님이 연출로 참여해 주셔서 표류하는 나를 많이 잡아주셨다.


조선이라는 시대상이나 사회상이 작품 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가. 너무 역사적인 사실에 얽매이려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리딩에서 드라마 위주로 축약하다 보니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측면도 있다. 너무 어두운 면만 드러난 것 같은데 프랑스에서의 파티 장면이라든가, 스펙터클한 장면들이 좀 있다. 그런 장면에서 각 나라의 문화가 드러날 것이다.

 

프랑스 자장가를 그대로 쓰기도 하고, 국악과 현대음악을 함께 사용하는 등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다. 이중 문화라는 측면이 음악적으로도 끌렸다. 조선과 프랑스가 각자의 소리를 내면서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다. 조선에 온 에밀의 노래는 서구적인 선율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고, 리심의 경우는 반대로 프랑스를 배경으로 서양 악기로 한국적인 선율의 곡을 만들어볼 계획이었다.

 

실제 존재했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다 보니 팩트와 픽션을 조합할 수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 구성하려 했는가? 리심을 소재로 한 소설이 두 권이 나왔고 그런 과정 중에 리심 허구설도 등장했다. 팩트는 궁중 무희인 리심이 프랑스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간 것도 명확하지 않다. 리심을 보호해주던 김정준이란 인물도, 에밀의 가족들도 모두 허구이다. 자살한다는 것도 일단 리딩 작업에서는 열어두었다. 이번 작업은 리심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변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얽매여 있었는데 그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리심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것에 주안점을 둘 생각이다.

 

주요 이야기는 에밀과 리심의 사랑이었는데, 이들이 그토록 사랑하는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리심>에서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 무엇인가? 에밀은 외로운 인물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나와는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세상의 끝이었다. 그곳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반쪽을 발견한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피어나서 사그러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은 내가 보라색이라면 배경이 빨강이냐, 파랑이냐에 따라 달라 보이지 않나.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별로 느껴본 적이 없는 리심이 기생이었다가, 노비가 되고, 다시 프랑스 공사의 부인이 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마찬가지로 프랑스인 에밀이 한국 사회에서 리심을 만나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리심> 작품 소개 조선 말, 국운이 기울어지는 시기, 천주교도인 부모님은 모두 죽음을 당하고 김정준 대감 집에서 벙어리로 숨어 살던 리심은 프랑스 공사 에밀의 눈에 들게 된다. 사랑에 빠진 에밀은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리심을 아내로 데려가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한다. 프랑스에서 리심은 노비가 아닌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지만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에밀과 리심. 김정준 대감은 기울어가는 조선에 에밀의 도움을 바라고, 리심 또한 안전한 곳에서 행복을 찾길 바랐으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는 둘을 갈라놓으려고 한다.

 


새로운 형식으로 말 걸기, <사랑을 포기한 남자> 민준호

 

이미 발상은 오래 전부터 준비해두었다고 들었다. 3년 전에 한 남자의 모노 드라마로 만들 생각을 하고 묵혀두었던 작품이다. 굉장히 수위가 세고 날것에다 잔인하고 거친 작품이었다. 모놀로그에서 나올 법한 노래를 단순하게 반복시키는 형식이었다.


스토리텔링을 도와주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분들은 대중들의 시각으로 봐주는 분들인데 내 작품이 굉장히 비대중적인 작품이어서 내가 먼저 CJ 쪽에 요구를 했다. 리딩 발표 공연은 그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한 사람의 내면을 둘로 나눈 부분이다. 한 명이 할 때는 배우의 능력을 보게 되는데, 둘로 나누니까 자아가 부딪히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고 관객들에게 친절해졌다.

 

여전히 내용이 세지 않나? 남자 관객들과 여자 관객들의 반응이 달랐을 것 같다. 많이 수위를 낮춘 것인데도 여자분들이 불쾌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연하고 의도했던 부분이다. 그 불쾌감이 나중에 남자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기를 바랐다. 그래도 생각보다 여성 관객들이 욕을 한다고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악인에게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거친 악인이 나오고 두섭(백 역)이가 부드럽게 노래해주면 순화되어서 그런지 큰 거부감이 없었다. 누구나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극을 바라지 않나. 여자들은 불편하기보다는 이해하는 쪽이었고, 남자들이 불편한 것은 뜨끔해서 그런 것이다. 내가 저런 생각을 하는구나 확인하게 되니까.


내용도 그렇지만 영상을 부각하려고 했다. 형식으로 내세운 것에 비해 활용이 미약했다. 내용을 포기하더라도 영상을 세련되게 써보고 싶은 것이 연출적인 욕심이었다. 리딩 공연에서는 영상이 드라마를 연계해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았다. 그 이상을 했어야 하는데 제작비의 한계가 있었다. 가장 원했던 것은 영상을 통해 뇌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LED TV를 여러 대 붙여서 마치 백남준 선생님 작품처럼 둥그렇게 구성되어서 열리고 펼쳐지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영상이 세 가지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가장 기본적으로 상상을 도와주는 배경이 되는 기능, 주인공의 시선을 보여주는 기능, 그리고 머릿속을 보여주는 기능이다. 그럴려면 시선에 따라 영상이 확확 변해야 한다. 디지털이 아니면 안 된다. 프로젝트가 꺼지고 켜지는 개념이니까 리딩에서는 그렇게까지 보여줄 수가 없었다.

 

내용까지도 형식에 맞추겠다는 의미인가? 내용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연은 무대에서만 가능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연출이고, 무대이기 때문에 이런 의미가 발생하는 것을 하고 싶다. 새로운 영상 활용을 통해 관객들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흑과 백은 자신 안의 서로 상반된 성격이 하나의 자아 안에 있는 셈이다. 흑이 백에게 심지어 “내가 사랑한 것은 너였다”고 할 정도로 둘은 다르지만 또 같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선과 악은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평가한 것이다. 내가 나쁜 일을 저지를 때 때로는 그것이 즐거울 때도 많다. 도덕적인 문제로 따지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애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나’를 좋아하는 자기애와, 그보다는 나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자기애. 사랑에서도 전자가 강한 사람은 이별 후에도 잘 잊지 못하고 집착한다. 후자가 강하면 욕하면서 잊어버린다. 둘의 반응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애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같다.

 

마치 음악이 나오기 위해 드라마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드라마의 배경으로 음악이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일반적인 뮤지컬에서는 좀 더 긴밀하지 않나. 상대 배우와 교류를 하다가 음악이 나와야 하는데, 모노뮤지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니 그런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형식을 빛내줄 음악이 필요하다. 영상으로 처리하든 아니면 무대에 사물로 등장하든 나 말고 함께 호흡해줄 대상이 필요하다. 영상으로 달팽이가 나오던 곡이 자연스러웠던 것도 받아줄 상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작품은 특이한 형식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 맞는 음악이 필요하다. 감정이 가장 고양되었을 때 음악이 나온다는 일반적인 뮤지컬의 원칙을 비교적 잘 따르고 있는데 오히려 그게 진부해 보인다. 음악이 애니메이션과 좀 더 싱크로율을 높여서 한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상의 사용도 두드러졌다. 실사 애니메이션을 사용하는데 진짜 실사는 부담스럽다. 다큐멘터리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변할 때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게 아마 디자이너의 센스일 것이다. 새롭다는 것은 좋은데 부담스러워서는 안 된다. (3D 영상으로 해보는 건 어떤가) 너무 복잡한 것보다 아날로그성을 지키면서 무대에서 상상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사랑을 포기한 남자> 작품 소개
헤어진 여인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한 남자가 수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잠이 들면 헤어진 여자에게 거친 욕을 하고 적나라한 감정을 배설하는 흑과, 그와는 정반대로 그녀에 대한 미련을 간직한 백이 등장해 한 남자의 이중 심리를 보여준다. 꿈과 욕망을 무대화한 독특한 극을 위해 영상이 무대의 배경이 되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보여주는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신인 뮤지컬 창작자들에게 작품 개발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글에서 소개되는 <리심>과 <사랑을 포기한 남자> 리딩 하이라이트 공연은 더뮤지컬 홈페이지(www.themusical.co.kr) 멀티미디어 코너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95호 2011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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