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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LIFE GRAPH] 박혜나 인생 그래프 [No.147]

글 |배경희 2016-01-29 3,920

단단하게 쌓아올린 시간


올 연말 <오케피>에서 싱글 라이프를 꿈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변신을 예고하고 있는 박혜나. 최근 누구보다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파워풀한 가창력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는 안타까운 배우 중 한 명이었다. 2013년 여배우라면 한번쯤 꿈꾸는 작품 <위키드>에 엘파바로 이름을 올리면서 배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기까진 말이다. 앙상블로 데뷔해 당당히 주연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박혜나가 지나온 여정을 되짚었다.




새로 얻은 용기 <싱글즈>



“<싱글즈>의 동미는 당찬 커리어 우먼의 상징 같은 역할이었어요. 그런데 하필 직장인들이 단체 관람을 온 날 프레젠테이션 장면을 망친 적이 있어요. 똑 부러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능력 있는 여자의 아우라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죠. 어린 맘에 얼마나 속상하던지 공연이 끝나자마자 분장도 지우지 않고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버렸어요. 창피한 기억을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올 줄 그땐 몰랐죠. 사실 이십 대 중반이었던 당시엔 자유연애주의자에 혼전 임신을 해서 싱글맘이 되기로 결심하는 캐릭터에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땐 꽤 고지식한 면이 있었거든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오디션 보길 주저했는데, 동미로 인해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이후 다양한 캐릭터를 맡을 수 있었어요.”



유쾌한 도전 <영웅을 기다리며>



“재밌고 웃기기보단 진중한 성격이라 코미디는 나와 거리가 먼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09년 즈음 연극  <라이어 라이어>를 보고 나서 진정한 희극은 비극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그 시기에 창작 초연  <영웅을 기다리며>를 만나게 됐고요. 무거운 역사를 코믹하게 풀어내는 작품에서 백치미 있는 명랑한 캐릭터를 맡는 건, 저한테 일종의 도전이었죠. 연습 초반의 걱정과는 달리 무척 재밌게 공연했는데, 아무래도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소재로 하다 보니 공연 내내 마음이 뜨거웠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애국심이 솟곤 했죠. 소용돌이치던 시대에 던져진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고요. <영웅을 기다리며>는 웃음과 진지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한 작품이에요.”



새로운 시작 <남한산성>
“삼십 대 도시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주연을 맡았을 때 설어요. 앙상블로 시작해 어렵게 여기까지 왔으니까 뭔가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첫 주연 작품 이후 도리어 짧은 공백이 생겨 이루 말할 수 없이 허무했어요. 배우를 하기에 나는 너무 평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슬럼프에 빠졌죠. ‘평범 콤플렉스’는 학창 시절부터 고민했던 문제였거든요. 그런 저를 슬럼프에서 꺼내준 게 <남한산성> 재공연이에요. 조광화 연출님께서 <영웅을 기다리며> 제 공연을 보시고선 <남한산성>에 난세에 태어난 생 ‘난생’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얘기해 주시는데, 가슴속 응어리가 시원하게 날아갔죠. 내가 받은 달란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달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살면서 겪어야 할 시련은 겪어야 하나 봐요.”



따뜻한 추억 <심야식당>



“<심야식당>에서 스트리퍼 마릴린을 하기 전까지는 사실 저라는 배우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마릴린은 관객들에게 가슴과
엉덩이를 들이대는 화끈한 캐릭터라서 아무래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죠. 재밌었던 건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에 나가면 제가 마릴린이라는 걸
알아보는 관객들이 거의 없었다는 거예요. 그게 무척 짜릿하고 좋았어요. 물론 사람들이 알아봐 주는 것도 감사하지만요. 그런데 <심야식당>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보다 작품 자체가 따뜻해서 마음에 간직하는 작품이에요. 마스터가 무대 위에서 차를 끓일 때 무대로 퍼지는 구수한 향,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죠. 작품 분위기만큼 팀 분위기도 따뜻해서 함께 공연한 배우들끼리 여전히 식구처럼 가깝게 지내요.
여러 모로 힐링의 시간을 선물해 준 작품이죠.”



두 번째 터닝 포인트 <위키드>



“2013년은 제게 정말 특별한 한 해예요. <헤이, 자나!>로 운명적 짝을 만나게 됐고, <위키드>라는 인생의 작품을 만나게 됐으니까요.  <위키드> 오디션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위키드>라는 작품을 만들어 갈 사람을 찾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 사람이 제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배우라면 좋은 작품 오디션은 결과에 상관없이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지원한 거였거든요. 붙을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오디션 팔 개월 만에 합격 연락을 받았을 때 같이 있던 친구랑 길에서 부둥켜안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이렇게 크고 좋은 작품의 주연을 하게 된 걸 저보다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더 기뻐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초록 마녀 엘파바로 살았던 일 년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7호 2015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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