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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37.5℃의 열정 [No.149]

글 |배경희 사진 |표기식 2016-03-03 8,695

서서히 예열 중인 데뷔 5년 차 신인 배우 고은성의 꿈은 언젠가 독일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못지않은 큰 뮤지컬 시장에 아시아 배우 최초로 진출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  허무맹랑하다고? 결코. 뮤지컬과 열렬하게 사랑에 빠진 그에 대해 알고 나면 아마 당신도 그 꿈을 응원하게 될 거다.




“모르겠어요. 이유 없이 소름이 돋았어요. 공연을 보고 집에 와서 그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 들어도 감동이었어요.” ‘감동’이라는 단순 명료한 표현 이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강렬한 경험. 올해 스물일곱을 맞은 고은성이 고교 시절 그의 인생을 흔들어놓은 기억을 떠올렸다. “우연히 본 <노트르담 드 파리>가 제 삶을 바꿨다고 할 수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의 시대’라는 노래에 빠져 뮤지컬이란 장르에 호기심을 갖게 됐어요. ‘대성당의 시대’를 원어로 부르고 싶어서 불어 학원을 다녔을 만큼 그 노래에 사로잡혔거든요(고은성이 부른 불어 버전 ‘대성당의 시대’는 유투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저는 뭔가에 빠지면 완전히 열중하는 타입이에요.”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고은성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어차피 공부로 길을 찾을 것도 아닌데, 학교에서 하루를 보내긴 시간이 아까워서’ 자퇴를 한 후 실용음악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막연히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지만, 뚜렷한 목표는 없었던 사춘기 소년. 그의 마음에 뮤지컬이 어떤 파동을 남겼을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뮤지컬 배우가 되자! 새로운 꿈에 부푼 고은성은 검정고시를 치러 뮤지컬 학과에 진학했다. 그것도 두 번이나. “제가 대전에서 자라고, 대구로 대학을 갔거든요. 대학 생활 자체는 재밌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자라면 ‘한양’을 한번 가봐야 하지 않나. 그래서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뒀죠. 그때 집에서 거의 쫓겨날 뻔했어요.” 당장 혼자 서울로 이사할 형편은 안 되고, 서울에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지만, 무작정 상경하겠노라 단단히 마음먹은 고은성이 내린 결정은 인천 사는 친구 자취방에 잠시 얹혀살면서 연기 학원을 다니는 거였다. 그해 입시에서 떨어지면 다시 내려온다는 각오를 가지고. 그런데 아무리 열정이 넘쳤다고 해도 낯선 타지 생활에 꿈이 흔들리진 않았을까? “사기가 꺾이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마음은 시시각각 변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거 하난 확실했어요. 제 자신이 뮤지컬을 정말 하고 싶어 한다는 거요. 매일 밤 좁은 단칸방에서 친구 옆에 낑겨 자면서도, 언젠가 무대에서 공연할 거 생각하면 심장이 막 쿵쿵! MP3를 귀에 꽂고 잠을 청하다 벌떡 일어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가슴이 너무 떨려서.” 상기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체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와 함께 작업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 떠올랐다. “고은성은 다른 이유 때문에 뮤지컬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하게 뮤지컬을 좋아하는 배우예요.” 도대체 뮤지컬의 무엇이 그를 이토록 매료시켰을까? “친한 배우들 공연을 보러 가면 분명 쟤는 저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상황에 확 이입될 때가 있어요. 그게 라이브 무대의 매력인 것 같아요. 지금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이 가짜라는 걸 모두 알지만, 배우의 표현으로 그 상상의 세계를 믿게 만들 수 있다는 거, 그게 정말 짜릿해요. 저는 무대의 힘을 믿어요.”



누구보다 열렬히 뮤지컬 무대를 갈망했던 고은성은 처음 서울에 올라온 그해 단국대 뮤지컬 학과 입시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2011년 무대 위에서 코러스 역할을 하는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싱어’로 데뷔했다. 그리고 두 작품만에 운 좋게 참여하게 된 청춘물 <그리스>는 이름 모를 신인 배우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매끈한 외모와 다부진 체격을 가진 풋풋한 이십 대 고은성에게 고교 킹카 대니는 누가 봐도 제격인 역할이었으니까. 덕분에 <그리스> 이후엔 뮤지컬 팬덤에 한 뼘 더 가까워진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게 된다. 욕망으로 가득 찬 비정한 세계를 다룬 <비스티 보이즈>의 양아치 강민혁과 훈훈한 휴머니티를 그린 <여신님이 보고계셔>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여린 소년 순호. 물론 고은성은 신인 배우에게 쉽게 기대하기 힘든 극과극의 인물을 적절히 연기해 냈다.


새해의 첫 작품이 될 초연 창작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준비하는 고은성은 요즘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번에 맡은 리해진은 겉모습은 귀여운 소년이지만, 혹독한 훈련을 거친 북파 공작원. “누군가 제가 오늘 하루 동안 한 말을 받아 적어서 그걸 제 인생의 대본으로 쓴다고 해봐요. 처음엔 오! 괜찮은 생각인데 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입 밖으로 뱉는 말보다 속으로 삼키는 말이 더 많잖아요. 보통은 말보단 생각을 더 많이 하니까. 대본에 나온 대사를 하기까지 이 캐릭터가 혼자 삼켰을 말이 뭘지 요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공연이 다가올수록 그의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가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모든 작업이 재밌어 죽겠다는 거다. “흔히 젊은 사람들을 두고 열정을 가져라,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그 말 좀 웃긴 것 같아요. 열정은 무언가를 굉장히 좋아하다보면 저절로 생기는 건데. 제가 앞으로도 배우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순 없지만, 무대를 계속 좋아하려면 당장 할 수 있는 걸 잘 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결코 쉽게 지치지 않을 것 같은 젊은 혈기, 그에게 박수를.
 



2011  <스프링 어웨이크닝>  싱어  <페임>  닉
2012  <그리스>  대니
2013  <스팸어랏>  갈라하드
2014  <그리스>  대니  <비스티 보이즈>  강민혁
2015  <여신님이 보고계셔>  류순호
2016  <은밀하게 위대하게>  리해진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49호 2016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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