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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TAFF] <꽃보다 남자 The Musical> 스즈키 유미 [No.162]

글 |배경희 사진 |이배희 통역 | 김태희 2017-03-16 5,276

연출가는
게임의 룰을
정하는 사람



지난 2016년 일본에서 초연된 <꽃보다 남자 The Musical>(이하 <꽃보다 남자>)가 국내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순정 만화의 전설로 꼽히는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국내에 소개되는 이번 프로덕션은 라이선스 공연이지만, 따로 한국 스태프를 두지 않고 일본 공연의 진두지휘를 맡은 스즈키 유미를 필두로 일본 스태프가 그대로 참여한다. 특히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 연출가 스즈키 유미는 2014년 도쿄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에서 라이선스로 공연된 <블랙메리포핀스>의 연출을 맡아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첫 해외 작업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을 찾았다는 스즈키 유미, 그녀가 그려낼 순정 만화는 어떤 세계일까.




새로운 작업에 대한 갈증


일본에서 만화 『꽃보다 남자』가 뮤지컬로 제작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걱정했습니다. (웃음) 원작 만화가 대단한 인기를 끌긴 했어도, 1990년대에 나온 조금 오래된 작품이니까요. 과거의 인기 만화를 지금 뮤지컬로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걱정이 앞섰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신작 뮤지컬이 많이 제작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작품을 작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매력을 느꼈어요. 한국에서는 많은 창작뮤지컬이 제작되고 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거든요.


원작 만화를 언제 처음 읽었는지 기억하세요? 특별한 기억이 있나요?
사실 뮤지컬 작업을 하기 전까진 『꽃보다 남자』에 대해 잘 몰랐어요. 평소 만화책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라서요. 10년 전쯤 드라마로 제작된 적도 있는데, TV도 잘 안 봐서 1화만 봤던 것 같아요. 주인공 츠카사로 나온 마츠모토 준이 연극 <에덴의 동쪽>을 같이 작업했던 배우라 한 회는 챙겨 봤죠. (웃음) 뮤지컬 작업 의뢰를 받고 나서 원작 만화를 읽게 됐는데, 별로 좋은 독자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두근두근하며 읽었던 게 아니라 이걸 뮤지컬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거든요.


만화책을 다 읽은 소감은 어땠어요?
아주 솔직히 말하면, 주인공들한테 “너네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전혀 공부를 안 해요. 고등학생인데! (웃음) 공부하는 모습이 별로 안 나올 거란 예상은 했지만, 한 장면도 안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물론 주인공들이 열심히 사랑하는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러웠어요. 독자들이 어느 부분에 마음이 두근대는지 알겠더라고요.


서른여 편의 만화를 두 시간 반 분량의 뮤지컬로 옮겨야 했는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나요?
뮤지컬 대본 방향에 대해 아오키 고 작가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저희의 결론은 츠카사와 츠쿠시의 로맨스에 집중하자는 거였어요. 특히 츠카사와 츠쿠시가 서로 마음을 알게 되는 과정에 무게를 두려고 했죠.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리는데, 여러 장애물 때문에 사랑이 쉽게 이뤄지지 않거든요.  


일본 공연의 반응은 어땠나요?
일단 관객들의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했어요. 연령대별로 각각의 반응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던 게 인상적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이 풋풋했던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웃음을 띤 관객들이 많았던 걸로 봐서는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 같아요. (웃음)




첫 해외 작업이라는 의의


한국 공연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는 흔쾌히 받아들였나요?
네, 예전부터 외국 배우들하고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외국 배우들과의 작업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할까요.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배우들과 작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척 궁금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작업해 보니 배우 정신이랄까, 그건 세계 어딜 가나 다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영국을 가든, 인도를 가든, 방글라데시를 가든, 배우들에게는 공통적인 정신 구조가 있는 것 같아요.


몇 해 전 저희 책에서 니나가와 유키오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니나가와 선생은 배우들이 뜻대로 따라 와주지 않으면 재떨이를 던지는 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고 하셨죠. (웃음) 연출님의 작업 스타일은 어떤지요.
연출이 아닌 배우로 공연 일을 시작했는데, 배우로 활동하던 이십 대 초반에 일 년 정도 니나가와 연출님의 스튜디오에 소속돼 있던 적이 있어요. 그때 기억을 되살려 보면, 연출님은 확실히 뭔가를 잘 던지셨던 것 같아요. (웃음) 저는 물건은 안 던집니다. (웃음) 가능한 한, 배우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편이랄까요. 그래서 연습실에서 배우들에게 “이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싶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자주해요. 이 장면을 시작할 때의 감정과 장면이 끝날 때의 감정은 무엇인지, 무엇을 원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와 있는지 그런 질문을 많이 하죠.


아마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한국 뮤지컬에 대해 알아보았을 텐데요, 한국 뮤지컬의 스타일에 대해 느낀 게 있나요?
한국에 오기 전에 나름대로 사전 조사를 했어요. 아주 많이 찾아보진 못했지만요. 헌데 일본 뮤지컬과 한국 뮤지컬 사이에 아주 큰 차이는 못 느꼈어요. 다만 한국 뮤지컬계가 조금 더 강하고 자극적인 감정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토리 자체도 임팩트 있고, 노래도 파워풀한 작품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작품 <꽃보다 남자>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소소한 이야기잖아요. 고등학교 아이들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라 관객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걱정되기도 해요. 


한국에 맞게 각색한 부분이 있나요?
일본 공연에서는 긴자나 아자부 같은 도쿄의 실제 지명이 등장하지만, 한국 공연에서는 고유명사의 사용을 최소화했어요. 극 중 캐릭터 이름은 일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관객들이 이 작품을 일본의 이야기처럼 느끼지 않길 바라거든요. 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극 중 시대상이 드러나는 제품도 등장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원작 만화에서 주인공들이 연락을 주고받을 때 당시 유행했던 삐삐를 사용하는데, 지금 무대에서 그걸 사용하면 관객들은 즉시 이건 1990년대 옛날 이야기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죠. 요즘 트렌드에 맞게 바꾼다고 삐삐를 스마트폰으로 대체하면, 2010년 이후의 이야기로 시대를 한정 짓게 되고요. 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이 작품이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이야기가 아닌 어느 시대,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이거든요. 작품에서 특정 시대를 드러내는 요소를 배제한 이유죠. 그리고 일부러 의도하고 바꾼 건 아닌데, 배우들끼리의 접촉이 일본 버전보다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엄마가 딸한테 뽀뽀하는 장면은 일본 버전에는 없죠. 일본 사람들은 서로 안 만지거든요. (웃음)



아무래도 문화적 차이로 인한 표현의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어제 연습실에서 있었던 일인데, 개인적으론 정말 재밌는 일이었어요. 일본에서는 윗사람을 지나치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행동을 붙임성 있게 본다더라고요. 어른을 편하게 대하면 귀여운 아이라고 좋아한다는 얘기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거의 충격을 받았죠. (웃음) 몇 해 전 일본에서 <블랙메리포핀스> 라이선스 공연의 연출을 맡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어요. 한국 공연은 메리가 자살을 하는 것으로 속죄하는데, 일본 공연에서 메리는 죽지 않아요. 계속 살아가면서 죄를 짊어지는 게 책임감 있는 아름다운 행동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정서 차이에서 비롯되는 디테일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재벌가의 화려한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어떤 컨셉의 무대를 보게 될지 궁금합니다. 무대디자이너와 어떤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나요.
만약 화려한 무대를 기대하시는 거라면, 그 기대를 충족시켜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일본 공연은 극장 무대가 별로 크지 않아서 주인공들이 다니는 에이토쿠 고등학교를 중심 세트로 두고 그 안에 작은 무대를 하나 더 만들어서 장면 전환을 했어요. 한국 공연은 에이토쿠 고등학교가 기본 세트인 컨셉은 그대로 유지하되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한국 관객분들이 무대 세트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인터뷰에서 무대 디자인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그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아요. 일본에서 인터뷰할 때는 무대 디자인에 대한 질문은 거의 못 받거든요. 흥미로운 부분이네요.


연출가의 길로 이끈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도쿄에서 나고 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정말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었어요. 어린 시절, 자의식이 확고해지기 전부터 다카라즈카 작품이나 신극, 니나가와 유키오 연출님의 대극장 작품이나 츠카 코헤이 연출님의 소극장 작품 같은 다양한 스타일의 공연을 봤죠. 자연스럽게 여러 스타일의 작품들로부터 복합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어떤 뚜렷한 스타일을 추구한다기보다 각각의 공연에 맞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이게 저의 특징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요.


끝으로 연출가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연출가는 게임의 룰을 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지금 이 연습실에 있는 네 명이서 숨바꼭질을 한다고 가정해 봐요. 그럼 전 이 방 안에서만 숨자는 규칙을 정할 거예요. 그래야 게임이 재밌어질 테니까요. 가령 저 안쪽 방까지 숨을 수 있다고 한다면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게임의 재미가 덜해지지 않을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혜화역까지 숨을 수 있다고 하면 게임이 아예 성립이 안 될 거고요. 그런 범위를 정하는 게 연출가의 몫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정해진 범위 안에서 자기가 어디에 숨을지, 또 어떻게 숨을지는 배우들 스스로 정했으면 좋겠어요. 배우들이 생동감 있고 활기차게 놀 수 있도록 대본에 있는 단서를 바탕으로 매일 조금씩 룰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그게 연출가의 일이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2호 2017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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