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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데뷔 30주년을 맞은 <마리아 마리아>의 강효성 [No.79]

글 |정세원 사진 |이맹호 2010-04-20 6,533



축복받은 배우의 길, 이제 겨우 절반을 지났을 뿐

 

무대 위에서 여러 인생을 살아가는 배우의 나이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지만,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강효성은 한국 뮤지컬 역사의 절반 이상을 함께해 온 배우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1981년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인 서울시립가무단 단원으로 뮤지컬에 첫발을 내딛은 이후 그녀는 30년 동안 뮤지컬 배우로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올해로 8년째 무대에 오르는 <마리아 마리아>가 특별한 이유는 초연 이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했던 강효성이 마리아 역으로 서는 마지막 무대인 동시에, 그녀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뮤지컬, 천직이 되다 
2010년 4월 1일은 강효성이 뮤지컬 배우가 된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날이다. 어느 한순간도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끼며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강효성은 배우로서의 삶만큼은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신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시작된 그녀의 배우 생활은 우연히, 하지만 운명처럼 다가왔다. 선화예고 졸업반 시절 대학 입시 문제를 고민하던 친구들과는 달리 강효성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생활비 걱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노래가 전부였다. 뮤지컬이 뭔지 모르면서도 무작정 서울시립가무단 시험을 치렀던 것은 노래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지인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나서 하늘을 날 듯이 기뻤던 것도 돈을 벌 수 있게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배우의 꿈 같은 건 없었죠. 그때 첫 월급이 13만 원 정도였는데 그 돈으로 우리 식구가 한 달을 먹고 살았거든요.”

노래만 하는 줄 알고 시작한 단원 생활은 그녀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을 대신 살아갈 수 있도록 연기 지도를 받고, 한국무용, 탈춤, 재즈댄스, 발레, 현대무용 등 춤이라는 춤은 모두 배울 수 있었다. 그에게 단원 연습실은 천국과 다름없었다.

“신입 단원들은 무대에 서지 못하고 선배님들 옆에서 공연 준비를 돕고 연습실 청소 등을 하며 일 년을 보내야 했어요. 다른 배우들이 출근하기 전에 일찍 나와서 연습하고 밤에 혼자 남아서 복습하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죠. 무엇인가에 땀을 흘리고 애정을 쏟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처음 알았거든요.”

선배들의 무대 뒤를 채우며 4년여를 보낸 그녀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춘향전>의 춘향 역을 맡은 배우가 연습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날 그를 대신해 연습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선배들의 뒤에서 혼자 따라하던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춘향이의 대사를 모두 외우고 있었던 그녀는 비록 서툴긴 했지만 막힘 없이 연습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그 후로 강효성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춘향전>의 춘향 역을 맡아 주역 배우로 발돋움했고, 시립가무단의 주요 공연에서 비중 있는 배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흐르는 물이 되기 위한 도전
아무리 노력해도 새로운 것을 찾지 않으면 고인 물처럼 썩는 법. 십 년이 넘도록 한 단체에 몸담고 있는 동안 강효성은 점차 자신이 ‘온실 속 화초’, ‘뭔가 정형화된 인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들이 차례로 국내에 소개되면서 뮤지컬 붐이 일어난 당시의 분위기도 연습실을 향하는 그녀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경제적인 안정보다는 배우로서의 도전의식이 그녀를 자극했다.

1993년 <아가씨와 건달들>의 사라 역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강효성은 故 김상렬 대표와의 인연으로 극단 신시의 <그리스>(샌디 역),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마리아 역), <7인의 신부>(엘리스 역), <사운드 오브 뮤직>(마리아 역) 등에 출연하며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가무단 공연들은 대부분 창작 작품들이라 한국적인 정서가 많이 담겨 있잖아요. 선이 곱고 얼마나 멋있어요. 하지만 시대는 변해가고 사람들은 좀 더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작품들을 찾았죠. 외부 작업들을 하면서 젊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 음악적으로도 재밌었지만 이미 만들어져 있는 캐릭터를 그대로 연기하다 보니 배우로서의 갈증이 다시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무대에 대한 갈증은 자연스럽게 창작뮤지컬에 대한 특별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인생은 대충 사는 것이 아니다
데뷔 이후 강효성이 출연한 60편이 넘는 뮤지컬들 중에는 롱런한 작품들이 꽤 많다. 그 중에서도 <지붕 위의 바이올린>과 <블루 사이공>, <마리아 마리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은 무려 8년 동안이나 같은 배역으로 무대에 섰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노력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결코 쉽지 않았을 도전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임영웅 선생님이 매 공연 연출로 참여하셨는데 오디션을 볼 때마다 제게 같은 배역을 주셨어요. 다른 배역은 계속 배우가 바뀌는데 큰딸 차이텔은 8년째 같은 얼굴이니 주위에서 얼마나 말들이 많았겠어요. 근데 그때 선생님께서 ‘이 역할을 강효성만큼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데려와 봐’ 하시는 거예요. 제가 책임지고 연기한 배역을 인정받았다는 게 정말 행복했어요. 그 말씀이 제가 배우 생활을 하는 데 굉장한 자부심으로 남아있고요.”

대중적인 사랑을 받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는 <블루 사이공>의 후엔을 연기하는 동안 강효성은 비행기가 날아갈 때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단 한 장면을 위해 어려움을 감수하고 8년 동안이나 머리를 길렀다.

“공연이 올라간다는 소문만 들어도 자를 수가 없었다”는 그녀의 얘기에서 작품을 향한 애정과 무대에 대한 근성이 전해졌다. 맹장염 진단을 받고도 <마리아 마리아> 2회 공연을 모두 소화한 후에야 병원으로 실려 간 잊지 못할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 모든 것이 무대 위에서는 늘 부족함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더 완벽해지려는 열정과,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뒤돌아보면 그동안 출연했던 작품들이 모두 창피하기만 해요.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이는 만큼 부끄러워지는 것 같고. 배우가 스스로 자신의 무대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무대 위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곧 완벽한 무대를 향한 저의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찬란한 무지개 같았던 마리아의 무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무대에 섰던 <마리아 마리아>는 강효성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120석 남짓한 대학로 열린 극장에서의 초연은 데뷔 이후 그녀가 거의 처음으로 도전하는 소극장 무대였다.

“대극장 무대에 많이 서다보니 연기선이 상당히 커져 있었어요. 창녀 마리아가 성녀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관객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그들의 호흡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서 단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 순간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무대에 못질하던 작곡가와, 고무장갑 끼고 극장 화장실을 청소하던 작가… 넉넉하지 않은 제작 여건에도 불구하고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공연을 준비했던 시간들은 그녀가 평생 마음속에 간직할 보물과도 같은 장면들이다. 2004년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당시 ‘하나님께 돈 대신 다른 것을 달라고 기도했다. 가난한 창작뮤지컬을 많이 후원하게 해 달라고’ 하면서 울먹이던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되었다는 말 있죠? 정말 그런 기분이었어요. 상을 받아서 좋기도 했지만 더 많은 분들에게 공연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뻤어요. 마리아의 변화를 통해 실제로 인생이 달라졌다는 분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고요. 제 평생 잊지 못할 무지개 같은 작품이에요.”

 

 

독수리의 날개를 품고
마리아로 서는 마지막 무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공연하는 <마리아 마리아>를 위해 강효성은 지난 7년의 시간들을 지우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지극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누군가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늘 그랬던 것처럼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다. “전에 <돈키호테>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혼잣말로 알돈자, 아니 둘시네아에게 인사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덕분에 많이 행복했다고. 이번 <마리아 마리아> 무대에서 내려오면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무대는 한 번이라도 공연을 본 적 있는 관객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강효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연을 제대로 소화할 자신이 없어요. 처음 보시는 분들에게는 얼마나 죄송한 일이에요”라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참고 있던 눈물을 끝내 터트리고 말았다. 힘들고 행복했던 지난 시간들이 그녀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나 보다. 먼 곳을 한참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꿈을 들려주었다. 내년에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딸과 함께 2년 정도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 원래 올해 3월에 가려고 했던 건데 <마리아 마리아>를 예쁘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잠시 미뤘다고 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뭔가를 배우고 싶은 열망이 커요. 그동안 몰랐던 것들, 그래서 아쉬웠던 부분들은 스스로 부딪쳐서 깨닫고 싶어요.” 그녀는 공연을 보여주는 것 외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했던 딸에게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데뷔 30주년을 맞는 배우의 유학 계획. 누구나 쉽게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는 배우 강효성이라면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지켜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작은 새들은 바람을 피해 몸을 움츠리지만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그 바람을 타고 날잖아요. 배우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겪어야 하는 크고 작은 고난과 역경들 앞에서 저도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극복해내고 싶어요. 그래야 80세가 되어서도  당당하게 무대에 설 수 있지 않겠어요?” 강효성은 앞으로 30년 후,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반짝이는 은빛 머리에 붉은 립스틱으로 곱게 단장한 그녀의 마지막 무대를 상상해본다. “아리아 한 곡을 부르더라도 얼마나 멋있겠어요. 뮤지컬 역사 속에서 강효성이라는 배우의 지난 시간들이 다 잊힌다고 하더라도 80대의 아름다운 마지막 무대를 보여준 것만큼은 기억되고 싶어요.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기다려주세요.”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79호 2010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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