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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2019년 창작뮤지컬 돌아보기 [No.195]

글 |안세영 2019-12-06 6,963

2019년 창작뮤지컬 돌아보기

 

연말을 맞아 2019년 창작뮤지컬의 경향과 주목할 만한 작품, 창작진을 돌아보는 좌담을 마련했다. 다양한 시선에서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공연 전문 기자 외에 정수연 평론가와 본지가 평론가를 양성하기 위해 2012년부터 운영한 ‘<더뮤지컬> 리뷰어’ 프로그램 출신 공연 애호가 3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 _외부 참여자  공연 평론가 정수연, <스테이지톡> 기자 최영현, <더뮤지컬> 리뷰어 박세희, 박초희, 조연경 


창작뮤지컬 지원 사업의 성과

안세영_ 본격적인 작품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한 해의 흐름을 되짚어 보자. 2019년 창작뮤지컬의 전반적인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영현_ 무대에 오르는 창작뮤지컬의 수가 부쩍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초연작의 비중이 커졌다. 작년까지는 창작뮤지컬 초연작이 50여 편이었는데, 올해는 70여 편을 기록했다. 

박초희_ 과거에는 소극장 위주로 창작뮤지컬이 제작되었는데, 올해는 극장 규모를 가리지 않고 많은 창작뮤지컬이 공연되었다. 대극장에서 창작뮤지컬 초연이 올라가는 게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일이 되었다. 민간 제작사뿐 아니라 국방부, 지역 문예회관, 극장 등 관공서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창작뮤지컬이 개발되고 있다. 

박세희_ 무엇보다 각종 지원 사업을 통해 데뷔하는 신인 창작자가 늘어난 것이 창작뮤지컬 초연작 증가에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창작 경험이 부족한 신인 창작자들이 단기간에 작품을 내놓다 보니 창작뮤지컬 수가 늘어난 데 비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영현_ 연극, 오페라, 가요 등 인접 장르에서 활동하던 창작자가 뮤지컬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공모전에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국가 지원 사업의 경우 매해 정해진 수만큼의 작품을 뽑아 무대에 올려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마땅한 작품이 없어도 그나마 나은 차선의 작품을 골라 기계적으로 공연하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또 제작사를 매칭해 상업극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제작사 입맛에 맞춰 작품이 개조되어 본래 색깔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정수연_ 민간 제작사가 자신들의 제작 방향과 흥행 가능성을 기준으로 창작자와 작품을 발굴하는 것은 납득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공적 지원 사업의 작품 선정 기준이 사적 지원 사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기존 흥행 트렌드에 부합하는 작품을 지원작으로 선정하고, 같은 기준으로 성과를 판단하다 보니 공공성이라는 명분이 사라져버렸다. 그 결과, 창작뮤지컬의 수는 늘었지만 다양성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 지원 제도의 목표와 체계를 분명하게 설정해 작품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실험적인 작품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은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해외 진출을 위한 작품을 지원하는 식으로 운영 기관이 역할을 분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뮤지컬도 다른 예술 장르처럼 흥행과 상관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공적 지원 제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세영_ 현재 국내 뮤지컬계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오히려 민간 재단인 우란문화재단이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창작자가 흥행에서 실패하더라도 다양하고 의미 있는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지 않나. 타 장르 창작자가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뮤지컬을 만들기도 하지만, 이는 공연의 언어를 확장하기 위한 실험적 시도라는 점에서 단순히 지원금을 따기 위한 장르 이동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올해 우란문화재단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린 <앙상블>은 이현정 안무가가 주축이 되어 아이디어를 내고 발전시킨 작품이다. 창작뮤지컬에서 안무의 역할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처럼 안무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을 보니 흥미롭더라. 현재 뮤지컬 창작 지원 사업이 지원하는 대상은 대부분 작가와 작곡가다. 그러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외되어 있는 분야에 대한 다각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활약이 두드러진 제작 단체

안세영_ 올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뮤지컬 제작 단체로는 어느 곳을 뽑고 싶나.

조연경_ 서울예술단, 서울시뮤지컬단 등 공공 단체가 이렇다 할 신작을 내놓지 못한 데 비해 국방부 뮤지컬의 행보는 놀라웠다. 작년에 이어 재연한 <신흥무관학교>와 초연작 <귀환>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나. 물론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덕이 크지만, 만듦새도 <더 프라미스> 등 전작에 비해 상당히 발전했다. 특히 군인 앙상블의 군무와 합창이 주는 에너지가 남다르더라. 

정수연_ 공공 기관이 제작하는 뮤지컬의 장점은 민간 제작사에서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최고의 기획사는 군대라는 말이 있다. 뮤지컬 제작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는 게 배우의 개런티인데, 국방부 뮤지컬은 개런티 없이 유명 스타를 캐스팅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 면에서 창작자가 자기 역량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국방부 뮤지컬이 그런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조금 더 세련된 외피를 입는 법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애국심을 촉발하는 목적극으로서의 정체성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세희_ 주목할 만한 또 다른 공공 기관으로 정동극장을 꼽고 싶다. 정동극장은 전통 음악과 뮤지컬을 접목한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신작 가운데 <오시에 오시게>를 봤는데, 평소 판소리와 국악에 관심이 없던 관객도 부담 없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최영현_ 정동극장은 ‘정동극장 창작ing’라는 지원 사업을 통해 2017년 <판>과 <적벽>을 선보이면서 젊은 뮤지컬 관객층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신작뿐 아니라 다른 창작 단체에서 개발해온 기존의 작품을 지원해 정동극장 무대에 올리고 있다. 국악계 실력자들이 창작의 주체로 나서기 때문에 뮤지컬 창작자들이 어설프게 국악을 접목해 만든 작품과는 여러모로 다른 결과물을 보여준다. 올해 리딩 쇼케이스로 선보인 <괴물> 역시 판소리를 접목한 1인 뮤지컬이라는 독특한 형식이 돋보였다. 정동극장은 공공 기관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다.

안세영_ EMK뮤지컬컴퍼니는 올해 <마타하리>, <웃는 남자>에 이어 세 번째 대형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내놓았다. 어떻게 보았나?

최영현_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와 음악으로 대중이 대극장 뮤지컬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 준다는 점에서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뮤지컬은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작곡가 콤비가 만드는 작품과 더불어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하지만 서사 면에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대형 창작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자본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제작사로서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은 내놓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수연_ EMK뮤지컬컴퍼니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고 위험 변수가 많은 대형 창작뮤지컬 제작에 지속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작품은 매번 달라도 창작자가 같다보니 작품마다 개성이 뚜렷하지 않고 이야기 구조와 음악이 동어반복처럼 느껴진다. 정말로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적인 뮤지컬을 내놓기 위해서는 긴 안목으로 작가와 작곡가를 비롯한 기초 창작자를 키우는 데 자본을 투자해야 한다. 

 

눈여겨 볼 신인 창작자

안세영_ 올해는 신인 창작자의 활약이 유독 돋보였다. <호프>의 강남 작가와 김효은 작곡가,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의 박찬민 작가와 이정연 작곡가, <시데레우스>의 백승우 작가와 이유정 작곡가, <니진스키>, <구내과병원>의 김정민 작가와 성찬경 작곡가 모두 올해 첫 뮤지컬을 내놓은 신인 창작자다. 특히 <호프>는 마니아 관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데뷔작임에도 제8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지컬상을 차지했다. 

정수연_ 작가가 진지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을 오랜만에 만났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만드는 신인이다. 이 작품이 더 빛날 수 있었던 건 신인 창작자의 초연임에도 김선영과 차지연 같은 유명 배우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호프>의 주인공은 관록 있는 여성 뮤지컬 배우라면 누구라도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걸 표현하고 싶은 배우가 만났을 때 좋은 작품이 완성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공연 제작 원리를 확인시켜 준 작품이다. 

박초희_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국악과 힙합을 조화시킨 음악이 신선하고 듣기 좋았다. 

최영현_ 서사가 허술하고 송 모먼트가 뜬금없는 구석이 있지만, 기성 작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박초희_ <시데레우스>는 신인 창작자의 작품을 기성 연출가인 김동연이 잘 이끌어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두 명의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재미있게 연출했고, 객석등을 조명으로 활용한 점도 인상 깊었다. 

최영현_ <시데레우스>는 <풍월주>에 이어 랑이 제작한 두 번째 창작뮤지컬이다. 랑의 안영수 대표는 그동안 독특한 홍보·마케팅으로 공연계에서 눈길을 끌어왔는데, 공연 제작에도 그런 열정이 느껴져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한다 프로덕션은 올해 세 편의 창작뮤지컬 <구: 도깨비들의 노래>, <테레즈 라캥>, <머더러>를 선보였는데, 모두 정찬수 작가, 한혜신 작곡가라는 신인의 작품이었다. 완성도와 별개로 기존 뮤지컬 흥행 코드와는 다른 소재의 작품이어서 흥미로웠다. 



 

기성 창작자의 성과

안세영_ 올해 가장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린 작가로는 이희준, 추정화, 박해림이 있다. 추정화 작가 겸 연출가의 신작 <루드윅>과 이희준 작가의 신작 <해적>은 인기에 힘입어 몇 달 만에 재공연이 돌아오기도 했다. 

최영현_ <루드윅>은 베토벤의 어린 시절, 청년 시절, 노년 시절을 연기하는 세 배우를 한 공간에서 만나게 한 점이 연출적으로 흥미롭긴 한데, 왜 그런 설정이 필요한지, 작품의 메시지가 뭔지 불분명하다. 

안세영_ 베토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베토벤의 삶과 작품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의아했다. 아버지로부터 학대에 가까운 혹독한 교육을 받은 베토벤, 건축가가 되고 싶었으나 여성이라서 포기해야 했던 마리, 군인이 되고 싶지만 음악가가 되기를 강요받는 카를의 이야기를 중첩시켜 얻어지는 메시지는 결국 참교육의 필요성인데, 그걸 왜 굳이 음악가 베토벤을 통해 전하려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순수 창작물을 만드는 게 낫지 않나. 

정수연_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은 그 예술가에 대한 재발견을 하게 해줄 때 의미가 있다. 예술가의 삶을 극을 통해 새롭게 이해하고, 나아가 그의 작품을 다시 찾아보게 만들면 최고일 것이다. 이런 작품에서는 그 예술가의 작품이 무대 위에서 재현될 때 새삼스러운 감동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연극 <레드>에서 마크 로스코라는 화가의 삶을 보았을 때 무대 위에서 배우가 그린 그림을 보면 마치 실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나. <파가니니>, <니진스키> 등 예술가 소재 뮤지컬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작품이 있는지 의문이다. 

안세영_ 이희준 작가는 작품 규모를 가리지 않고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특히 이희준표 소극장 뮤지컬을 좋아하는 열광적인 마니아층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어떤 매력이 그들을 사로잡았을까?

최영현_ 논리적인 전개 대신 장면 단위로 즐거움을 주기 때문 아닐까. B급 감성을 살려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박초희_ 이희준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과 세계에는 순수한 낭만성이 깃들어 있다. 마치 명랑 만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특히 박정아 작곡가의 음악과 만났을 때 그 매력이 빛을 발한다. 

정수연_ 소위 마니아 극이라고 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어둡게 가라앉은 모노톤 분위기다. 그에 반해 이희준의 작품이 갖는 정감은 대체로 밝고 음악 역시 일률적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여타 마니아극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을 지닌다. 느닷없이 진지해지는 바람에 작품의 정체성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조연경_ <해적>에서 여성 페어가 특히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이 작품이 흔치 않은 여성 퀴어 커플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라 본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니 기대했던 것에 비해 두 인물의 비중이 너무 적어서 당황스러웠다. 여성이라서 어려움을 겪은 캐릭터이고 퀴어 커플인 것으로 설정해 놓고 굳이 혼성 캐스팅을 시도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무대에서 여성 퀴어물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은 이것조차 감지덕지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다. 이제는 창작뮤지컬에서도 대상화되지 않은 퀴어물이 나올 때가 됐다. 

안세영_ 얼마 전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박해림 작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신작 <나빌레라>와 <이토록 보통의>를 선보였는데 어떻게 보았나?

박세희_ <나빌레라>는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흔치 않은 뮤지컬이지만, 원작의 스토리를 단조롭게 무대로 옮겨놓은 느낌이었다. 발레 장면이 기대에 못 미치기도 했다. 

최영현_ <이토록 보통의>는 원작에 없던 평행우주 설정을 집어넣은 게 사족처럼 느껴졌다. 또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구조가 복제 인간 설정을 반영해서 나온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루하게 느껴졌다. 요즘 박해림 작가가 주로 제작사에서 의뢰를 받아서 작품을 쓰다 보니 작가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안세영_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박해림 작가가 대학생 때 처음 쓴 작품을 안산문화재단이 무대에 올린 경우다. 올해 재공연은 아이엠컬쳐가 공동 제작을 맡았는데, 작년 대학로 초연보다 훨씬 사랑받았다. 재공연은 겉돌던 구청 직원 캐릭터를 빼고 주인공 수현이 주변과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하는 과정이 보이게끔 이야기를 보완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현과 코치의 이야기가 동떨어지게 느껴졌고,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갑작스럽다.

정수연_ 애초에 이 작품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학생들의 소박한 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게 안산에서 공연되는 순간부터 사회적 맥락이 생겨버렸다. 작가에게 큰 부담이자 숙제가 됐을 것이다. 박해림은 소재를 잘 잡는 작가다. 이야기의 재료와 그 재료를 펼쳐놓은 모양새가 흥미롭다. 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에서는 아직 미숙한 느낌이 든다. 모든 작품이 공통적으로 후반부에 약점을 드러낸다. 

안세영_ 기성 창작자의 신작 가운데 올해 작품성 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섬: 1933~2019>이다.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인물의 목소리를 담은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선영 작곡가, 장우성 작가, 박소영 연출가가 참여했다. 

박초희_ 창작자들은 이 작품을 뮤지컬이 아닌 음악극으로 정의했는데, 그만큼 전형적인 뮤지컬 문법에서 벗어나 있는 작품이었다. 음악이 인물의 감정을 토로하는 데 쓰이지 않더라. 실질적으로 극을 진행시키는 것은 대사고, 노래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 배경처럼 지나간다. 그럼에도 어색하지 않게 극이 흘러갔다. 

정수연_ 일반적으로 뮤지컬에서는 인물이 노래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심정을 담은 노래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불러진다.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순간 음악이 뒤로 물러나면서, 관객이 정서적으로 개입할 틈이 생긴다. 작품이 감정의 톤을 낮춤으로써 역으로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굉장히 서사적으로 음악을 사용한 경우다. 

최영현_ 세 시대의 에피소드가 교차로 진행되는 작품인데, 현재 시점의 발달장애아 엄마 이야기가 앞선 두 시대의 소록도 이야기와 동떨어진 느낌이다. 공청회 장면에서는 교훈을 강요하는 느낌마저 든다. 관객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두면 더 좋지 않았을까.

정수연_ 형식적으로 보면 세 번째 에피소드가 일관성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작품 자체가 잊혀진 인물의 목소리를 되찾아 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가 되어 준다는 측면에서 보면 일관성을 아예 놓친 건 아니라고 본다. 관객을 향해 이렇게 과감하게 할 말을 하는 공연도 오랜만이라서 한편으로 반가웠다. 공연이 갖는 예술적 공공성을 오랜만에 확인한 기분이다. 

조연경_ <섬: 1933~2019>는 우리 사회에서 마땅히 이야기되어야 할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다수에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그게 무대라는 곳이 원래 갖고 있던 기능이라는 점을 이 작품이 새삼스레 깨우쳐 주었다. 뮤지컬 장르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작품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해야 할 이야기, 의미 있는 이야기, 두세 시간 동안 듣고 이해하고 전파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하는 뮤지컬이 하나도 없다면, 도대체 이 장르가 이렇게 많은 돈과 수고를 들여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싶다. 그런 점에서 올해 <섬: 1933~2019>라는 작품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5호 2019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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