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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위키드> 박혜나 [No.124]

글 |송준호 사진 |김수홍 2014-01-29 4,868

쉽게 파악되지 않는 매력의 뒤편


‘진짜 마녀가 되고 싶어’, ‘옥주현 말고 나도 있어’. 인터넷 뉴스 제목 속 그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사람 같다. 거의 모든 매체가 ‘엘파바의 박혜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의적으로 타당한 접근이지만, ‘배우 박혜나’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엇보다 ‘뮤지컬계 새로운 히로인 탄생’이라는 언론의 들뜬 표현과는 달리 기사 속의 그는 무척이나 차분하고, 심지어 무덤덤해 보이기도 한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그 어색한 간극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를 만났다.

 

 

 

 

 

묘한 마력과 굳건한 의지 사이
알 듯하면서도 결국 모르겠는, 알쏭달쏭한 사람들이 있다. 박혜나도 그랬다. 연말 시즌의 가장 뜨거운 공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십분 발휘하며 들떠 있을 만도 했지만, 그는 무뚝뚝한 엘파바처럼 담백한 반응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건 ‘난 원래 실력 있는 배우였어’라는 자존심 같은 게 아니라, ‘배우로서 거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박혜나의 주된 관심사는 자신만의 뿌리를 단단하게 내리는 것이다. 어떤 외부의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공고한 뿌리. <위키드>의 오디션 장에서 이런 마인드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돋보였을 것은 당연해 보였다.

 

 

지난 한 달은 데뷔 이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시간이 됐을 듯한데요. 어떤가요?
솔직히 아직 실감은 못하고 있어요. 매일 공연 준비하고, 끝나고는 정리하느라 그걸 느낄 시간이 없거든요. 요새 인터뷰도 많이 하고 바빠진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위키드>가 국내 관객들에게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전 인터넷 반응을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분명히 칭찬과 혹평이 다 있을 텐데, 둘 다 제게 도움 되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칭찬은 절 안심시켜서 긴장감을 놓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고, 혹평은 무대에서 지켜야 될 부분을 흔들리게 할 수 있으니까요.

 

요새 언론의 어떤 관심들에 뻘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무명 설움’이나 ‘스타 탄생’ 같은 표현들 있잖아요. 작품 하나로 일희일비하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가끔 좀 난감하기도 해요. 기자들이 ‘기분 어떠냐’, ‘너무 좋지 않냐’ 아니면 반대로 ‘부담되지 않냐’고 묻는데, 물론 <위키드>가 저에게 고맙고 행복한 작품이지만, 이걸로 인해 제 인생이 180도 바뀌어지거나 스타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거든요.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 길을 걸어왔어요. 그 먼 길에서 이 작품 역시 나에게 주어진 기회 중 하나겠죠. 물론 감사한 일인 건 맞지만요.

 

벌써 14번째 작품이에요. 일반 관객들에게는 신예지만 사실은 중견으로 향하고 있죠. 비단 이번 작품을 둘러싼 관심이나 인기가 아니더라도 생각이 많을 때일 듯해요.
인간 박혜나로 봤을 때는 배우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창작을 많이 했고 라이선스는 거의 안 했으니까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어요. <위키드>는 특히 노래가 어렵잖아요. 기존에 해왔던 음악과 달라서 도전하고 공부하는 계기도 됐고, 배우로서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있어요.

 

상당히 모호한 대답인데요?
제가 기존에 해왔던 것들이 어렵지 않았다고 느껴질까봐 그래요.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의 제가 있었던 거고, 그 과정에서 쌓아온 것을 이번 작품에서 발휘하고 있는 거잖아요.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던 차에 <위키드>가 제게 와준 거죠. 여태까지 전체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을 한 번도 못하다가 이번에 맡게 된 것들, 또 가창력을 요구하는 유명한 곡들을 하게 된 점도 좋은 경험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노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노래 잘하는 혜나 씨에게도 이번 작품은 쉽지 않았겠죠?
감정이 격해지면 컨트롤이 안 될 때가 있어요. ‘엘파바’라는 역할이 급변하는 상황을 많이 겪잖아요. 판타지이긴 해도 현 시대도 많이 반영되어 있고, 공감을 주는 인물이기 때문에 매 순간 매 장면마다 울컥할 때가 많아요. 그걸 조절하려 안간힘을 내고 있어요. 엘파바가 울컥해야 하는데 제가 울컥하면 안 되니까요.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인터미션 때 노년 관객들이 “‘엘바파’ 잘하네”라고 칭찬하는 것도 들었어요. 배우 개인이 아니라 캐릭터 이름을 외우게 했을 정도면 대단한 거죠.
정말요? 감사해요. 그런 반응은 힘이 돼요. 제 공연을 녹음해서 모니터하고 있거든요. 감정이나 진정성은 들으면 알 수 있으니까. 엘파바로서 적당한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해요. 하지만 더 좋은 게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아마 막공까지도 해석에 대해서는 열어둘 것 같아요. 그래서 외부 반응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좋은 반응을 접하면 내가 가는 길이 맞다는 확신을 얻고 더 깊이 연구할 수 있게 되죠.

 

캐릭터 소화 방식은 배우마다 다르지만, 어떤 이들은 캐릭터에 자신을 녹여내는 것을 넘어 그냥 자기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요. 소위 스타 근성일 수도 있겠죠. 어떻게 생각해요?
스타나 국민배우는 또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배우라는 존재는 개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객의 것이고 모든 이들의 것이죠. 배우 하나하나가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대에서 ‘박혜나’가 아니라 아까 그 관객들 반응처럼 캐릭터가 보이길 원해요. 물론 제가 연구하고 판단한 연기겠지만, 그 근거는 대본이거나 상대의 리액션과 연결돼야죠.

 

그런 생각들이 바로 박혜나의 엘파바에 보내는 지지의 근거와도 닿아있는 듯해요.
그냥 외모가 닮아서 그런 거 아니고요? (웃음) 그런데 그렇게 좋아해주시는 걸 보면 지금도 좀 신기해요. 저는 지금도 가끔 어떻게 배우가 됐나 싶거든요. 어릴 때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사실은 사진 찍히는 것도 부끄러워 했어요.

 

지금은 어때요?
여전히 부끄러워요. 사진은 남잖아요. 남 앞에 나서는 것도 배우니까 했지, 그럴 필요가 없었다면 안 했을 거예요. 그런 성격 때문에 배우로서 어려움도 있었고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런 재능을 저에게 주신 건 신께 늘 감사해요. 누군가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잖아요. 그런 직업을 가져서 행복하고 모든 게 다 감사해요.


 

 

 

 

끊임없이 중력을 거스르는 배우
쉽게 파악되지 않는 그의 묘한 느낌은 순수함과 성숙함이 공존하는 가치관을 토대로 한다. 이런 것들은 그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배우에게 얼굴은 여러 인물을 담는 ‘가면’ 같아서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되지만, 박혜나의 얼굴에 나타난 느낌은 믿을 만하다. 연기하지 않을 때의 그는 솔직하고 신중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장난기와 단호함을 오가는 천생 배우의 본모습이 표정에 드러난다. 그래서 그 무서운 끼가 이번에 엘파바의 초록 분장에 봉인된 건 다행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박혜나 안에 있는 수많은 얼굴 중 가장 분명한 한 가지를 볼 수 있는 기회니까. 그런 점에서 <위키드>는 오히려 엘파바인 박혜나보다 언젠가 초록 분장을 지운 민낯의 박혜나를 기대하게 하는 전초전처럼 느껴진다.

 

 

말을 들어보면 참 선하고 차분한 사람이란 걸 알겠는데, 이번 작품으로 박혜나 씨를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센’ 캐릭터가 어울릴 것 같다고 해요. 가령 댄버스 부인 같은, 조용하면서 무서운 사람? 그리고 만나보니 그 의견에 다소 동의가 되기도 하네요. (웃음)
(체념한 듯) 그렇죠. 엘파바와 글린다가 있다면 당연히 엘파바일 테고, 댄버스 부인과 ‘나’가 있다면 댄버스 부인이 어울리겠죠. 아닌 게 아니라 주변 분들도 제가 조용하고 항상 웃고 있는데도 좀 무섭다고 해요. (웃음) 임 모, 모 강희라는 어떤 배우는 제게 “쟨 절대 쫄지 않는 여자야”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런 표현, 좋아요. 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그 믿음을 주려면 제 안에도 강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 중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은 뭔가요.
딱 맞는 건 없고 짜깁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달콤한 나의 도시> 은수의 우유부단함, <영웅을 기다리며> 막딸이의 거침없음? 지금 갖고 싶은 건 ‘엘파바’스러움이에요. 그런 정의로운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 같아요.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예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인해 오즈가 변할 수 있었잖아요. 자기의 삶은 챙기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 판단이 틀리진 않았고요. 그게 ‘정의’의 모습인 것 같아요. 그걸 판단할 수 있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의’에 대한 관심은 정말 많아 보여요. 트위터에서 시국미사에 관한 리트윗도 보이던데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더라고요. 요새는 시간 날 때마다 공부하려고 해요. 솔직히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두면 힘 빠지고 기분 나빠질 때가 많아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엔 안 되는 시점인 것 같고요. 그래서 이 사회가 잘 돌아가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변하면 다른 사람도 변할 수 있잖아요. 엘파바가 그랬듯이.

 

배우로서든 사람으로서든 자신의 위치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알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에요. 그런 인생의 방향을 가늠하고 깨닫기 시작한 건 언제였나요.
대학에 가기 전까지는 인생의 꿈이 없었어요. 친구들에게 “너는 왜 사니?” 하곤 했어요. 내 삶이 무료했으니까. 그때 배우라는 직업, 뮤지컬이라는 세계가 운명처럼 다가왔어요. 재수를 하면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계속 고민했죠. 그래서 진로를 바꿔 연극영화과를 가게 됐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중력을 벗어날 수 있었네요.
그런데 졸업한 후로도 계속 고민이 됐어요. 이걸 해도 되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참 멍청한 생각을 했던 거였어요. 말 안 해도 아시겠죠? (웃음) 저는 지금도 이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그런데 그땐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답 없는 고민을 한 거니까. 그래서 소중한 시간들을 아깝게 써버렸다는 생각도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확신이 없던 때였군요.
당당하지 못했어요. 어디 가서 “뮤지컬 배우 박혜나입니다”라고 못하고 “자유직업을 가진 박혜나”라고 했죠. (웃음) 나를 ‘배우’라고 소개하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돌아보니 제가 그 직업에서 한발 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임감을 덜 느끼고 있었던 거죠. 그걸 깨달은 후로는 어딜 가도 뮤지컬 배우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도 이 직업을 택한 걸 감사하면서, 그리고 모든 생활에서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추스르기 시작했죠.

 

그때가 언제쯤이었죠? 데뷔(2006)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쯤인가요?
아뇨. <달콤한 나의 도시>(2009) 끝내고 <남한산성>(2010) 하기 전쯤이었을 거예요. 공연 전까지 6개월을 쉬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처음 주인공을 맡아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흥행 면에서 많은 사랑을 얻지 못했거든요. 게다가 일까지 없으니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아침부터 밤까지 발레나 재즈댄스 수업, 성악 레슨, 헬스클럽. 그러다보니 그 기간 동안에 오히려 더 강해졌던 것 같아요. 예전엔 무작정 좋아서 했던 거라면 이즈음부터는 배우라는 직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됐죠.

 

또 한번 중력을 박차고 올랐던 시기네요.
<남한산성>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전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저도 남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무리 제가 잘나간다고 해도 제 주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면 저만의 기쁨은 온전히 누리지 못할 것 같아요.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아니까요.

 

이런 사람이 <심야식당>의 그 마릴린과 동일인물이라는 건 지금도 잘 와닿지 않아요.
하하하. 그런데 대체로 못 알아보세요. 작품할 때마다 무대 모습과 퇴근 때 모습이 너무 달라서. 한번은 저한테 “박혜나 언제 나오냐”고 물어본 분도 있었어요. (웃음)

 

뭐든 그다음이 중요하죠. <위키드>는 어떤 식으로든 배우 경력에 한 점을 찍을 겁니다.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 거 같나요?
지금까지 ‘나 저거 하고 싶어’ 해서 한 작품은 없어요. 들어온 작품 중에 꼭 해야 하는 작품이겠죠. 사실 전 모든 작품이 다 즐거워요. 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위키드>를 하니까 특별히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졌어요. 그만큼 <위키드>는 모든 걸 가르쳐주고 내려놓게 해준 작품이에요. 지금 저에게 많은 관심을 주시는 만큼 앞으로도 책임을 다해야겠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24호 2014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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