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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공연계 직업 탐구, EMK뮤지컬컴퍼니 권은아 협력연출가 [No.198]

글 |박보라 사진제공 |EMK뮤지컬컴퍼니 2020-04-03 6,314

공연계 직업 탐구 

공연 프로듀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로 해외 팀과 작업하는 연출부는 무슨 일을 하나요? 홍보마케팅 팀의 업무 영역은 어디까지인가요? 공연계 입문을 희망하는 예비 공연인들의 단골 질문 리스트를 뽑아보자면 이렇다. 궁금증을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질문에 대한 답을 아는 이들을 직접 만나보는 것 아닐까. 각각의 영역에서 오랜 시간 노하우를 쌓아온 3인방에게 공연계에서 프로로 살아남는 법을 들어본다. 

 

EMK뮤지컬컴퍼니 권은아 협력연출가

시간을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권은아는 <마타하리>,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등 EMK뮤지컬컴퍼니의 작품에서 해외 연출가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린 한국인 협력연출가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협력연출가는 해외 창작진과 국내 스태프, 배우 사이를 뛰어다니는 해결사이자 연출가의 곁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보좌관이다. 

 

협력연출가는 어떤 일을 하는가?  보통 협력연출가는 외국인 연출가가 작품에 참여할 때 존재하는 직책이다. 연출가의 분신처럼 그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는 게 주 업무다. 한국 스태프, 배우와의 소통을 원활하게 돕는다. 해외 연출가 곁에 통역사가 상주한다고 해도 커뮤니케이션에 사소한 장벽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런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이다. 또 외국인이 알 수 없는 한국적인 정서를 설명하고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업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면?   예를 들어, 나라마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 않나. 외국인의 시선에서는 예뻐 보이는 가발이나 분장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다른 문화권에서 섹시하고 멋있어 보여도 한국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또 윗사람에게 예의를 차린다거나 가족 간에 벌어지는 상황이나 대사도 외국인에게는 낯설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 조율한다. 물론 내 생각이 항상 정답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혼자 세 번을 생각하고, 주변 스태프 세 명에게 의견을 물어본다. 이후 연출가에게 최대한 자세하게 내가 느낀 문제를 설명한다. 대부분의 연출가는 한국인의 정서와 생각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빨리 이해하고 다른 방안을 생각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럴 경우엔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한 차선책을 만들어두려고 한다. 


 

연출가와 협력연출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연출가는 작품이라는 커다란 배를 이끄는 선장과 같다. 그러나 협력연출가는 작품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없다. 설사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해도 오로지 연출가의 의도를 돕는 범위 안에서다. 작품 연출 방향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그에 따른 책임은 연출가에게 있다.
 

작품에 연출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인가?  모든 배우와 스태프는 공연을 만들면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 뮤지컬에서는 연출가의 의도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협력연출가이기 때문에 연출가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출가에게 의견을 건네면 보통 수용해 주는 편이다. 그렇게 받아들여진 부분이 내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다. 내 의견이 반영되어 추가되거나 수정된 장면을 통해 연출가가 의도한 방향성으로 나아가고, 관객들의 반응이 좋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니까.
 

특별히 기억에 남은 작품의 작업 과정을 설명해 준다면?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은 <웃는 남자>다. 직접 한국어 가사 작업에도 참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로버트 요한슨 연출가가 극작을 맡았는데, 나에게 한국어 가사를 작업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초연 당시 팀에 합류해 가장 먼저 한국어 가사 작업을 시작했다. 번역 가사 작업은 새롭게 창작할 수 있는 범위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웃는 남자>는 로버트 요한슨 연출가가 본인의 의도를 정확하게 설명해 준 것이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다. 영어 가사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하거나 영어 가사에서 좋은 부분으로 차용해서 쓰거나 한국어 가사를 다시 영어 가사로 만들어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 이후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로버트 연출가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초연은 다른 극장을 대관해 테크 리허설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물론 재연도 애틋한 마음이 큰데, 초연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EMK뮤지컬컴퍼니의 경우에는 해외 창작진들과 활발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는 만큼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나.   솔직히 말하면 처음 만나는 해외 창작진과 합을 맞추는 과정은 쉽지 않다. 특히 나의 경우는 제작사 소속 스태프이기 때문에 종종 해외 창작진들이 나를 ‘스파이’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첫 미팅부터 해외 창작진, 특히 연출가의 곁에서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솔직하게 내 역할을 털어놓는다. 처음엔 보통 의심을 하다가도 시간이 흐를수록 행동에서 진심을 느끼면 마음을 연다. 그래서 두 번째로 만나면 작업이 훨씬 더 수월해지는 편이다. 지금 <모차르트!> 10주년 공연을 작업하고 있는 아드리안 오스몬드 연출가와는 얼마 전 열흘에 걸쳐 프로덕션 회의를 했는데, 허심탄회하게 서로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치열하게 머리를 맞댔다. 
 

한 작품이 잘 올라가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팀워크를 잘 다지기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공연 일을 하면서 지니게 된 좌우명은 ‘시간에 대한 책임을 지자’다. 3천 석의 공연장에서 3시간가량 공연하면, 약 9천 시간이 모이게 된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시간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과거에는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난 후에 반드시 무언가를 느끼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어느 날 갑자기 ‘공연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관객들이 그 결과를 보고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물론 그 와중에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공연은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만들기 때문에 서로 간의 신뢰와 약속이 중요하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이를 어겼을 때,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구성원들이 가장 예민해지는 테크리허설 직전에 서로 약속을 지키고 배려하자는 내용을 메신저 공지로 재미있게 올린다. 그러면 예민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지고 서로를 조금 더 배려하는 경우가 많다.
 

연출부에서 일하고 싶다면 어떤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을까?   아무래도 공연을 많이 보는 게 도움이 될 텐데, 티켓값이 비싸다 보니 학생들에게 공연을 많이 보라고 하는 게 미안하다. 나 또한 미국에서 공부할 때 돈이 없어서 학생 티켓을 구매해 간신히 공연을 봤다. 공연을 자주 볼 수 없다면 대신 다방면으로 곱씹으면서 보는 걸 추천한다. 주조연 캐릭터나 앙상블 배우의 스토리는 물론 의상이 담고 있는 의미나 조명의 활용 등 작품을 다각도로 생각해 보는 공부가 필요하다. 또 영어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만 해외 창작진을 바라보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종종 협력연출가는 해외 창작진과 국내 스태프, 배우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 다른 나라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공연 일을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인가?   <웃는 남자> 초연 때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연출부는 보통 연습실에서 약 12회, 극장에서 3~4회 정도 런스루를 체크한다. 또 첫 공연부터 마지막 공연까지 전 회차를 관람하고 매번 노트를 한다. 하지만 연출부도 사람인지라, 대부분 작품의 경우 개막 다음 주가 되면 조금씩 지겨워진다. 그러나 <웃는 남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초연과 재연 모두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달려들어 치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작품을 만들고 사랑하게 된 이유는 공연을 만드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0년 동안 달려올 수 있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8호 202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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