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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홍광호, ​흔들리지 않는우리의 꿈 [No.203]

글 |배경희 사진 |ROBIN KIM styling | 마연희 (M Style) , hair | 김환, make-up | 김범석 2020-08-31 22,203

홍광호, 흔들리지 않는우리의 꿈

 

홍광호라는 이름 앞에 한 단어의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면,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릴 단어는 다름 아닌 뮤지컬배우일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 뮤지컬이 낯설었던 시대에 뮤지컬배우라는 큰 꿈을 품고 지금까지 누구보다 뮤지컬배우로 살아온 사람. 그와 함께한 하루를 공개한다.

 

 

천천히 걷는 길

오늘 촬영 컨셉은 배우 홍광호의 하루였어요. 일 년에 한두 작품씩 쉬엄쉬엄 공연하면서 외부에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다 보니 평소엔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궁금하더라고요.   제가 그런가? 하긴 SNS를 안 하니까 일상생활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일이 없긴 하죠. 근데 쉬는 동안 별로 특별한 거 안 해요. 연습하고, 레슨받고,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고, 별거 안 해도 그냥 시간이 잘 가요. (웃음) 아, 이번에는 악기 연습을 열심히 했어요. 지난 1월에 <스위니 토드>를 끝내자마자 <그레이트 코멧> 출연을 확정했거든요. 이번 작품에서 직접 피아노하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데, 아코디언은 일면식이 없는 처음 보는 악기라 연습 초반에 고생 좀 했죠. 

 

한 작품을 마친 후 충분한 휴식을 갖는 이유는 그만큼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해서겠죠?   네, 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작품을 하는 게 좋아요. 바쁘게 활동하는 것과 느긋하게 활동하는 것, 어느 한쪽이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제 성격에는 가능한 천천히 작품을 하는 쪽이 맞는 것 같아요. 특히 이번에는 악기를 새롭게 배워야 해서 긴 호흡을 가지고 한 작품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작품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매일매일 참 감사하고 있어요.

 

어떤 일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것보다 절제하는 게 더 어려울 거예요. 그런 면에서 배우로서의 행보가 미더워요. 마음만 먹으면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 텐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기만의 원칙대로 활동해 왔으니까요.    소신이라는 말은 좀 거창하지만, 그렇게 봐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유명세가 조금 무서워요. 유명세의 ‘세’자는 세금 ‘세’잖아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질수록 그에 따른 대가도 커지기 마련인데, 워낙 타고난 성격이 유명함을 즐기는 것과 거리가 멀어요. 요즘에는 유명인들이 과거보다 쉽게 구설수에 오르고, 때때론 그들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더라고요.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지만, 저는 너무 많이 알려지고 싶지 않아요. 일부러 유명세에 따르는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싶지는 않은가 봐요. (웃음)

 

다시 말해, 배우로 활동하는 것만큼 개인적인 삶도 중요하단 얘기겠죠?   굉장히 중요하죠. (웃음)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람 있잖아요? 저는 그 사람이랑 실제 저랑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아닌 일반인도 SNS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올리잖아요. 하물며 배우는 어떻겠어요. 그건 일상생활 속 실제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데, 제 스스로가 그걸 혼동하면 ‘멘탈’을 지킬 수가 없어요. 배우인 저와 배우가 아닌 저를 구분지어 생각하고 싶고, 이제는 어느 정도 그런 훈련이 된 것 같아요. 

 

평소 인터뷰를 잘 안 하는 이유도 그래서일까요? 개인으로서의 삶을 지키고 싶어서?   저는 인터뷰도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인터뷰조차 자극적으로 편집될 때가 있잖아요. 조심히 말하려다 보면 속마음을 숨기게 될 텐데, 진심 없는 말을 담은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거죠. 또 말은 세밀한 뉘앙스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상황을 되도록 피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여러 개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는데, 상황상 그중 하나만 할 수 있다면 어떤 기자님들은 서운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결국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 하는 거죠. 다만, <더뮤지컬>은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뮤지컬 잡지라 그에 대한 고마움이 크고, 제가 신인 시절부터 오랜 시간 함께했기 때문에 거기서 비롯된 신뢰가 있어요.

 

이번 인터뷰는 <더뮤지컬> 창간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거잖아요? 주요 공연 관계자와 관객들이 참여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 뮤지컬이 성장하는 데 기여한 배우로 뽑힌 소감이 어떤가요.   사실 설문 조사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어요. 평소에 등수 매기기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근데 막상 결과가 나온 걸 보니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정말로!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 열 명 안에 내 이름이 있다고? 진짜? 어렸을 때 뮤지컬을 향한 마음 하나로 꿈을 키워왔는데, 제가 한국 뮤지컬 성장에 영향을 준 배우라니.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고마웠어요. 어떤 분들이 저를 뽑아주셨는지 나중에라도 꼭 좀 알려주세요. 한 분씩 밥을 사고 싶습니다. (웃음)

 

 

누구보다 치열하게

예전부터 액터 뮤지션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그레이트 코멧>으로 드디어 그런 작품을 만났어요. 배우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작품에 매력을 느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배우가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단 생각이 들어요. 작년에 <스쿨 오브 락> 내한 공연을 보면서, 와! 배우들이 진짜 연주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놀랐어요. 특히 아역 배우들이 연주하는 걸 보니까 다른 때보다 더 큰 감동이 있더라고요. 저걸 해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그저 경이롭죠. 그리고 <그레이트 코멧>은 이머시브 시어터라는 형식이 매력적이었어요. 관객이 직접 무대에 오르는 참여형 공연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 객석을 설치하는 구조 때문에 색다른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아요. 

 

악기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아까 사진 촬영 전에 피아노를 너무 능숙하게 쳐서 놀랐어요.   예전에 악기를 몇 개 배우기도 했고, 연주하는 걸 좋아하긴 해요. 군악대에서 클라리넷을 담당하기도 했어요. (웃음) 그런데 피아노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로 제대로 쳐본 적이 없어요. 예전에 첫 단독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딱 한 곡만 열심히 연습했던 경험을 제외하면요. 그래서 악기 연습을 시작한 직후 두 달간은 너무 괴롭더라고요. 피아노도, 아코디언도, 도무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요. 관객분들이 내가 연주하는 걸 보고 웬 시간 낭비야 그러면 어떡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하니까 적어도 이 음악들만큼은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연주하겠다는 마음으로 피나는 연습을 했죠. 전 그래야 제 직성이 풀릴 걸 알아요. 

 

연습을 계속할수록 악기에 재능이 있단 생각은 안 들던가요.    얼마 전 공연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제작사 이사님께서 악기 연습은 잘되고 있는지 물어봐 주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죠. 요즘은 제가 연주하면서 제가 놀랍니다. 하하. 내가 초등학생 때 피아노를 그만두지 않고 전문적으로 배웠다면 어떻게 됐을까. 요즘 피아노를 치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땐 동기 부여가 안 돼서 그랬는지 바이엘 하권을 배우다 말았거든요. 아! 기사에 꼭 써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요. 저희 팀 박재현 협력 음악감독님께서 피아노 연습에 정말 많은 도움을 줬어요. 둘 다 어렸을 때 뮤지컬을 시작해서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 자기 일처럼 열과 성을 다해 레슨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일면식도 없었던 아코디언과는 어떻게 가까워졌나요.    서울에 코스모스 악기에서 운영하는 큰 아코디언 센터가 있어요. 거기에 악기를 사러 갔다가 담당자분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젊은 사람이 아코디언을 보러 와서 신선했나 봐요. 아코디언은 보통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는대요. 담당자분이 악기에 대한 설명을 얼마나 친절하게 해주시던지, 그 모습에 감동받아서 레슨을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죠. 실제 아코디언 연주자로도 활동하는 분이셨거든요. 악기 센터에서 만나 스승님이 되어주신 박준송 과장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어요. (웃음) 저는 항상 선생님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액터 뮤지션 뮤지컬과 함께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했던 장르 중 하나가 댄스 뮤지컬이었던 거 기억해요? 그 마음도 여전히 변함이 없을까요?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웃음) 근데 저 어렸을 때는 춤 잘 췄어요. 제 생애 첫 뮤지컬이 초등학생 때 교회에서 했던 ‘솔티와 함께’라는 작품이거든요.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그 공연을 하면서 깨달았죠. 아, 내가 춤을 잘 추는구나! 으하하. 심지어 계원예고 시절에는 학교에서 애크러배틱을 가르쳐줬던 심정완 형의 수제자이기도 했어요. 이제는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지만…, 만약 멋있는 댄스 뮤지컬이 만들어진다면 장기간을 투자해서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웃음)

 

 

뮤지컬이라는오랜 꿈

최근에 광호 씨가 부른 <데스노트>의 ‘데스노트’ 뮤직비디오 영상이 유튜브에서 천만 뷰를 달성했어요. 혹시 소식 들었나요.   아, 그 이야기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유튜브를 많이 안 봐서 그게 어떤 수치인지 감이 잘 안 오더라고요. 물론 감사했지만요. 저는 이런 특별한 계기가 아니면 평소에 제가 부른 노래를 잘 안 들어요. 친구들을 만날 때 애들이 절 놀리려고 제 노래를 틀면 막 성질내요. ‘그거 좀 틀지 말라고!’ 이러면서. (웃음) 근데 이번에 오랜만에 ‘데스노트’ 뮤직비디오를 다시 봤더니, 나 참 어렸구나, 그런 생각만 들던데요? 으하하. 저 때가 흔히 말하는 리즈 시절이었구나 싶었죠.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 건지. (웃음)

 

사람들은 그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 곡 정말 잘 불렀다’는 생각만 할 거예요. 천만 뷰는 뮤지컬계에서 당분간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것 말고도 지금까지 많은 기록을 세웠죠. 역대급 단독 콘서트, 웨스트엔드 무대 진출, 해외 시상식 수상 등등. 그중 유독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게 있다면 뭘까요.   제가 제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계속 이렇게 뮤지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진짜 너무 감사해요. 그 외에는, 글쎄요. 사실 저는 지나온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라 이미 과거가 된 일은 쉽게 잊어요. 대부분 현재에 대한 생각만 한달까. 특히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면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서 요즘엔 온통 <그레이트 코멧> 생각뿐이에요. 지금 제 이야기, 기대하신 답변하고 너무 거리가 멀죠? 옛날에도 인터뷰할 때 이전 작품이나 활동 이야기가 나오면 할 말이 잘 안 떠오르더라고요.

 

그래도 배우마다 자신의 대표작이 있잖아요. 홍광호라는 배우의 대표작이라면 한 시즌에 두 대표 캐릭터를 연기한 <오페라의 유령>, 9개월 동안 장기 공연을 한 <지킬 앤 하이드>, 웨스트엔드 무대에 섰던 <미스 사이공> 같은 작품이 먼저 떠오르죠.   저는 출연작 중에 의미 없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품이든 제 인생에 각각 다른 의미를 남기죠. 그런데 제 배우 인생에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얻은 작품을 꼽으라면, 그건 <미스 사이공>이에요. 웨스트엔드 공연에 참여하면서 배운 게 참 많거든요. 뮤지컬의 메카라고 하는 런던은 뮤지컬 역사가 오래됐고 그만큼 공연 문화가 선진화돼 있잖아요. 공연이 이루어지는 작업 과정을 보면 참 대단하다 싶을 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뮤지컬을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한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저는 우리나라 스태프나 배우의 실력도 그에 못지않게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오리지널 프로덕션이라고 포장해서 내한하는 투어 공연의 퀄리티보다 한국 뮤지컬이 뛰어날 때가 많아요.

 

<미스 사이공>은 2006년 국내 공연 당시 커버 역할에서 주인공으로 무대에 긴급 투입되는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라 더 소중할 것 같아요. 그 이전까지 숱한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이야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죠.   그때는 뭐든 하고 싶은 마음에 오디션이란 오디션에 다 지원했어요. <그리스>랑 <헤드윅>에도 지원했다 떨어졌죠. (웃음) 돌이켜 보면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규모가 아주 작았어요. 하지만 제 꿈은 그때부터 뮤지컬배우였어요. 그래서 오디션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언젠간 내가 원하는 무대에 설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믿고 싶었죠. 뮤지컬을 향한 마음은 아직도 그때랑 똑같아요. 저를 둘러싼 상황은 변했을지 몰라도, 마음만큼은 여전히 그대로예요. 

 

 

언제나 흔들림 없이

예전 인터뷰에서 애드리브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이벤트성으로 스페셜 공연을 선보이는 마지막 공연 날에도요. 그것도 공연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이겠구나 싶네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애드리브를 싫어한다기보다 극 중 시대와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이나 대사로 관객분들의 환상을 깨는 것을 싫어해요. 관객분들은 환상 혹은 비현실을 경험하기 위해 어렵게 극장에 오시는 데 그걸 순간에 깨뜨리는 거니까요. 저는 극 속의 유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한 번의 웃음과 작품의 완성도를 바꾸고 싶진 않은가 봐요. 그리고 저는 마지막 공연은 오히려 더 정석처럼 하자는 주의예요. 초심으로 돌아가서요. 배우와 스태프 들에게는 마지막 공연이지만 객석의 누군가에게는 처음 보는 공연이잖아요. 어릴 적에 어떤 공연을 보러 가서 소외되는 느낌을 받았던 경험이 크게 작용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공연을 여러 번 봐주시는 관객분들은 지금의 한국 뮤지컬을 있게 해준 감사한 분들이지만 공연은 늘 처음 보는 관객을 기준으로 제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2002년에 첫 프로 무대에 섰으니까 이제 곧 있으면 데뷔 20주년이 돼요. 20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뮤지컬배우로 활동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뭐가 가장 달라졌다고 느껴요?   제가 학창 시절에 뮤지컬배우를 꿈꿀 때만 해도 대중들이 아는 배우는 남경주, 최정원 선배님뿐이었어요. 두 분이 워낙 독보적인 활동을 하셨죠. 그런데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뮤지컬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배우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건 그만큼 국내 뮤지컬 시장이 커졌다는 애기겠죠. 헌데 후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신인 배우들은 예전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활동이 어렵대요. 뮤지컬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기회가 바늘구멍 같다는 거죠. 저는 정말이지 운이 좋단 생각밖에 안 들어요. 한국 뮤지컬의 중흥기를 함께하며 좋은 기회들을 얻었으니 시대를 잘 타고난 거죠.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후배들이 어떻게 활동하는 게 좋을지 많은 조언을 구하고 싶어 할 것 같아요. 그럴 때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해줘요?   사람마다 상황이 다 다르니까 웬만하면 섣부른 조언은 피하려고 해요. 그런데 최근에 한 후배가 ‘변했다’는 소문을 듣고 속상해하더라고요. 제가 십수 년 전에 왕성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거든요. 이제 조금 꿈을 펼치려나 싶던 시기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당시엔 큰 상처였죠. 그래서 후배에게 누군가 이유 없이 너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건 네가 여기서 영향력이 생겼다는 증거라고, 모두에게 완벽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사람들이 쉽게 하는 이야기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말해줬어요. 정작 제 자신도 그렇게 못 하지만요. (웃음) 솔직히 떠도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그 사람을 어설프게 아는 주변인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제가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것도 십수 년 전의 그 상처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혹시 뮤지컬배우로서 더 이루고 싶은 게 있을까요? 사람은 때때로 무언가를 원할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하니까요.   아까 말한 것처럼, 저는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을 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뮤지컬을 하고 있으니까 더 바랄 게 없죠. 물론 이 작품 하고 싶다, 저 작품 하고 싶다, 이런 욕심을 냈던 때도 있어요. 그때는 세상을 수직적으로 바라봤고, 그래서 불행했던 것 같아요. 위를 올려다볼수록 그 끝이 안 보이니까요. 대신 수평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훨씬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제가 제 자신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오히려 뭔가를 더 바라지 않는 거예요. 현실에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조용히 내 갈 길을 가자.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죠.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3호 2020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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