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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DD NOTE] 톨스토이가 바라본 1812년 전쟁의 의미 [No.204]

글 |김주연 공연 칼럼니스트 2020-09-21 996

톨스토이가 바라본 1812년 전쟁의 의미 

 

러시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쟁 두 개가 있다. 하나는 1812년의 나폴레옹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맞섰던 독소전쟁이다. 러시아는 이 두 전쟁의 승리를 특히 자랑스럽게 여겨, 각각 ‘조국전쟁’과 ‘대조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기리고 있으며, 수많은 예술 작품이 이 두 전쟁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원작 소설인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는 이 중 조국전쟁이라 불리는 1812년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혹독한 추위가 가져온 승리  

1812년 전쟁의 승리는 러시아군 자신들에게도 의외의 결과였다. 당시 프랑스 혁명을 발판 삼아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한 나폴레옹은 거침없는 기세로 유럽 전역을 정복하고 있었고, 그 기세를 몰아 1812년 6월, 선전포고도 없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쳐들어왔다. 병사들의 사기로 보나 훈련된 상태로 보나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에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간과한 것이 두 가지 있었으니, 바로 끝없이 펼쳐진 러시아의 광활한 대지와 살인적인 추위의 겨울이었다. 
 

원래 나폴레옹의 계획은 겨울 전까지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프랑스군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않은 채, 계속 도망치면서 전쟁을 늘어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자신들의 정신적 고향인 모스크바마저 버리고 도망갔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러시아군을 쫓아가던 프랑스군은 어느덧 러시아 대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거기서 악명 높은 러시아의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영하 40도를 웃도는 추위와 끝없이 내리는 눈, 거기에 살을 에는 세찬 바람까지, 프랑스군은 이런 겨울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병사들은 동상과 영양실조로 죽어갔고, 말들이 얼어붙은 땅을 걷지 못해 더 이상의 진격도 후퇴도 불가능해졌다. 결국 60만 대군 중 겨우 3만 명만 살아남은 상황에서 나폴레옹은 퇴각 명령을 내렸고, 러시아군은 그때서야 나타나 패잔병밖에 남지 않은 프랑스군을 격퇴하고 그들을 쫓아 파리에 입성했다. 숨을 죽이고 전쟁의 추이를 지켜보던 유럽 각국의 왕족들은 러시아의 승리에 환호했고, 이로 인해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산드르 2세는 별로 한 것도 없이 유럽 군주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역사는 누구에 의해 쓰여지는가  

나폴레옹 전쟁은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루이 르죈의 <보로디노 전투>, 모스크바 개선문,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등 음악, 미술, 건축, 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에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1812년을 소재로 한 모든 작품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역시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를 꼽아야 할 것이다. 1805년부터 1820년까지 약 15년의 시간과 러시아 전역의 광활한 공간, 거기에 559명의 등장인물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 작품은 두껍기로 유명한 러시아 문학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방대한 소설이며, 작가의 역사관과 세계관이 선명하게 드러난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다. 
 

작품 전체에 걸쳐 1812년 전쟁이 중요하게 그려지고 있지만, 톨스토이는 작품 속에서 결코 전쟁의 참혹함이나 위대한 조국의 승리를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에게 1812년 전쟁은 그 승패 여부가 아니라, 이후의 러시아 역사에 미친 영향이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의 두 주인공 안드레이와 피에르는 젊은 시절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숭배하던 러시아 귀족이지만, 실제 전쟁에 나가 참혹한 현장을 경험하면서 환상에서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 현실의 전쟁은 영웅 한 사람의 용기나 지략이 아니라, 수많은 민중들의 의지와 희생으로 치러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엔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톨스토이는 역사를 이끄는 것은 소수의 영웅이 아니라 이름 없는 민중들의 힘과 의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톨스토이는 1812년 전투에서 처음 농민 병사들을 만난 귀족 장교들이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참혹한 삶의 조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이후 러시아 역사를 뒤바꾼 혁명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피에르의 생각을 통해 또렷하게 드러나는데, 그는 전쟁이란 극한 상황 속에서도 신과 조국, 그리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는 러시아 민중에게서 삶의 진정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피에르는 작가 톨스토이의 생각을 대변하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다양한 버전의 『전쟁과 평화』   

소설 『전쟁과 평화』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와 발레 등으로 만들어졌으며,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 덕분에 대부분 ‘대작’이란 꼬리표가 붙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오드리 헵번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나타샤로 등장한 1958년 미국판 영화와 이에 맞서 1967년 소련이 제작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영화, 그리고 비교적 최근작인 2015년 영국 BBC에서 제작한 6부작 드라마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타샤’ 하면 떠올리는 것은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의 이미지에 가깝다. 반짝이는 눈동자에 담긴 젊음과 생명력, 그리고 백조처럼 미끄러지며 왈츠를 추던 우아한 몸동작. 그녀가 만들어낸 나타샤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몇 년 뒤 소련에서 이에 대적해 만든 영화의 나타샤 역 배우 역시 얼핏 보면 오드리 헵번을 닮은 배우를 뽑았나 싶을 만큼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1958년 미국 버전은 원작에 담긴 톨스토이의 역사관보다는 주인공 남녀의 연애사건에만 초점을 맞추어 다소 가볍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에 러시아(당시 소련)는 ‘톨스토이는 우리 것’이라는 자부심을 보여주기 위해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 자국판 영화 <전쟁과 평화>를 만들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드라마도 아니면서 7시간 반의 러닝 타임을 자랑하며, 실감나는 전쟁 장면을 위해 무려 75만 명의 엑스트라를 등장시킴으로써 당시 최대 엑스트라 출연 영화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실제로 컴퓨터그래픽이 없던 시절에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다르추크 감독의 <전쟁과 평화>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군중 장면과 전쟁 장면을 자랑한다. 특히 작품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보로디노 전투 장면은 그 규모와 생생함에 있어 최신 영화 못지않은데, 개미처럼 화면을 가득 메운 병사들이 모두 CG가 아니라 실제 연기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BBC가 3년에 걸쳐 제작한 미니시리즈 <전쟁과 평화>는 화려한 의상과 미술, 그리고 섬세한 촬영과 편집이 돋보이며 현대에 제작한 프로덕션답게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여기에 릴리 제임스, 폴 다노, 제임스 노턴 등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영화와는 달리 6부작 드라마라는 형식 덕분에, 남녀 주인공의 스토리라인뿐만 아니라 피에르와 나타샤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역사관을 담는 데에도 비교적 공을 들였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04호 2020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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