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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미드나잇 : 앤틀러스〉 정우연, 필연을 향한 우연 우연을 향한 필연 [No.220]

글 |최영현 사진 |맹민화 2023-01-26 637

<미드나잇 : 앤틀러스〉 정우연
필연을 향한 우연 우연을 향한 필연

 

<미드나잇 : 앤틀러스(이하 미드나잇)>는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인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지난해 <난쟁이들> <유진과 유진>, 연극 <오만과 편견>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던 정우연. 그가 이번에 맡은 역할은 심약해 보이는 겉모습 뒤로 비밀을 감추고 있는 ‘우먼’이다. 

 

 

질문의 답을 찾아서

 

지난해 뮤지컬 다섯 편, 연극 한 편에 출연하면서 데뷔 후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어요.
쉼 없이 공연을 이어간 건 작년이 처음이었어요. 계속해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꿈만 같아서 감사했죠. 그전에는 1년에 한두 작품씩 하면서 차기작을 기다렸거든요. 공연할 때는 몰랐는데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한 작품을 끝내면 몇 달씩 지나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12월이더라고요. 그제야 한 해를 바쁘게 보냈다는 게 실감 났죠.

 

일 년 동안 쉴 새 없이 공연하면서 지치진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제가 작년에 만난 작품들은 적절한 때에 저를 찾아왔어요. 마음이 힘들 때는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하게 되고,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을 때는 유쾌한 작품을 만나는 식이었어요. 공연을 하면서 오히려 정신적으로 힘을 많이 얻었죠. 그리고 참여했던 작품들의 성격이 다 달라서 배우로서 자극이 많이 됐어요. 계속해서 도전하고 성취하는 재미를 느껴서 지칠 틈 없이 즐겁게 공연한 것 같아요. 

 

새해 첫 작품은 <미드나잇>이에요. 기존에 참여했던 작품과 달리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인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출연 제안을 받고 대본을 읽었는데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었어요.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재미있게 공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대본을 읽는 내내 우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도 좋았어요. 아무리 좋은 대본이라고 해도 연기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되면 출연을 망설이게 되는데 <미드나잇>은 대본만 읽어도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처음 대본을 읽고 머릿속에 떠올렸던 우먼은 어떤 사람이었는데요?
선과 악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이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선과 악의 학교>라는 영화를 봤어요. 영웅과 악당을 키워내는 마법 학교 이야긴데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와요. 인간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다. 이 말은 <미드나잇>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해요. 맨이나 우먼, 심지어 비지터도 선악이라는 이분법에 근거해 판단하기 어려워요. 맨과 우먼이 극단적인 상황에 있지 않았다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요? 맨과 우먼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일지 몰라요. 

 

평범한 인물이라도 극 안에 존재하는 캐릭터로서 인물을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요?
우먼은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말이나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해됐어요.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있다면 우먼처럼 말하고 행동했을 것 같았거든요. 우먼의 캐릭터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대신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작품의 배경인 독재 정권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내린 선택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선과 악으로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이라 너무 어려워요. 제가 어떤 답에 다가가느냐에 따라서 우먼이라는 캐릭터가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배우가 어떤 답을 찾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 같은 결말이라도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네요.
모든 작품은 배우가 어떤 서브텍스트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연기의 결이 달라져요. <미드나잇>만 해도 대본에는 맨과 우먼이 결혼한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요. 두 사람은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혼했을까? 두 가지 중에 배우가 무엇을 서브텍스트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표현하는 게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것들이 쌓이면 같은 결말이라도 다르게 보이고요. <미드나잇>은 다른 작품에 비해 배우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많아요. 고민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연기할 때 자유도가 높아서 재미있어요.

 

흥미롭네요. 얼마 전부터 테이블 작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우연 씨는 맨과 우먼을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맨은 좋은 남편이에요. 맨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우먼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느껴지죠. 집에서 저만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귀여운 모습도 있어서 이 남자 손에 피를 안 묻히도록 내가 상황을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웃음) 이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상황 때문에 악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게 안타까워요. 맨과 우먼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예요.

 

맨과 우먼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인물이 비지터예요. 우먼은 비지터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죠. 우먼으로서 비지터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나요?
비지터는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저는 선과 악을 오가는 신 같은 초월적인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우먼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냥 얄미운 존재죠. (웃음) 비지터는 우먼에 대해 완전히 꿰뚫고 있어요. 나의 치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어서 좋아할 수 없죠. 근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죽이 잘 맞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좋은 감정이 생기죠. 너무 싫지만 가끔 좋아서 짜증 나는, 그런 얄미운 존재예요. 

 

맨과 비지터와 호흡을 맞춰보면서 이 작품에서 새롭게 발견한 매력이 있을까요?
대본을 읽었을 때는 작품에 담긴 메시지나 입체적인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꼈어요. 배우들과 리딩을 해본 후에는 감정이 멈춰 있는 순간이 없다는 게 재미있었고요. 상황이나 상대의 상태에 따라 감정이 끊임없이 변하는데, 몇 장면을 빼고는 감정 변화의 폭이 그리 크지 않아요. 미세한 변화를 놓치면 극의 흐름도 놓치게 되니까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해요. 더욱이 우먼은 극의 흐름을 만드는 인물이 아니어서 흐름을 놓치는 순간 상대방에게 휩쓸려 버리겠더라고요. 

 


운명이 된 우연

 

우연 씨는 고교 시절에 우연히 연극영화과에 관심을 갖게 됐다죠?
고등학생 때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이 연영과를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해 주셨어요.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친구들 앞에서 노래도 곧잘 하고, 취미로 실용 음악 학원도 다녔거든요. 선생님들이 보시기에 가능성이 있어 보였나 봐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연영과가 어떤 과인지도 몰랐어요. 연기 학원에 가보니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그 길로 학원에 등록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했죠. 

 

대학 졸업 직전에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들었어요. 원래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할 생각이었어요?
연기 학원 선생님이요. (웃음) 졸업 직전까지도 아이들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영과에 다녀보니 연기에 재능 있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그냥 중간보다 조금 잘하는 정도? 그래서 배우를 꿈꾸지도 않았고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지 않았어요. 그러다 개인적인 일을 겪으면서 감정 표현의 폭이 넓어졌어요. 그 경험이 연기에 우러나오니까 제 연기가 달라지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연기가 늘었다고 칭찬하니까 연기에 재미를 조금 붙였죠. 그리고 그즈음 학교에서 졸업 공연으로 <베르나르다 알바>를 하게 됐어요. 난생처음 연기를 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어요. 그때 결심했죠. 앞으로 배우로 살아야겠다고.

 

<베르나르다 알바>는 어떻게 참여하게 된 거예요?
저희 학교는 제작 공연을 할 때 연출을 맡은 학생이 먼저 작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그다음에 오디션을 열어서 배우를 뽑았어요. 그때 저는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었고 학점도 다 채운 상태라 공연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작품 프레젠테이션 날에 다른 약속이 있었는데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생겨서 우연히 참관하게 됐죠. 근데 <베르나르다 알바> 공연 소개를 들으면서 심장이 막 뛰더라고요. 늘 남자 주인공 옆에서 들러리를 서는 여자 주인공 역할만 맡았던 터라, <베르나르다 알바>가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곧바로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죠.

 

마치 누군가가 우연 씨에게 배우가 되라고 계속해서 신호를 준 것 같네요.
우연이라 하기엔 정말 신기하죠. 어쩌면 이렇게 적절한 때에 필요한 기회가 찾아왔을까요? 만약에 고등학생 때 선생님들이 연영과를 추천해 주지 않았거나 혹은 <베르나르다 알바> 프레젠테이션을 못 들었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후 벌써 5년이 지났어요. 새해에 특별히 바라는 게 있나요?
2018년에 <김종욱 찾기>를 통해 데뷔했지만, 제 자신을 배우라고 불러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여러 작품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배우라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 어떻게 연기할지 좀 더 고민해 보려고요. 작년에 <유진과 유진>에 참여했을 때 배우의 연기가 누군가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저도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거든요.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배우가 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0호 2023년 1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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