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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작품 완성도 중요…서두르지 말고 공들여야" <더 스테이지>가 바라본 웨스트엔드 트렌드

글 |이솔희 사진 |예술경영지원센터 2025-06-30 166

 

영국 공연의 중심지 웨스트엔드.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함께 공연계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수많은 연극, 뮤지컬이 이곳에서 탄생하고, 매년 수백만의 관객이 웨스트엔드를 찾는다. 현재 웨스트엔드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어떤 문제를 마주하고 있을까? 영국의 공연 전문지 『더 스테이지』의 편집장 알리스테어 스미스를 만나 웨스트엔드의 현재에 대해, 그리고 공연 전문 언론 매체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더 스테이지』는 영국을 대표하는 극장 및 공연예술 분야 전문지다. 1880년에 창간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 출판물로 꼽힌다. 인쇄판과 온라인 웹사이트를 함께 운영하며 폭넓은 독자층을 유지하고 있다. 공연예술계 종사자와 관객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영국 공연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인 ‘더 스테이지 어워드‘와 ’더 스테이지 데뷔 어워드‘를 주관하고, 업계 관계자들을 한데 모은 ‘극장의 미래’ 컨퍼런스를 개최할 뿐만 아니라 영국 공연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한 리스트인 ‘더 스테이지 100‘을 발표하는 등 영국 공연예술계의 미래를 모색하고, 업계 담론의 장을 펼치는 역할을 한다.

 

지난 6월 2일부터 6월 6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진행된 K-뮤지컬국제마켓을 맞아 한국에 방문한 알리스테어 스미스는 지난 2014년부터 『더 스테이지』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더 스테이지』에서 주관하는 두 시상식과 ’스카이 아트 어워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업계 담론 형성에 기여한 ‘런던 극장 보고서‘와 ‘극장 인력 비평‘을 써냈다. 청년들이 공연예술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자선단체 ’겟 인투 시어터’(Get Into Theatre)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웨스트엔드의 현재

K-뮤지컬국제마켓 정보제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웨스트엔드 트렌드에 대한 특강을 개최한 알리스테어 스미스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극장은 약 40개 정도다. 가장 소규모로 운영되는 공연장은 432석 규모의 포춘 극장(Fortune Theatre), 가장 대규모로 운영되는 공연장은 2359석의 콜로세움 극장(London Coliseum)이다.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리드 프로듀서로 나선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현재 이곳에서 공연 중이다. 비영리극장은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 8개가 운영 중이다.

 

웨스트엔드의 관객 수는 꾸준히 우상향 성장 중이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19 이후 관객 수를 빠르게 회복하여 2022년에 예년과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으며, 2023년에는 관객 수 1,710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팬데믹 이전에 비해 11% 증가한 수치로, 브로드웨이의 관객 수보다 500만 명가량 많은 수준이라고. 일리스테어 스미스는 “브로드웨이와 달리 웨스트엔드는 지리적 경계가 뚜렷한 것은 아니어서, 그 범위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새로운 극장이 웨스트엔드의 범위에 편입될 수 있기 때문에 관객 수도 늘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리스테어 스미스는 브로드웨이보다 공연 제작비가 저렴하다는 것을 웨스트엔드 시장의 강점으로 꼽았다. 웨스트엔드에서 보통 한 편의 공연을 만드는데 1000만 파운드, 약 186억 원이 들어간다면, 브로드웨이에서는 2000만 달러 이상, 약 270억 원이 투입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연마다 다르지만, 티켓 가격도 브로드웨이에 비해 대체로 저렴하고, 신작이나 투어 공연을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영국 공연 시장의 장점이다.

 

하지만 업계를 불문하고 만연한 급격한 제작비 상승은 웨스트엔드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이와 더불어 국가지원금까지 축소되면서 지역 공연 등 보조금에 의존하는 공연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지원금 축소의 여파는 전문 인력 이탈로도 이어졌다. 일리스테어 스미스는 신작 대형 뮤지컬이 부족하다는 점, 대관 가능한 극장이 부족하다는 점도 최근 웨스트엔드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그는 “제작자가 극장 소유주와 계약을 통해 공연을 진행하는데, 공연이 주간 단위로 충분한 수익을 낼 경우 원하는 만큼 계약이 연장된다. 수년 동안 수익을 내며 공연을 이어가는 작품이 많다 보니 새로운 작품이 공연장을 찾기 쉽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위키드> 등 2020년 이전에 개막해 현재까지 공연 중인 작품이 11개에 달하고, 2020년 이후 개막해 장기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작품도 <물랑루즈!> <캬바레> 등 네 작품이다. 최근 개막한 공연을 포함하면 현재 웨스트엔드에 가용할 수 있는 뮤지컬 전용 공연장은 극소수다.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작품 중 많은 수는 기존 IP를 기반으로 한다. <백 투 더 퓨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위키드> <마틸다> <오페라의 유령> 등 책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 <민스미트 작전> <하데스타운> 등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 <티나 터너 더 뮤지컬> 등 음악 IP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 등 종류는 다양하다.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올리기를 원한다고 해서, 꼭 그 시작을 웨스트엔드에서 장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리스테어 스미스는 “웨스트엔드 외 지역에서 공연을 올린 후, 그 작품으로 웨스트엔드에 진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올드 빅 극장, 국립극장 등 주요 비영리 극장, 디 아더 팰리스, 아츠 시어터 등 상업적인 오프 웨스트엔드 극장, 트루바두르 웸블리 등 웨스트엔드 이외 지역 극장,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등 프린지 극장 등의 루트를 활용할 것을 강조하며 지난 3년간 올리비에상 수상작을 예로 들었다. 올해 수상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2017년 콘월 지역에서 첫선을 보인 후 2019년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2023년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빅을 거쳐 웨스트엔드로 왔다. 2024년 수상작인 <민스미트 작전>도 2017년 샐퍼드 지역의 로리 극장에서 초연한 뒤 뉴 디오라마 극장, 사우스워크 플레이하우스, 리버사이드 스튜디오를 거쳐 웨스트엔드에 정착했다. 2023년 수상작인 <하늘의 끝자락에 서서 Standing at the Sky’s Edge> 역시 셰필드 극장, 국립극장을 거쳤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과 BEAM 쇼케이스 등 공연계 진출의 발판이 되어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웨스트엔드에 진출하는 방법 중 하나다.

 

 

공연 전문 매체의 미래

앞서 언급했듯 『더 스테이지』는 영국 대표 공연 전문 주간지다. 1880년에 창간되어 영국의 역사적인 극장들이 설립되던 시기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부터 지금까지, 영국 공연계의 흥망성쇠를 꾸준히 기록했다. 연극, 뮤지컬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대 예술을 다루기에 넓은 독자층을 지니고 있다. 알리스테어 스미스는 “『더 스테이지』의 독자는 대부분이 업계 종사자이고, 일부 독자가 시어터고어(theatregoer, 공연 애호가)다. 즉 우리의 주요 타겟은 업계 종사자다. 그들에게 필요한, 특화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전 세계 공연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토론의 장을 마련해 주는 역할 또한 중요하다”고 공연 전문지로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 스테이지』는 인쇄 매체로 시작해 최근에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더 스테이지』의 웹사이트는 유료 구독 모델을 운영 중인데, 이는 알리스테어 스미스가 2014년 편집장으로 취임한 뒤 도입했다. 기존 웹사이트 이용자의 거부감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유료 모델의 단계적인 발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입 초기에는 단순히 독자의 가입을 유도해 고객 데이터를 모집했고, 그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료 구독 모델의 틀을 잡은 것이다. 초기에는 웹사이트 가입자 대상으로 하루에 5개의 기사가 무료로 제공됐다면, 점차 4개, 3개로 천천히 줄여나가 유료 구독을 유도했다. 알리스테어 스미스는 “영국에서는 이러한 온라인 유료 구독 모델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인쇄판을 구매해 소비하던 독자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더 스테이지』의 전체 구독자 중 80% 정도가 온라인 구독자다.

 

그럼에도 인쇄판을 꾸준히 발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우리도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왜 인쇄판을 계속해서 운영해야 하는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전히 인쇄판을 원하는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싶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독자에게 물성이 있는 존재에 대한 소장 욕구, 인쇄판을 보유하는 데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정보 그 자체’임을 강조했다. 그는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과거에는 인쇄판이 유일했다면 기술이 발전하면서 웹사이트, 어플리케이션, 뉴스레터 등으로 정보 전달 방식이 변화하지 않았나. 이제는 AI가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 제공하는 시대다. 미디어 매체는 이러한 트렌드를 포착하고, 독자의 소비 경로를 파악해야 한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방식보다 중요한 것, 미디어의 본질은 ‘정보 그 자체‘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숏폼 영상을 주로 소비하는 시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전문적인 정보를 깊이 있게 다루는 매체는 꼭 필요하다. 짧은 영상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프리미엄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업계이든 전문가를 위한 니치 콘텐츠는 필수“라고 말했다. 

 

지난 시간 동안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더 스테이지』를 발전시켜 왔듯, 앞으로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계획이다. 알리스테어 스미스는 “AI 기술을 웹사이트에 도입해 검색, 큐레이션을 고도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 1880년대에 설립된 매체인 만큼 그동안 쌓인 자료가 방대하다. 이렇게 역사적인 아카이브를 어떻게 잘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또 다른 수익 모델을 구축하는 것 역시 현재의 고민 사항이다. 이뿐만 아니라 『더 스테이지』에서는 여러 시상식과 컨퍼런스를 개최하는데, 분야를 오디오 북, 오디오 드라마 등으로 확장해 새로운 시상식을 개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오랜 시간 공연 업계에 몸담으며 도전과 변화를 계속해서 시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즐거움’이라 답했다. 이어 “공연업계에서 활동을 시작해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공연계가 훨씬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많은 이들이 공정하게 다양한 기회를 얻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에서 여러 편의 공연을 관람하며 "한국의 특화 콘텐츠가 인상 깊었다"는 소감을 남긴 그는 한국 뮤지컬 시장에 대해 "잠재력이 아주 큰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알리스테어 스미스는 "한국은 작품을 개발하고, 공연의 퀄리티를 높이는 일에 집중한다. 건강한 성장을 위한 옳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K-뮤지컬국제마켓 같은 큰 규모의 뮤지컬 전문 행사를 개최하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에 비하면 신흥 시장이지만, 이제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이나 <위대한 개츠비> 같은 사례가 계속해서 탄생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웨스트엔드 진출을 꿈꾸는 제작자에게는 "서두르지 말라"는 조언을 남겼다. 알리스테어 스미스는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큰 실수다. 한국,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제작자가 마찬가지다.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작품 개발에 공을 들이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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