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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그레이트 코멧> 하도권, 운명이 이끄는 곳으로

글 |이솔희 사진 |쇼노트, 앤드마크 2024-04-12 1,016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기반으로 재창작한 이머시브 뮤지컬이다. 무대에 객석을 설치하고, 배우들이 객석을 자유롭게 오가며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등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하도권은 우울과 회의감 속에 방황하는 피에르 역할을 맡았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인물이자, 무대 위에서 실제로 피아노와 아코디언 연주를 해야 하는,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역할이다. 2016년 <왕의 나라> 이후 8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돌아온 그는 요즘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서고 있을까.

 

8년 만의 뮤지컬 복귀작으로 <그레이트 코멧>을 선택했네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어느 순간 운명처럼 이 작품 속에 놓였고, 이 캐릭터의 옷을 입게 됐어요. 20년 전 뮤지컬 <미녀와 야수>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 제작사의 팀장으로 계시던 분들이 <그레이트 코멧> 제작사(쇼노트)의 대표로 계세요. 한 번은 통화를 하다가 불쑥 피아노 칠 줄 아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어느 정도 칠 줄 안다고 했더니, ‘그럼 작품 할래?’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시작됐어요. 근데 악보를 받아봤더니… 저 사기당한 거였더라고요. (웃음) 너무 어려운 작품인 거예요. 피아노 연주도 어렵고, 아코디언 연주는 더 어렵고. 공연 개막 두 달 전부터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몰라요. 그동안 열 편 넘는 뮤지컬을 했지만, 그간의 땀과 노력을 다 합친 것보다 이 작품에서 쏟은 노력이 더 크다고 느껴질 정도로요.

 

앞서 말했듯이, 연습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아무래도 악기 연주였겠죠?

맞아요. 무대 위에서 관객분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연주 실력이 어느 정도의 레벨까지 도달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만족하는 그 레벨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연습 기간이 길지 않으니 집 근처 연습실을 대여해서 밤새 연습하는 날도 많았고요. 보통 이렇게 많이 연습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레이트 코멧>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나는 분명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안 나오니까, 그 사실이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그 고통의 시간이 저를 피에르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혼자 연습실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느낀 외로움과 쓸쓸함,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저의 피에르에게 묻어나게 됐어요.

 

피에르라는 인물을 잘 보여주기 위해 더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요.

책이나 드라마는 인물의 서사가 점점 쌓여가는 게 보이니까 이해가 쉬운 편인데, 뮤지컬은 인물들의 서사를 2시간 반 안에 압축해서 표현해야 하다 보니 관객들이 한 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관객분들이 피에르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고민 끝에 ‘이 장면에 오기까지 쌓아놓은 에너지를 고스란히 방출하자, 그래서 피에르가 그 장면에 느낄 감정에 충실하자’는 답을 얻었죠. 피에르가 계속 무대 위에 있긴 하지만 드러나는 장면이 많지는 않다 보니 그의 감정들이 관객분들께는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감정을 잘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피에르가 지닌 감정과 본인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피에르의 결핍과 외로움에 공감해요. 저도 중년의 남성으로서 느끼는, 이유 모를 쓸쓸함이 있거든요. 연습할 때도 대본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피에르의 외로움이 되게 가슴 아파요. 그가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애쓰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벅차기도 하고요. 1막에서 무력하고 자조적이던 피에르가 2막에서는 자신에게 희망을 찾아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서 가는 모습이 저에게도 위로로 다가오더라고요. 관객분들도 피에르의 이야기를 통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주저앉지만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위로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레이트 코멧>으로 무대에 돌아오기 전, 작년 8월에 최민철, 양준모 등이 소속된 ‘섹시동안클럽’에 합류해 콘서트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웃음)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하는 건데, 오는 10월에도 콘서트를 계획 중이에요. 충무아트센터에서 4일간 열 거예요. 매 회차 다른 콘셉트로 진행할 계획이죠.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어요.

 

<그레이트 코멧>을 마친 후 더 도전해 보고 싶은 뮤지컬 작품이 있나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콰지모도를 정말 연기해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본 뮤지컬 오디션이 2014년 <노트르담 드 파리>였거든요. 프롤로 역할로 지원했는데, 외국 스태프분들이 콰지모도 역할로 오디션 볼 것을 제안하시더라고요. 몇 차례 오디션이 진행된 끝에 결국 아쉬운 결과를 얻긴 했지만, 콰지모도에게도 감정이 맞닿는 부분이 많아서 언젠가는 꼭 만나보고 싶은 캐릭터예요.

 

2004년 뮤지컬 <미녀와 야수>로 데뷔해 어느덧 배우 생활 20주년을 맞았어요. 배우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피에르가 부르는 넘버 가사가 떠올라요.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스스로 질문해 봤는데, 명쾌하게 답을 못 내리겠더라고요.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고, 실수가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피에르를 보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어요. 피에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은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제 연기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배우로 살고 싶어요.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뒤 뮤지컬 무대에 서다가 최근에는 드라마에서 활약 중이잖아요. 매체 연기에 도전한 건 연기에 대한 욕심이 조금 더 생겼기 때문일까요?

2014년 출연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빅쥴’이라는, 노래 없이 대사로만 표현해야 하는 인물을 처음으로 맡았어요. 그런데 관객분들이 제 연기를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노래가 아닌 대사로도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죠. 그걸 계기로 매체 연기에 도전하게 됐어요. 무대가 제 고향 같은 곳이라면, 드라마는 저를 세상에 알려준 곳이죠. 앞으로도 어느 곳에 놓이든 최선을 다할 거예요.

 

배우 하도권에게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요?

저 자신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에요. 배우로서 어떤 연기를 하고 싶은지. 저는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고,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캐릭터와 제가 맞닿는 부분이 없으면 표현하기 어렵죠. 캐릭터를 연기할 때 제 안에 있는 모습을 끌어다 쓰다 보니 언젠가는 내면이 소진될 것이라는 걱정도 있어요. 하지만, 늘 새로운 연기가 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아요. 관객, 시청자분들께 ‘이번에는 하도권이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하는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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