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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넥스트 투 노멀> 나탈리, 투명인간의 독립

글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엠피앤컴퍼니 2024-04-30 1,370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뮤지컬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매월 넷째 주 더뮤지컬 웹사이트를 통해 연재됩니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굿맨 패밀리’는 이름이 무색하게 위태롭다. 골조만 남은 무대처럼 엄마와 아빠, 딸이라는 외피만이 겨우 남아있는 상태다. 엄마 다이애나는 과거의 유령과 살고, 아빠 댄은 그런 아내의 치료에만 몰두 중이다. 딸인 나탈리는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집에서 벗어나려 한다. 한 공간에 있어도 서로의 시선은 닿지 않고, 대화는 겉돈다.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이런 상태에 이른 원인은 모두 같다. 가족의 죽음.

 

비극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슬픔과 분노, 불신과 외면, 무력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다이애나의 비극은 ‘환상’으로 드러난다. 그는 8개월에 잃은 아들 게이브를 제 안에서 열여덟 살까지 키워왔다. 다이애나의 미소는 환상 속 아들과의 대화에서만 피어난다. 그에게 환상은 비극이자 행복이다. 반면 댄의 비극은 ‘책임감’으로 치환됐다. 아들에 이어 아내까지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그를 해결 중심으로 움직이게 한다. 죽음을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로 다이애나와 댄은 수시로 다툰다. 그러나 비극을 함께 경험한 이들은 전우에 가깝고, 괴롭지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이다.

 

하지만 나탈리는 다르다. 오빠가 있었고 자신이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외에는 게이브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가족과의 추억도, 친한 친구도, 여유도 없다. 그래서 나탈리가 다루는 비극의 얼굴은 ‘고립’이다. 부모의 방임과 정보 소외로부터 비롯된 외로움, 오빠의 존재를 뛰어넘고야 말겠다는 오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되지 않는다는 무력감.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한다는 엄마와 “널 위로하는 게 먼저가 아니”라고 말하는 아빠 사이에서 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탈리는 불안과 외로움을 냉소로 감추고, 반박할 수 없는 결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가족을 떠나기로 한다. 완벽과 정답을 향한 강박이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런 나탈리의 삶은 다이애나의 상태가 악화되며 급속도로 추락을 시작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추락은 사춘기 청소년의 반항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구조신호에 가깝다.

 

 

<넥스트 투 노멀>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인물의 심리를 세심하게 다루는 작품이다. 감정은 관계로부터 비롯되고, 나탈리의 모습도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나탈리의 냉소는 남경주 댄을 만났을 때 가장 도드라졌다. 쉽게 호전되지 않는 다이애나와 피로가 누적된 댄은 점점 더 날카로워져 크고 작은 싸움을 일으키고, 나탈리는 그런 부모를 외면하는 것으로 자신의 불안을 달랜다. 2011년 초연부터 2015년까지 세 번의 공연에 참여한 오소연은 나탈리의 냉소를 탁월하게 보여준 배우다. 반면, 이건명의 댄은 다이애나를 향한 사랑이 여전히 깊어서 나탈리를 더욱 외롭게 만든다. 2024년 공연에 참여한 김환희는 냉소보다는 자학을 통한 보여주기식 반항으로 나탈리를 표현한다. 누군가 제발 나를 좀 잡아달라는 외침에 가까운 일탈. 그래서 그는 숨어서 울고, 자책하고, 후회한다. 결국, 나탈리는 독립되지 못한 이들의 다른 얼굴이다.

 

고립에서 벗어나 홀로 서려면 손을 뻗어야 한다. 모든 것에 “셀프서비스”를 고수했던 나탈리는 조금씩 담을 허물고 곁을 내준다. 나탈리 주변을 맴도는 헨리의 영향도 컸지만, 가장 큰 변화는 다이애나의 솔직한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네 오빠는 8개월 만에 장폐색으로 죽었어. 이 얘길 못했어. 미안해.” 나탈리는 엄마로부터 정확한 사실과 담백한 사과를 듣고서야 본인이 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감각한다. 오래도록 억눌러왔던 감정을 솔직하고 조용히 털어놓는 것도 이때부터다. 집을 떠나고 싶어했지만 언제나 엄마가 떠날까 봐 겁이 났다고, 자신도 같은 상황을 겪게 될까 봐 무서웠다고. 그렇게 나탈리는 자신의 취약함을 고백하며 자신이 쌓아 올린 거대한 이상과 일탈의 혼돈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온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대신 현재의 행복에도 조금씩 기대본다. 헨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 3순위지만 가장 좋아하는 문제라는 서툰 고백처럼.

 

<넥스트 투 노멀>의 ‘빛’이 2017년 세월호참사 1000일 추모음악회에서 불렸다. 작품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과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평범한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가 아닌, 늦더라도 각자가 온전히 애도하는 과정도 응원한다. 비극의 순간에도 삶을 조용히 밝히는 희망을 노래한다. 때론 비극을 두고 ‘모르는 게 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한 정보로부터 소외된 나탈리의 삶으로 알게 된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착각은 사실 소외의 방식이며, 온전한 진실의 전달이야말로 애도의 시작임을. 역시 언제나 아는 것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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