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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보이스 오브 햄릿> 김려원, 무대 위 새로운 삶

글 |이솔희 사진 |이민옥 2025-06-05 651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록 콘서트 형식의 1인극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인간의 본성, 실존적 딜레마, 도덕적 갈등을 담아낸 원작을 햄릿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여 풀어낸다. 햄릿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서 오롯이 혼자서 전하는 일은 배우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일 터. 햄릿의 감정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펼쳐내고 있는 배우 김려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뮤지컬 <보이스 오브 햄릿> 공연을 보니 약 90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혼자서 20여 곡에 달하는 넘버를 부르더라고요. 체력 소모가 장난 아닐 것 같던데요. (웃음) 

정말,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힘들어요. (웃음) 그래서 요즘은 체력적인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몸과 마음의 밸런스, 일상과 공연의 밸런스도요. 

 

<보이스 오브 햄릿>은 『햄릿』을 록 콘서트 형식의 1인극으로 각색했다는 점이 독특해요. 여성 배우로서 햄릿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하게 다가오고요. 려원 씨에게는 작품의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나요?

‘내가, 그것도 혼자서 햄릿을 연기할 수 있다니!’ (웃음) 이 생각이 가장 크게 다가온 것 같아요. 햄릿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이요. <보이스 오브 햄릿>은 햄릿 내면의 이야기, 즉 햄릿이 그 순간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에요. 햄릿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인물이에요. 보통 영화, 드라마 같은 콘텐츠에서 복수는 통쾌하게 그려지기 마련이지만, 사실 그런 ‘복수의 상황‘이 실제로 내게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고민하면서 망설일 수밖에 없잖아요. 햄릿은 그런 인간적인 고뇌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보이스 오브 햄릿>이 햄릿의 그러한 특성을 잘 표현한다는 점이 좋았어요. 햄릿의 고뇌를 록 사운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창작 초연작을 준비하는 과정에는 언제나 배우, 창작진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특히 <보이스 오브 햄릿>은 AI 기술이 극작, 작곡 과정에 활용됐다는 특징이 있어서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을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의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창작 초연작은 늘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우리가 다 같이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커요. 원작 희곡도 다시 보고, 대사도 함께 수정하고, AI의 도움을 받아서 덜어낼 부분은 덜어내고, 더할 부분은 더하기도 하고…. 이 과정을 모두가 함께 계속해서 반복한 것 같아요. 음악은 김성수 감독님께서 편곡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이셨어요.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AI가 만들어준 음악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창작진분들이 그런 부분을 집어내고, 같이 머리를 싸매면서 수정하고, 각 배우에게 맞게 편곡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창작 초연작인 만큼 본격적인 연습 전 작품을 발전시키는 시간이 길다 보니 대본과 음악이 완성된 후, 막상 연습할 시간이 너무 촉박한 거예요. 그런데, 다행히 거의 모든 창작 과정을 배우들이 함께해서 그런지 애써 외우지 않아도 대본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작품에 비해 대본을 익히는 과정이 수월했어요. 다만 1인극이기에 부담은 있었죠. 공연 중에 기댈 곳이 전혀 없으니까요. 이 작품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했어요.

 

 

AI가 제시한 여러 가능성을 배우, 창작진이 각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롭게 발전시킨 결과물이 <보이스 오브 햄릿>인 거네요. 공연 준비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배우로서 색다른 경험이었죠?

첫 상견례 때 주현 언니가 한 말이 있어요. “인간이 얼마나 우수한지 검증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요. 실제로 저희의 연습 과정이 그 말을 입증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AI를 활용할 때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AI가 혼자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지는 못하니, 우리가 좋은 질문,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이번 경험을 통해 체감했어요. 정보 검색의 수단이 책에서 포털사이트 검색창으로, 다시 AI로 점점 변화하고 있잖아요. 그 수단을 통해 얻은 정보를 얼마만큼 선택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것인지는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보이스 오브 햄릿>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햄릿』을 소재로 한다는 점이죠. 다양한 버전으로 수없이 많이 공연된 작품인데, 김려원의 햄릿은 어떤 모습이길 바랐나요. 

햄릿의 인간적인 고뇌를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아가야 하는데 멈칫하는, 운명에 휘둘리는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목표였어요. 관객분들 입장에서 통쾌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웃음) ’나라도 저런 선택을 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면서 햄릿의 마음을 더 이해하시길 바랐고요. 1인극의 매력이 배우마다 다 다른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이잖아요. <보이스 오브 햄릿>도 그래요. 배우마다 넘버 편곡도 다르게 했고, 장면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다르죠. 그래서 관객분들이 어떤 배우로 보든 재미있게 관람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무대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 중 하나라는 생각이 이번 공연을 보면서 문득 들더라고요. 

맞아요. 여러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게 배우의 매력이라는 걸 저도 이번 작품을 통해 크게 느꼈어요. 더군다나 이번 작품은 햄릿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공연이다 보니 인물의 감정이 더욱 잘 이해됐던 것 같아요. 내가 덴마크 왕자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다니! 새삼스럽게 배우란 참 멋진 직업이구나 싶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어요.

 

그렇게 진심을 다해 준비한 작품인데, 공연 기간이 길지 않아요. 아직 공연장을 찾지 않은 관객에게 한마디 해본다면요.

모든 공연이 마찬가지이지만, 그중에서도 <보이스 오브 햄릿>은 유독 피와 살을 갈아 넣어서 공연하는 기분이 들어요. (웃음) 한 회 한 회 열과 성을 다해서 할 수밖에 없는 공연이라, 관객분들도 공연을 보시고 나면 공연을 보기 위해 들인 시간과 마음이 아깝지 않다고 느끼실 것이라 자부합니다. 끝나기 전에 꼭 한 번 들려주세요!

 

 

려원 씨는 꾸준히 무대에 서며 그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는 배우 중 한 사람이지만, 누구나 그렇듯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고민을 품고 있겠죠?

계속해서 일이 주어지고,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요. 특히 요즘 들어 유독 많은 감정이 오가는 듯해요.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할 수 있으니까 이 일이 내게 주어진 거야’라는 생각이 공존하는 시기예요. ‘그래, 무서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자!‘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으악 그래도 너무 무서워!’라는 마음으로 쉴 새 없이 바뀌는, (웃음)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두렵지만, 잘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두려운 마음보다 크게 다가와서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려원 씨의 삶에서 잠시나마 숨 쉴 구멍이 되어주는 존재는 무엇인가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반려견 푸딩이에요. 푸딩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행복해요. 그리고, 소속사인 글림아티스트 식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요. 저희 사무실이 대학로에 있거든요? 그래서 하루의 공연이 끝나는 시간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세 네명씩 사무실에 모여요. 오늘 공연은 어땠고, 최근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데, 그 짧은 시간이 하루의 피로를 해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배고플 땐 야식도 같이 먹고, 서로의 공연을 시간 맞춰서 다 함께 보러 가기도 해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한 번에 모이기 쉽지 않은데, 회사 덕분에 온전한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해요. 

 

배우 김려원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가요. 

공연을 오래 하고 싶어요. 물론 공연을 많이 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그보다 무대에 오랫동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연극 <지킬앤하이드>를 봤어요. 최정원 선배님께서 무대에서 서 계시는데 너무 멋지고 대단하신 거예요. 관객분들에게도, 저희 같은 후배들에게도 정말 좋은 영향을 주시는 분이시잖아요. 그날 공연을 보고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 ‘저렇게 오랜 시간 관객분들이 나를 찾아와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으로 계속 부족함을 채워나가면서, 오래오래 관객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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