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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생계형 연출가 이기쁨의 생존기] 나의 첫 번째 뮤지컬

글 |이기쁨(연출가) 사진 |. 2025-07-07 318

<생계형 연출가의 생존기: 장르는 넘으라고 있는 것>

7월의 이야기: 뮤지컬

2009년 2월, 연극 연출가로 데뷔한 이기쁨은 올해로 16년째 ‘창작집단 LAS’를 이끌고 있다. 연극, 국악 극, 아동극,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만들어온 그는, 그 어떤 한 분야로도 쉽게 규정하기 어려운 연출가다. 이기쁨 연출이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생계형 연출가’로서의 현실 때문이다. 생활인으로서의 생존, 극단 대표로서의 책임, 그리고 연출가로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삶이 얽히고설켜 고단한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주어진 작업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필모그래피가 쌓여갔다. 화려한 능력으로 쌓아 올린 결과라기보다는,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행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성격은 이런 여정을 가능하게 했고, 그 속에서 이기쁨만의 배짱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금부터,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버텨온 이기쁨 연출가의 ‘생존기’를 매달 장르별로 하나씩 살펴보자.


 

이기쁨 연출가. 사진: 본인 제공

 

“안녕하십니까, 연출하는 이기쁨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글을 시작해 본다. 가끔 작품 관련해서 지면에 글을 실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어떤 작품과도 관련 없이 ‘연출가 이기쁨’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기회가 생기다니 좀 낯설다. 공연을 만드는 사람은 공연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법인데 갑자기 이렇게 직접적인 글로 나의 이야기를 소개해야 한다니—이래도 되는 것인가? 싶지마는 또 언제 해보겠나! 싶은 마음으로 써보기로 한다.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학창 시절에는 노래방에 자주도 갔다. ‘뻔질나게도 다녔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각종 오락의 마지막은 늘 노래방이었던 것 같다. 결제한 60분보다 서비스 시간을 더 많이 주는 노래방 사장님을 세상 가장 큰 권력자로 여기며 “사장님, 10분만 더!”를 외치던 꼬마 이기쁨은 심지어 꽤 큰 목청으로 노래 부르다 마이크를 터트린 전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노래를 안 좋아하는 한국인이 몇이나 있겠나. 취향이 조금씩 다를 뿐, 대다수 한국인의 핏속에는 흥의 그루브가 흐르지 않던가? 누군가는 발라드에, 또 누군가는 트로트에 마음을 담고 살아간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고, 슬픔을 풀고, 기쁨을 나눈다. 하지만 그때는 훗날의 내가 이렇게 ‘노래’를 가지고 일할 줄은 전혀 몰랐다. 게다가 뮤지컬…? 내가 뮤우—지컬? 뮤지컬은 영화감독을 꿈꿨던 청소년 시절에도, 전공을 바꿔 연극 공부를 하던 시절에도 일절 관심 없던 분야였다. 2000년대 초의 뮤지컬은 대극장에서 볼 수 있는 라이선스 쇼뮤지컬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자주 접해볼 기회도 없었으니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에 가까웠다. (고백하자면, 당시엔 순수예술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예술학도였으니 상업성이 짙은 뮤지컬은 하급 취급을 하곤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어렸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연극 연습할 때 오히려 음악 없이 대사만으로 모든 정보를 다 풀어내야 하는 사실이 좀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 만큼 뮤지컬이란 장르에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나의 첫 뮤지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2019년 <난설>이라는 작품으로 뮤지컬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줄리엣과 줄리엣>이라는 연극을 제작하며 공연 제작사 콘텐츠플래닝의 노재환 대표와 연이 닿은 것이 <난설>의 시작이었다. 생각해 보면 뮤지컬 연출은 처음이었던 내게 작품을 제안한 노재환 대표도, 선뜻 연출을 하겠다고 나섰던 나도 참 겁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라지만 그 처음을 여는 게 어려운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허난설헌’을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이라니! 두려움을 이기는 흥미가 차올랐다. 당시 나는 극단에서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헤카베>, <줄리엣과 줄리엣>을 제작하며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였다. 여성의 목소리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고민했고, 그 목소리가 단순히 ‘여성’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와 역사, 인간의 존엄을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때였다. 게다가 전통예술단체들과의 작업을 해온 터라 전통소리와 국악기들까지 익숙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낯선 분야로의 첫걸음으로는 어쩌면 최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대본도 읽지 않은 채 제안을 수락했다.

 

뮤지컬 <난설> 공연 장면. 사진=콘텐츠 플래닝

 

<난설>은 참 어려웠다. 허난설헌의 시와 함축된 대사와 가사들. 가사 안에 세세히 숨겨둔 작가님의 심상들까지 하나하나 읽어내고 이해하는 과정은 마치 조심스레 고서(古書)를 펼치는 것 같았다. 잘못 넘기면 찢어질 듯한, 그렇게 섬세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 이전에 내가 해오던 연극의 호흡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음악이 말보다 앞서고, 노래가 대사를 대신하는 순간들이 연출가로서 나를 완전히 새로운 리듬 안에 집어넣었다. 처음엔 그것들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진지하게 대사를 해나가던 배우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이 어떤 감정인지, 장면 중에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 순간을 뮤지컬 용어로 ‘송 모먼트’—즉, 인물들의 감정이 고조되어 노래로 터져 나오는 순간—라고 한다는 걸 연습 중 눈치로 배워갔을 정도니, 초짜 뮤지컬 연출가에게는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하지만 막막함은 곧 탐험의 에너지로 전환되었다. 뮤지컬 연출은 처음이지만 연극과 뮤지컬을 일주일 동안 7편씩 관극하던 매니아 관객이었던 이기쁨의 감각으로 <난설>의 대본과 음악을 다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난 공연 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늘 극장에 있었다. 일하지 않으면 공연을 봤기 때문에 언제나 극장이었다. 내 일터이자 배움터이자 놀이터인 극장. 빈 극장의 휑함은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 각종 장치로 가득 찬 극장은 마음을 웅장하게 만든다. 몇 년 전에 생긴 공황증세로 내가 연출한 공연의 모니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기는 정말 최악이었다. 무대를 사랑하는 마음과 관객의 시선이 두려운 마음 사이에서 나 자신을 부여잡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증세가 많이 완화되어 아주 좋아졌지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 눈과 귀에 담았던 무수히 많은 공연들이 나에게 방향을 제시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이건 아니야! 이건 별로야!”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서부터 수정해야 할 것과 대안점을 찾아냈다. 막힐 때면 나보다 훨씬 전문가인 작가님과 작곡가, 음악 감독님께 도움을 구했다.

 

연습 기간 동안 가장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배우들에게서 받은 영향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생각해 보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연출가를, 그것도 이전에 연극만 하다가 왔다는 연출가를 배우들도 처음엔 낯설어하고 쉽게 신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그 당시 배우들은 치열한 성향을 가진 멤버들이라 토론을 시작하면 끝을 내기 어려웠다. 대본 한 줄, 동선의 걸음 하나, 음 하나에 떠오른 의문점을 끝까지 풀고 넘어가야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었다. 특히 유승현, 안재영 배우와는 ‘이달’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극 속 역할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난설>은 사실상 ‘허균’의 회고록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고, ‘이달’은 허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물이었기에 그 기억에 남은 모습이 어떻게 그려져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며 수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았다. 어찌 보면 지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창작자와 실연자 간의 경계를 명확히 하던 기존의 작업 방식과 다르게 뮤지컬에서는 그 경계가 더욱 절대적이지 않으며 유연하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지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승현아, 재영아, 좀 미웠다! 흥~)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시간들은 이후의 작업에 있어서 커다란 자산이 되었음이 확실하다.

 

그 후로 여러 뮤지컬 작업을 이어오면서 나는 ‘서사’와 ‘음악’이 만나는 지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음악이 이야기를 안고 흐르고, 대사와 움직임이 음악과 어우러져 감정을 전달하는 그 찰나의 순간들—그것이야말로 뮤지컬이 가진 마법이 아닐까. 연극에서 출발한 나이기에 느낄 수 있는 거리감과 낯섦은 오히려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고, 더 집중하게 만든다. 어쩌면 그 낯섦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이 장르을 탐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장르를 넘어서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려는 시도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단지 젠더적 시선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복합성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사유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의 흐름은 결국 나는 ‘인간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다루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과 만나는 방식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음악이든, 대사나 창이든, 움직임이든, 침묵이든…!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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