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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데카브리> 김찬종, 눈 속에 박힌 불씨

글 |이솔희 사진 |표기식 2025-10-17 1,011

 

뮤지컬 <데카브리>는 19세기 러시아에서 발생한 청년 장교들의 반란인 ‘데카브리스트의 난’과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외투』를 모티브로 하는 창작 뮤지컬이다. 데카브리스트의 난 이후 각자의 신념을 가진 세 인물과 베일에 싸인 한 권의 책 ‘말뚝’을 둘러싼 성장과 갈등을 그린다.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작가이자 비밀경찰국 소속 수사관 미하일, ‘말뚝‘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는 아카키, 미하일의 동료 알렉세이가 등장한다. ”눈 속에 박힌 불씨가 불길로 번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 나간 아카키의 뜨거움은 그를 연기하는 김찬종에게도 그대로 스며들었다. 김찬종은 언제나 진심을 가득 담은 뜨거운 마음으로 무대에 오른다.

 

<데카브리>는 지난 9월 첫선을 보인 초연작이에요. <데카브리>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하게 됐나요?

아카키가 추운 세상에서 뜨거운 신념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저에게 뜨거움을 주는 역할을 만났을 때 느끼는 울림이 있거든요. <데카브리>의 대본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어요.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나라 관객들도 그 뜨거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카키는 체제에 순응했던 미하일이 본 모습을 되찾게 만드는 인물, 더 나아가 앞으로 걸어 나가는 다음 세대를 의미하는 인물이에요. 뜨거움을 지닌 인물인 아카키를 무대 위에서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아카키가 안쓰럽고, 유약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대본을 읽어 나갈수록, 그런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관객분들에게도 이 점이 느껴지길 바랐어요. 공연 초반에는 아카키가 불쌍해 보이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쟤는 뜨겁고 강인한 아이구나‘라고 느끼시길 바랐죠. 그래서 저도 아카키가 누구보다 강하고 뜨거운 인물이라는 점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카키에 대해 노래하는 넘버인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 ’말 잘 듣고 생각 없고 불만 없네‘라는 내용의 가사가 있는데, 저는 그런 단편적인 설명이 아카키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반대로 아카키는 따뜻하고 순수하면서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아카키는 체제 아래서 나름대로의 작은 반항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을 거예요. 일례로, 저는 아카키가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정자세로 하지 않아요. 아카키는 ”차르에게 영광을!“이라고 말하는 경례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경례를 똑바로 하지 못하는 아카키의 모습이 겉으로는 어리숙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그때도 아카키는 혼자만의 싸움을 하고 있는 거예요.  

 

 

작품의 중심 소재는 ’말뚝‘이에요. 미하일의 신념이 담긴 책이자 아카키를 비롯한 농노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책이죠. ’말뚝‘은 어떻게 아카키를 변화시켰을까요?

’말뚝’을 만나기 전의 아카키도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농노의 삶에서 성장해 가며 새로운 세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궁금증도 컸을 거고요. 그러다가 ’말뚝’을 접했을 거고, 비밀경찰국 소속 정서원으로 일을 하며 글을 배운 뒤, ’말뚝’의 내용을 알게 되기까지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겠죠. 그렇게 마주한 ’말뚝‘의 내용이 아카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우리는 여태껏 시키는 대로 살아왔지만, 이건 사는 게 아니었구나. 이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야 하는 이야기구나. ‘말뚝’은 우리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되어줄 작품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차 마음이 불타올랐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뜨거운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아카키가 ‘말뚝‘의 이야기를 퍼트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연습할 때부터 정말 많이 고민했고, 무대에 서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에요. ’나였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아카키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여러 번 고민해 봤지만, 마음속으로 답을 내리기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찾아지는 정답도 있잖아요? 최근에 아카키가 하는 말 중 ’죽더라도 가야한다’는 말이 유독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때 ‘아, 그래서 이 친구가 이런 행동을 했구나‘ 싶었어요. 이전의 삶은 사실상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내가 죽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야 하니까. 공연 후반부, 감옥에서 미하일이 아카키에게 물어봐요. 무섭지 않냐고요. 아카키는 단호하게 ‘네‘라고 답해요. ‘말뚝’을 만난 후로 무서운 게 없어졌다고요. 그 장면에 요즘 마음이 많이 가요. 아카키는 무대 위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말뚝’의 이야기를 퍼트리면서 살아갔을 거예요.

 

여담이지만, 공연의 초반부 ’빅토르’라는 인물로 잠시 등장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아카키와는 전혀 다른 톤으로, 무게감 있게 인물을 표현하는 찬종 씨의 모습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엿보이더라고요.

가장 먼저, 처음에는 아카키 역을 맡은 배우가 이 인물을 연기한다는 걸 관객분들이 모르시기를 바랐어요. 아카키로 등장하면서 확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카키와 대비되는, 무거운 톤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또, 19세기 러시아의 시대적 긴장감과 공포감을 첫 장면에서 잘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그 장면을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웃음)

 

 

극 중 ‘외투‘는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됩니다. 아카키에게 ’외투’는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나요.

미하일, 알렉세이의 외투와 달리 아카키의 외투는 낡디낡았어요. 알렉세이가 버린 담요를 덧대어 수선해서 입고 다닌다는 설명도 나올 만큼이요. 하지만 그 낡은 외투가 아카키에게는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을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희생의 의미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카키는 차르가 지나는 길목에서 목숨을 잃은 농노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주거든요. 나를 지켜주던 외투를 벗어 타인을 덮어주는 행동, 우리를 위해 희생한 이를 위해 내가 다시 희생하는 행동에 많은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데카브리>를 보고 어떤 점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 보면 좋을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내 앞을 막는 거대한 벽을 마주할 때가 있잖아요. <데카브리>를 보고 그 거대한 벽 앞에서도 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또, 저는 공연을 볼 때 ‘내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거든요. 관객분들도 <데카브리>를 보면서, 아카키의 모습, 미하일의 모습, 알렉세이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삶에 녹여낼 수 있는 메시지를 얻어 가시길 바라요.

 

 

한 권의 책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고 믿었던 아카키처럼, 찬종 씨 역시 한 편의 공연이 관객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할 수 있다고 믿나요?

물론이요.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많이들 던지잖아요? 그 질문에 앞서서, 저는 예술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요. 그 변화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늘 다짐해요.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래서 그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연기를 하자고요. 팬분들의 편지를 읽어보면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제 공연을 보고 많은 위로를 얻고, 힘든 하루를 이겨내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그게 정말 감사해요. 저 역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힘을 준다는 걸 알기에, 저도 관객분들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드리기 위해 더더욱 노력하게 돼요.

 

<데카브리>는 각자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찬종 씨가 배우로서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무엇인가요.

’무대 위에서 절대 거짓말하지 말자. 언제나 진심을 다하자. ’척‘하지 말고, 거짓된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하지 말자.’ 물론 저도 직업인으로서 가끔은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으면 최대한 빠르게 정신 차리려고 해요. (웃음) 하루 종일 일하고, 6시에 퇴근해서 ‘지옥철’을 타고 공연장에 와주신 관객분들 앞에서 어떻게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최선을 다해서, 잘해야죠. 예전에 ‘호불호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것보다는 관객분들에게 무엇이든 생각할 거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념을 잃지 않는 단단한 사람, 때로는 흔들릴지언정 언제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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