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여전히 무대 위에, 무대 곁에 존재하는 걸까?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무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 더 나아가 예술가로서의 생각과 신념에 대한 두 사람의 대담. 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뮤지컬 <말리>의 루나&수빈입니다.

뮤지컬 <말리>는 아역 스타였던 말리가 과거로 돌아가 인형 ‘레비‘의 몸으로 11세의 자신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현실의 그늘 아래 살아가던 18세의 말리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한 후 상처를 딛고 스스로의 자리를 찾는 과정을 그려내며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잊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위로를 전한다. 가수라는 꿈을 품고 어린 시절부터 쉼 없이 달려온 루나(에프엑스), 수빈(우주소녀)이 말리 역을 맡아 무대에 선다. 가수를 넘어 뮤지컬 배우까지, 자신의 스펙트럼을 끝없이 확장하며 꿈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말리>를 마주하고 있을까?
<말리>는 <말리의 어제보다 특별한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수년간 개발 과정을 거치다가 이번 시즌 새로운 모습으로 초연을 올려요. 두 사람이 <말리>와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작품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나요?
수빈 말리라는 한 아이가 기억의 조각을 찾아 나가면서 성장하는 이야기가 공감도 되고, 위로도 됐어요. 과거의 상처를 직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는 저뿐만 아니라 관객분들의 공감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루나 처음 대본을 읽은 후부터, 희한하게 대본이 손에서 안 떨어지더라고요. 저 역시 이 대본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극 중 말리가 하는 삶에 대한 고민이 제가 가진 고민과 닮은 부분이 많아서, 이 작품을 통해 나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실제로 공연을 준비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헤쳐 나가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나마 해답을 얻기도 했고요.

어린 시절의 나를, 그 안의 상처를 마주하는 인물을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말리라는 인물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요.
루나 말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겨내고 싶은지, 이 아이의 욕망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말리가 어떤 것을 이겨내고 싶은 걸까? 그것을 이겨내면 이 아이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싶었어요. 고민 끝에, 그 답은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항상 착각하잖아요. ’내가 이 일만 하면, 이것만 끝내면 완벽할 거야’ 하는 착각이요. 말리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하지만 완벽한 건 없죠.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행복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수빈 저는 말리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살아가다 보면 사람의 외면과 내면이 동일하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속으로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리로서도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해야 이런 부분을 관객분들에게 잘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른 분들도 그렇듯이 저 역시 사회 생활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다고 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으니, 제 경험과 감정을 잘 녹여내서 말리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부터 꿈을 꿨고, 오랜 시간 그 꿈의 길을 걷고 있는 입장이기에 <말리>의 이야기에 더더욱 자신을 투영하게 될 듯합니다.
수빈 말리가 이런 말을 해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고. 그 말이 되게 와닿았어요. 나도 그런 마음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늘 많거든요. 어떤 성과를 냈는지에만 집중하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였는지 잊게 될 때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말리의 저 대사를 들으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루나 저는 오히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리가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왜 어른들은 아이를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른의 기준에 맞추려 하는 걸까? 그 메시지가 저에게 강하게 다가왔어요. 나도 아이들을 대할 때 아이의 순수함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나의 기준으로 바라봐 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저는 요즘 좋은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여성으로서, 가수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 지점에서 많은 책임감을 느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게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이잖아요. 뮤지컬 무대에서 내가 아닌 한 인물로 서 있는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점이 있다면요.
수빈 저는 <번 더 위치>의 ‘러브‘를 만난 후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처음 ’러브‘를 만났을 때는 저와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인물에 대해 파고드는 시간을 가지면서 ’사실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는데,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거구나’를 깨달았어요. 저도 러브처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제 의견을 제대로 말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었어요. 그런 상황을 피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극 중 ’러브’가 성장하듯이 저 역시 ‘러브‘와 함께 성장했어요. 이제는 불편함이나 두려움을 직면하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하죠.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루나 수빈이에게 <번 더 위치>가 있다면, 제게는 <금발이 너무해>가 그런 작품이에요. 제 성격이 바뀌게 해 준 작품이죠. 저도 어렸을 때는 정말 소심했어요. 연습실과 집, 무대만 오가다 보니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안 나눠봤죠. 그런데 그 작품을 하면서 정말 많이 웃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도 많이 하게 됐어요. ’내가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구나‘ 그때 그걸 처음 알았어요. <금발이 너무해>가 제 첫 뮤지컬이었는데, 그 작품을 통해 이렇게 소중한 변화를 맞게 되었으니 뮤지컬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죠. 내 인생에서 뮤지컬은 끝까지 함께할 존재라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수빈 저도 언니처럼 그룹 활동을 할 때는 늘 멤버들이랑만 어울리다 보니 다른 분들을 만날 때는 소극적이었는데, 뮤지컬을 하면서 새로운 분을 많이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언니를 보면서 또 한 번 배웠어요. 처음 연습실에 왔는데, 언니가 다른 분들이랑 되게 잘 지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원래 아는 사이였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날 처음 만난 거였대요. 나도 사람들이랑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는데, 언니에 비해서 한참 멀었구나 싶었죠. (웃음) 그뿐만 아니라 연습 과정에서 의견을 모으고, 갈등을 해결할 때 언니가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졌어요.
루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좋은 선배,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너무 귀한, 아이돌 후배이자 뮤지컬 배우 후배인 수빈이를 만났으니, 더더욱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고요. 저희와 함께 말리 역을 맡은 김주연 배우까지, 세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해내면서, 각기 다른 매력으로 말리를 표현하고 있어서 저희 공연이 좋은 방향으로 잘 나아갈 것 같아요.

루나 씨는 2011년 <금발이 너무해>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오른 후 꾸준히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어요. 2022년에는 뮤지컬
루나 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묻어나는, 정성스럽게 갈고 닦아서 소중하게 마주하고 싶은, 그런 곳이에요. 하나의 씨앗이 예쁜 꽃으로 만개할 때까지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아직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아직도 무대에서 긴장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었어요. 내가 너무 많이 긴장하는 걸까? 오히려 긴장을 하지 않는 게 배우로서는 안 좋은 일 아닐까? 이 긴장감이 나에게 독일까 득일까? 이런 고민이요. 요즘 내린 결론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긴장감은 ‘독‘이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조금 더 성장해서, 무대에서 편안해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무대 위에서 내가 고민해서 만들어 낸 인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물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거예요.

2023년 <알로하, 나의 엄마들>로 시작해 <그레이트 코멧> <번 더 위치>를 거쳐 <말리>를 만났습니다. 이 네 작품은 작품의 규모와 이야기의 형식, 캐릭터의 성격까지 모두 다른데요, 수빈 씨가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수빈 가장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요. 첫 번째는, 내가 이 무대 위에 서 있는 게 상상이 될까?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두 번째는, 이 도전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을까? 아직 네 작품밖에 안 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민망하지만(웃음) 처음 <알로하, 나의 엄마들>과 <그레이트 코멧> 출연을 결정할 때는 정말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관객 사이를 오가면서 호흡해야 하는 작품인 <그레이트 코멧>을 경험하면서 도전 의식이 많이 생겼어요. 조금 더 다양한 작품, 인물을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번 더 위치>도, <말리>도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뮤지컬을 하면서 그 두려움이 많이 깨졌어요. 내가 노력한 만큼 성장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뮤지컬을 하면서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다양한 작품에 후회 없이 임하고 싶어요.

각각 2009년, 2016년에 데뷔했으니, 무대와 함께한 시간이 벌써 16년, 9년에 달해요. 그 오랜 시간을 무대에서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수빈 어릴 때부터 연습생을 하면서, 무대에서 노래하는 직업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꿈꿔 본 적이 없어요. 무대에 서고 싶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열망만 있었죠. 사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데뷔가 좀 늦은 편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는데, 스무 살이 넘어서야 데뷔를 했죠. 그래서 고등학생 때, 그 어린 나이부터 앞이 깜깜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 무대에 있는 시간이 더더욱 소중해요. 무대라는 공간이 저를 계속해서 성장하게 해주고, 무대에서 만나는 팬분들, 관객분들이 저를 치유해 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는 그 자체로 제 삶의 원동력과 다름없어요.
루나 저는 항상 같은 이유를 떠올려요. 제 가족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계속 무대에 있을 수 있는 이유도 모두 가족이에요. 가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게 저의 행복이에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더더욱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서고 싶고요.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무대에 노래하고 춤추면서, 연기하면서 마지막을 맞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