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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AWARDS] 2026 올리비에 어워즈, <패딩턴>의 압승과 지역 극장의 힘 그리고 공연예술의 미래를 향한 질문

글 |김세은(연출가·통역가) 사진 |. 2026-04-20 215

뮤지컬 <믿을 수 없는 해롤드 프라이의 여행> 공연 장면. 사진=Danny Kaan

 

지난 4월 12일 런던 로열 알버트 홀에서 열린 2026년 올리비에 어워즈는 50주년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 시상식이었다. 오랜만에 영국 공영방송 BBC가 중계를 맡고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지휘와 연주를 담당하며 전통적인 분위기를 더한 가운데, 인터미션 없이 단 두 시간 만에 진행된 빠른 구성은 간결한 영국식 시상식의 특징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코미디언 닉 모하메드가 진행을 맡아 톰 히들스턴을 즉석 사진기사로 만드는 등 위트 있는 진행을 이끌었다. 다만 수상 소감이 40초로 제한되어 다소 촉박하게 느껴졌고, 축하 공연 역시 단출한 무대 연출에 장기 공연을 포함한 여덟 작품으로 구성되어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시상식의 문은 로열 알버트 홀 레드카펫이 펼쳐지는 야외 계단에서 열렸다. 웨스트엔드 40주년을 맞은 <오페라의 유령> 팀이 ‘마스커레이드’를 화려한 의상과 함께 선보였고, 이어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직접 오르간을 연주하며 ‘더 팬텀 오브 오페라’ 넘버로 이어졌다. <캣츠> 내한공연에서 그리자벨라를 맡았던 조안나 암필이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칼롯타 역으로 출연 중인 모습도 반가웠다.

 

뮤지컬 <패딩턴> '마말레이드' 공연 장면. 사진=Danny Kaan

 

<패딩턴>: 11개 노미네이션, 7개 수상으로 시상식의 중심에 서다

올해 시상식의 화두는 단연 뮤지컬 <패딩턴>이었다. <인투 더 우즈>와 함께 11개 부문 후보에 오른 가운데 7개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상, 연출, 연기, 디자인을 고루 석권했다. 최우수 신작 뮤지컬상을 받은 프로듀싱 팀은 원작자 마이클 본드에게 감사를 전하며 패딩턴이 가르쳐준 가족과 친절, 공감이라는 메시지가 공연예술의 초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축하 공연에서는 ‘마말레이드’ 넘버가 소개되었고, 미스터 커리 역의 톰 에덴은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연기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뮤지컬 <패딩턴>으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아티 샤와 제임스 하미드. 사진=Danny Kaan

 

뮤지컬 남우주연상은 패딩턴을 연기한 제임스 하미드와 장애를 가진 배우 아티 샤가 공동으로 수상했다. 아티 샤의 패딩턴 캐스팅은 웨스트엔드의 주류 무대가 점차 더 포용적인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수상 순간 아티 샤의 아들이 매우 기뻐했지만, 정작 아들에게 “남과 다른 건 좋은 일”임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자랑스럽도록 노력하겠다고 메시지를 전하자 카메라를 피해 의자 밑으로 숨는 귀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제임스 하미드는 런던에 꿈과 삶을 찾아 이민 온 아버지가 곧 자신의 패딩턴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하데스타운>의 페르세포네로도 잘 알려진 빅토리아 해밀턴 배릿은 작품의 빌런 밀리센트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작품이 결국 사랑만을 남기는 이야기임을 강조했다.

 

연출상은 <패딩턴>을 연출한 루크 셰퍼드에게 돌아갔다. 주크박스 뮤지컬 <앤줄리엣> 및 지난 2021년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연출이기도 한 그는 어린 시절 동네 극장에서 큰 공연이 올라올 때마다 데려가 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전했다. 디자인 부문에서도 <패딩턴>의 강세는 이어졌다. 무대 디자인상은 톰 파이와 애시 제이 우드워드가 수상했으며, 의상 디자인상은 가브리엘라 슬레이드와 패딩턴 퍼펫 디자이너 타흐라 자파르가 수상했다. <식스>와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가브리엘라 슬레이드는 작년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에 이어 2년 연속 수상했으며, 16세 때 미술 시간에 만나 20년째 가장 친한 친구인 협력 디자이너 사라에게 감사를 전했다.

 

연극 <인터 알리아> 공연 중인 로자먼드 파이크. 사진=Manuel Harlan

 

배우상: 스타를 넘어선 이야기와 신예들의 힘

올해 배우상은 화려한 후보 라인업에도 불구하고 스타 파워보다 작품의 깊이와 감동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연극 남우주연상은 유명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 션 헤이즈, 톰 히들스턴을 제치고 1인극 <켄렉스>의 배우이자 공동 작가인 잭 홀든이 수상했다. <켄렉스>는 셰필드 지역 극장에서 시작해 오프 웨스트엔드를 거쳐 이번 4월 뉴욕까지 진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성장 경로 자체가 이번 시상식의 큰 테마를 요약하는 듯했다.

 

연극 여우주연상은 <인터 알리아>로 연극계에 15년만에 돌아온 로자먼드 파이크가 수상했다. 한국에서도 공연된 <프리마 파시>의 작가 수지 밀러와 연출 저스틴 마틴이 다시 만난 작품으로, 국립극장에서 시작해 웨스트엔드로 연장 공연되었으며 올해 11월 브로드웨이 공연도 예정되어 있다. 후보에는 <갈매기>의 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150석 규모 소호 씨어터 <웨더 걸>의 줄리아 맥더못이 나란히 이름을 올린 점도 인상적이었다.

 

연극 남우조연상은 <올 마이 손즈>의 파파 에시에두가 수상했다. 흑인 배우로 햄릿, 로미오 등 클래식한 역할을 거쳐 새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스네이프 교수를 연기하는 그는 어린 시절 극장을 접해본 적도 없고 올리비에 어워즈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프랜틱 어셈블리 극단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연기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밝히며 미래의 공연인들을 위한 지원을 당부했다.

 

연극 여우조연상은 <펀치>의 줄리 헤스몬할그가 수상했다. 시상은 한국에서도 사랑받은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 런던 공연을 이끌었던 암비카 모드와 미니 드라이버가 맡았다. <펀치>는 펍에서의 한 번의 폭력으로 살인자가 된 제이콥이 피해자의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변화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노팅엄 지역 극장에서 개발되어 웨스트엔드를 거쳐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다. 줄리 헤스몬할그는 피해자의 어머니를 연기하며 안타깝고도 깊은 감정을 전달했고, 시상식에 참석한 실화의 주인공 조안에게 감사를 전했다.

 

뮤지컬 여우주연상은 지난 여름 팔라디움 극장 앞을 새로운 런던 관광 명소로 만들어낸 <에비타>의 레이첼 지글러가 수상했다. 발코니 씬을 함께해준 런던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백만 개의 ‘노’ 속에서도 자신의 ‘예스’를 기다리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1978년 에비타를 연기한 일레인 페이지(우)와 2025년 에비타를 연기한 레이첼 지글러. 사진=Ian West

 

지역 극장에서 시작된 큰 상상력: 올해 시상식의 핵심 메시지

올해 시상식 전반을 관통한 핵심 키워드는 분명 ‘지역 극장’이었다. 스타 파워를 제치고 지역 극장에서 개발된 <켄렉스>와 <펀치>가 선방하며 지역 극장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소감이 많았다. 더불어 <아메리칸 싸이코>, <마틸다>, <라이프 오브 파이>, <오퍼레이션 민스미트> 등 수많은 작품들이 지역 극장에서 시작되어 더 큰 무대로 확장된 사례임을 상기시켰다. 찰리 쉰과 데이비드 테넌트 등 유명 배우들과 역대 수상자들도 자신들의 출발점이 지역 극장이었음을 강조하며, 지방 극장과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학교와 동네의 작은 무대에서 시작된 상상력이 얼마나 큰 세계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강조하며, 현재의 예술뿐 아니라 미래의 예술에 대한 공평한 지원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환기했다.

 

수상 하이라이트

<인투 더 우즈>는 <패딩턴>과 함께 11개 노미네이션을 기록했지만 최우수 뮤지컬 리바이벌상과 조명 디자인 상의 2개 수상에 그쳤다. 작품의 연출 조던 파인은 작곡가 손드하임을 인용해 “누구도 혼자가 아니며 혼자 행동할 수 없다. 어려운 지금일 수록 서로 돕고 응원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소감을 마무리했다. 축하 공연으로는 컴퍼니 넘버 ‘퍼스트 미드나잇’과 잭과 콩나무 스토리의 ‘자이언츠 인 더 스카이’를 선보였고, 이번 5월 브릿지 씨어터에서의 공연이 끝나면 9월부터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이어간다는 뉴스를 전했다.

 

최우수 연극 리바이벌상은 아서 밀러 원작, 이보 반 호브 연출의 <올 마이 손즈>가 수상했다. 브라이언 크랜스턴과 파파 에씨에듀가 출연해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작품으로, 이보 연출은 소감에서 작가 아서 밀러를 “모던 씨어터의 아들”이라 칭하며 감사를 전했다. 이 부문 시상은 영국의 대 배우 헬렌 미렌과 이안 맥켈런이 맡았다. 두 배우는 영국 공연 종사자들의 은퇴 요양소인 덴빌 홀을 후원하기 위해 참석했으며, 이들의 등장은 공연예술계가 세대와 시간을 넘어 서로를 지지하는 공동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질리언 린 안무상은 <에비타>의 파비안 알로이즈가 수상했다. 제이미 로이드의 오른팔로 <선셋 블러바드>, <에비타>의 안무를 맡았고, 올 여름 바비칸 센터에서 선보이는 뉴 버전 <데스노트> 안무가이기도 하다.

 

코미디 부문은 브로드웨이 코미디 연극 <오 메리!>가 수상했다. 작가이자 초연 배우인 콜 에스콜라는 “아직은 없는 완벽한 남편”과 “영국 나라 전체”에 감사한다는 소감으로 장내를 폭소케 했다.

 

특별상은 웨스트엔드의 아이콘 일레인 페이지에게 돌아갔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 경이 직접 시상대에 섰고, 카밀라 왕비, 작곡가 팀 라이스, 작사가 돈 블랙, 배우 휴 잭맨 등이 축사를 전했다. <캣츠>의 그리자벨라, <에비타>의 에바 페론, <체스>의 플로렌스, <선셋 블러바드>의 노마 등을 연기한 웨스트엔드의 상징적 배우인 일레인 페이지는 앙상블로 시작해 많은 거절과 실패를 경험했지만 인내와 응원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와 스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에비타>에서 기회를 준 웨버 경에게 감사를 전했다.

 

뮤지컬 <인투 더 우즈> 축하 공연. 사진=Charlie Flint

 

축하 공연: 새로움과 아쉬움 사이

올 해 시상식의 축하 공연은 <오페라의 유령>, <프로듀서스>, <에비타>, <패딩턴>, <슉드>, <인투 더 우즈>(Into The Woods), <믿을 수 없는 해롤드 프라이의 여행>(The Unlikely Pilgrimage Of Harold Fry), <위키드>로 구성되었다.

 

<에비타>의 레이첼 지글러는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으나 발코니 없는 무대 구성은 다소 심심했고, 한국 초연 20주년을 맞은 <더 프로듀서스>는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쇼뮤지컬의 아이 원트 넘버 ‘아이 워너 비 어 프로듀서’를 선보였다. 웨스트엔드 공연 20주년을 맞는 <위키드>는 ‘포 굿’으로 뭉클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특히 한국의 <스윙 데이즈>와 <위대한 개츠비> 작곡가 제이슨 하울랜드가 음악 수퍼바이저로 참여한 <슉드>의 무대는 뮤지컬 여우주연상과 조연상에 더블 노미네이트 된 조지나 오노라의 압도적인 기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만 장기 공연을 포함한 라인업과 상대적으로 적은 공연 수는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영상과 조명 중심의 간결한 무대 연출 역시 올리비에 특유의 미니멀리즘을 유지하면서도, 화려함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약간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공연 예술의 초능력: 가까운 예술, 미래의 예술

올해 시상식은 단지 수상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여러 수상자와 시상자들이 현재의 예술만이 아니라 미래의 예술을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를 반복해서 상기시켰다. 학교, 지역 극장, 작은 무대, 커뮤니티, 청소년 프로그램, 그리고 펀딩. 공연예술은 결국 거대한 상업 프로덕션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누군가의 첫 관람과 첫 기회, 첫 무대가 있어야 다음 세대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 밤이었다.

 

동시에 형식적으로는 장단이 뚜렷했다. 2시간 안에 끝난 것은 분명 장점이었다. 불필요한 늘어짐 없이 집중감 있게 진행됐고, BBC 중계와 콘서트 오케스트라는 품격을 더했다. 그러나 수상 소감 40초는 정말 짧았고, 축하 공연 역시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같은 장기 공연 작품을 포함한 8개로 제한되어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다. 더 많은 신작들을 실제 공연에 가깝게 보여주었더라면, 다채로웠던 지난 시즌이 풍성하게 살아났을 것 같다.

 

2026년 올리비에 어워즈는 빠르게 지나간 시상식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작은 무대에서 시작된 상상력, 지역 극장의 역할, 그리고 미래의 예술을 위한 지원. 화려함보다는 본질을 택한 이 시상식은 작은 불씨가 어떻게 웨스트엔드와 전 세계를 밝히는 예술로 성장하는지 보여주며 '공연 예술의 초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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