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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 <베토벤> 안토니, 가시를 되찾은 장미

글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2026-07-16 224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더뮤지컬 칼럼을 통해 공연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선택지의 유무는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사회 안에서 얼마나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다. 이런 관점에서 본 뮤지컬 <베토벤>의 안토니 브렌타노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는 “모든 게 완벽”하다 노래하듯 많은 것을 가졌다. 귀족이라는 신분, 넓고 화려한 저택, 금융인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이들. 책이 소수에게만 허락되던 시절, 그는 아버지가 남긴 거대한 서재에서 지식을 얻고 연회를 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일견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는 그의 삶에 허락된 선택지는 제로에 가깝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프란츠와 정략결혼을 해야 했고, 남편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정이 아니라 돈이다. 프란츠는 안토니를 존중하기보다 그가 가진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뜨겁게 음악을 사랑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 안토니의 삶에서 음악은 품위 유지를 위한 취미에 머무를 뿐이다. 베토벤에게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건네며 시에 음악을 남겨달라고 제안하는 것은 그의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 조신함과 순응을 요구하던 19세기, 안토니는 조용하고 단아한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그는 그런 자신을 ‘가시 없는 장미’에 빗댄다. 누구보다 화려하게 피어 있지만, 보기 좋게 다듬어진 장미에는 스스로를 지킬 가시가 없다.

 

그런 안토니는 베토벤의 음악을 선택한다. 괴팍한 성격과 기행으로 그의 음악이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안토니만이 그를 끝까지 믿고 지지한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에서 느낄 수 있듯, 그는 베토벤의 음악과 존재를 그 자체로 존중한다.

 

 

안토니를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는 베토벤에게서 자신이 꿈꾸는 삶의 방향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베토벤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나 경제적 자유, 사회의 인정이 아니다. 자신만의 음악을 창조하고 그 예술이 자신의 의도대로 세상에 닿는 일이다. 당시의 음악가들은 왕실이나 귀족에게 고용되어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 피아노 연주가 귀족들의 내기 도구가 될 때, 베토벤은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기존의 질서를 거부한다. 안토니에게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삶을 선택해가는 베토벤을 향한 존중과 동경이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괴로움 역시 안토니에게 낯설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러니 결국 베토벤을 믿고 지지한다는 것은 억압받던 자신을 향한 다짐이기도 한 셈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버지에 이어 베토벤의 음악을 향유하고, 그의 영감이 되어주고, 내 삶의 희망을 그에게 투사하는 것. 그러나 안토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한계 안에서의 행동이 아닌 선택 그 자체를 궁극적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베토벤과 저택을 이용하려는 프란츠의 계략은 안토니 삶의 거대한 전환을 가져온다. 특히 아내의 재산을 남편이 임의 처분할 수 있도록 규정한 비엔나의 법은 개인을 뛰어넘는 견고한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고요한 용기를 꺼낸다. 안토니는 문서 위조 등의 문제로 추방되는 남편을 따르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비엔나에 남는 선택을 한다. 여성의 이혼과 독립이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를 생각하면, 안토니의 선택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시대와 계급이 강요하던 수동적 품위를 지키던 그는 이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능동적인 방식으로 진짜 품위를 선택한다. 그의 선언은 차분하고 단호하다. 안토니는 프란츠에게 자신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더는 상대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걸어가야 할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그렇게 그는 빼앗겼던 삶의 선택권을 되찾아온다.

 

자신을 ‘가시 없는 장미’라 부르던 안토니는 마침내 두려움 없이 세상을 알게 됐음을 노래한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베토벤을 존중했던 그는 이제 자신을 중심에 둔 삶을 이어간다. 안토니가 베토벤에게서 배운 것은 주체적인 자유와 선택하는 용기였다.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누구에게 허락되는가. 안토니가 내린 답은 존중이다. 타인의 존중은 선택할 권리를 열어주고, 나 자신을 온전히 존중하는 순간 그 선택을 실행할 용기가 생긴다. 그러니 안토니는 ‘불멸의 연인’이 아닌, 자기 삶의 선택권을 되찾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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