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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엠. 버터플라이> 김바다, 환상 너머의 마음

글 |이솔희 사진 |표기식 2026-10-02 794

 

지난 2012년 국내 초연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연극 <엠. 버터플라이>가 뮤지컬로 재탄생됐다. 이처럼 파격적인 도전에 힘을 싣는 것은 연극에 이어 뮤지컬 버전까지 연이어 무대에 오르는 배우 김바다다. 2024년 공연된 연극에 이어 지난 9월 22일 초연의 막을 올린 뮤지컬에서도 송 릴링 역을 맡은 김바다는 환상과 진실 사이를 오가는 인물의 내면을 한층 선명하게 표현하며 색다른 탈바꿈에 나선 작품의 중심을 잡는다.

 

<엠. 버터플라이>는 중국계 미국인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의 대표작으로, 프랑스 외교관이 20년간 사랑했던 여인이 사실은 남성 경극 배우이자 중국의 스파이였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에 잠식되어 가는 프랑스 외교관 ‘르네 갈리마르’와 치명적인 비밀을 감춘 경극 배우 ‘송 릴링’의 이야기를 오페라 <나비부인>의 서사에 연결해 전개한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뮤지컬 <엠. 버터플라이>의 첫 공연을 관람했는데, 첫 공연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빈틈없이 연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공연을 무사히 올린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일단 너무 후련하고요. (웃음) 워낙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온 좋은 작품이다 보니, 이 작품이 뮤지컬화되는 것에 대해 많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있었다는 것을 저 또한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 완성도 높고,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준비했던 것 같아요. 첫 공연 커튼콜 때 여러 가지 감정으로 울컥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기분이 좀 오랜만이었어요. ‘공연이 무사히 올라갔구나’ 하는 마음이요. 관객분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마음은 늘 가지고 있지만, 이번에는 유독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그런지 첫 공연 커튼콜 때 공연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여러모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송 릴링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 이번에 출연 제안을 받고 꽤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내가 관객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이미 송 릴링으로서 한 번 소비된 배우가 같은 역할로 다시 뮤지컬을 한다고 했을 때, 과연 궁금증이 들까 싶었어요. 관객분들은 이미 김바다의 송 릴링을 연극으로 충분히 보셨을 텐데, 뮤지컬로 형태가 바뀌었다고 다시 궁금해해 주실까? 궁금해해 주신다면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내가 보여드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오래 했죠. 그러다가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은 이유는 ‘시간이 더 흐르면 이 역할을 다시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음악이라는 요소가 추가되기 때문에 평생을 경극 배우로 살아온 송 릴링을 음악적으로, 움직임적으로 더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도전 의식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연극과 같지만 다른, 뮤지컬 <엠. 버터플라이>의 대본을 처음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엠. 버터플라이>의 뮤지컬화를 반대한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웃음) 이미 굉장히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연극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분해해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에 맞게 다시 설계하는 일이 엄청난 대공사일 것 같았어요. 작품의 고유한 매력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을까, 이전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요. 그런데 뮤지컬의 대본을 처음 받아봤을 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어요. 연극에서 느꼈던 작품의 매력이 잘 살아있었고, 약간의 빈 공간들은 음악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궁유진 작곡가님이 이 작품을 정말 오랫동안 준비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음악을 들을수록 오래 고민한 뒤 완성시킨 곡들이라는 게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뮤지컬 버전의 강점은 물론 음악이겠죠?  

음악이 주는 힘이 커요. 연극에서는 상황에 따른 송의 변화를 표정이나 호흡, 연기 톤으로 설명해야 했다면, 뮤지컬에서는 넘버와 안무를 통해 한 번에 표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어둠 속의 춤’이라는 넘버를 잘 들여다보면, 송이 스파이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르네는 프랑스 외교관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음악과 안무로 표현되고 있어요. 그런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으실 거예요.

 

 

연극부터 뮤지컬까지, 송 릴링이라는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서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송을 만난 르네가 그를 ‘마드모아젤’이라고 호칭할 정도의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존재감을 처음부터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르네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송에게 빠져들게 만들려면 이 인물이 어떤 톤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고요. 음성의 높낮이는 어떨지, 말의 속도는 어떨지, 르네를 향한 시선을 언제 주고, 언제 거둘지. 많은 고민을 했어요. 무엇보다 송은 평생 예술인으로 살아온 사람이잖아요. 경극에서 여러 차례 여성 역할을 연기해 온 예술가라면, 본인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여성으로서의 아우라를 확실하게 풍길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하면서 살아왔을 거예요. 그렇게 체득한 특별함이 있었을 거고요. 그래서 저는 송의 예술가적인 면모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외형적인 면도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에 인물에게 어울리는 몸을 디자인하기 위해 노력한 건 물론이고요.

 

그럼 ‘뮤지컬 속 송 릴링’을 표현할 때에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궁금합니다.

뮤지컬의 구조상, 송이 공연의 중후반부까지 르네의 환상 속 신비로운 존재로만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연극에서는 르네가 목격하지 못한, 송의 공간에서만 벌어지는 드라마가 몇 장면 더 있었고, 그 장면을 통해 송이 실제로 어떤 마음이었는지, 내면에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조금 더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 뮤지컬은 르네의 기억을 풀어나가는 구조에 조금 더 가까워서, 그래서 더더욱 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의 후반부에 송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관객들이 갑작스럽다고 느끼지 않게 하려면, 공연의 초반부에는 르네의 환상 속 인물 그대로 존재해 주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그 환상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 덧붙이자면, 아무래도 넘버를 불러야 하다 보니 대사를 할 때의 톤과 넘버를 부를 때의 톤에 큰 차이가 없게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소리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달까요.

 

연극 출연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송 릴링을 마주하며 인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지점이 있나요.

연극을 할 때는 ‘송이 서양인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 시대의 서양인들에게는 무지에서 오는 차별 의식, 폭력적인 시선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시선에 대한 분노가 송에게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제 상상이지만, 공연이 끝난 뒤 말을 걸어오는 서양인이 과연 르네뿐이었을까요? 무례한 방식으로 추근대는 서양인이 꽤 있었겠죠. 자신을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닌 동양에서 온 인형 같은 존재로 보는 시선에 대한 피로감이 송에게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 감정들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송을 다시 만났을 때는 그의 외로움에 마음이 가더라고요. 본인조차 정의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과 혼란을 숨겨둔 채,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외로움을 이겨내려면 얼마나 단단한 사람이어야 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공연의 후반부에 르네에게 ‘이제 진짜 내 모습을 보라’고 할 때도 단순한 분노만 표출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외로움에서 출발한 슬픔까지 포함된, 훨씬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 같아요.

 

 

송의 외로움이 잘 보여서 그런지, 송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자 ‘불을 켜자’고 제안하지만 르네에게 거절당하는 장면, 그리고 공연 후반부 르네에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묻는 장면이 이번 공연에서 유독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상황에 상처받고 슬플 거예요. 하지만 제가 선택한 송은, 그때의 감정을 바로 외면했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슬픔만 가지고 르네를 대하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르네를 속여왔고, 그 선택을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송 스스로도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 이어지는 넘버를 어떤 감정으로 불러야 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슬픔’에 치우친 감정으로 넘버가 마무리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직 찾아가고 있는 과정이긴 하지만, 지금의 제가 정리한 감정은 ‘난 너에게 진실을 볼 기회를 줬어. 그걸 외면한 건 너야. 이제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기대해’라는 마음에 가까워요. 한 단계 다른 감정으로 넘어가는 디딤돌이 되어주는 순간이에요.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묻는 건, 송의 입장으로 말하면 르네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찔러주는 대사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르네가 120%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송도 후회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자리를 벗어나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게 됐을 때, 송에게도 르네와는 또 다른 형태의 후회가 있었을 거예요.

 

사실 공연을 보신 분들에게 ‘송의 마음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었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만큼은 ‘영업 비밀’로 남겨두고 싶어요. (웃음) 정답은 없을 뿐만 아니라, 관객분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같은 텍스트, 같은 캐릭터를 다른 장르로 연기하는 경험이 배우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던가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는 연극을 했을 당시에 남은 몸의 기억을 전부 지우려고 노력했어요. 저를 제외하면 연출님을 포함해 대부분의 창작진, 배우분들이 <엠. 버터플라이>를 처음 작업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작품의 밑그림을 처음부터 함께 그려 나가려면 제 몸의 기억을 0으로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 역시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한다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뮤지컬에서 작품의 후반부, 송의 재판 장면을 연기하던 중 연극에서 동일 장면을 연기했을 때의 기억이 확 떠오른 날이 있었어요. 연극의 재판 장면에서 객석의 관객분들을 보는데 그분들이 모두 이 재판을 구경하러 온 서양인처럼 보였던 순간이 있거든요. 뮤지컬에서 그 기억이 묘하게 겹쳐져서 재미있었어요. 특히 연극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재판 장면이 끝난 후 넘버로 이어지거든요. 그 장면에서 느낀 감정을 이제는 넘버로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같은 작품의 연극 버전과 뮤지컬 버전을 모두 해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겠구나’ 싶어서 나름대로 만끽하고 있습니다. (웃음)

 

 

송이 그랬듯, 배우란 누군가에게 일종의 환상을 보여주는 존재잖아요. 바다 씨는 본인이 보여주는 환상과 실제 자신의 삶을 잘 구분 짓는 편인가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물론, 작품, 캐릭터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의 삶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요. 최대한 배우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삶을 구분 짓는 것을 지향하는데, 그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이 배우라는 일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에요. 배우는 자신의 내면을 재료로 삼아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어떻게 해야 이 내면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최대한 두 개의 삶을 잘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우마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퇴근길에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듣는 게 제게 잘 맞더라고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연을 듣다 보면 작품 속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는 기분이 들어요.

 

무엇보다 요즘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건 반려견이에요. 저한테 ‘견주’라는 직업이 추가 된 거죠. 이 아이를 산책 시키고, 돌봐야 하는 임무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 같아요. 저희 ‘시루’가 요즘 ‘개춘기’가 시작돼서, 그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거든요. (웃음)

 

최근 바다 씨가 본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 요즘 제 삶에서 그 노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한때는 평온함에 집착했던 시기가 있었고, 한때는 조금은 불규칙하고 평온하지 않은 상태가 배우에게 도움이 될까 생각하면서 길을 헤맸던 시기도 있어요. 지금은 평온하고 무탈한 순간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그때그때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애써 좋게 포장하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고,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고요.

 

2015년 데뷔 이후 쉼 없이 활동했고, 특히 최근 몇 년간은 1년에 4~5작품을 소화하고 있어요.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면서, 그때그때 다른 얼굴을 보여줬죠.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아주 오래전에, 배우라는 직업과 제 성향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던 때가 있었어요. 스스로가 특색이 없다고 느꼈달까요. 그때 누군가가 제게 ‘세상에는 너 같은 배우도 필요해’라는 말을 했어요. 그때 알았어요. 누군가는 ‘그 배우는 색이 애매하다’고 말해도,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배우는 다양한 색깔을 품을 수 있는 배우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걸요. 그때부터 감사한 마음을 품고 이 직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도, 10년 전에 좋아했던 일을 여전히 좋아할 수 있다는 것도, 다 너무 감사해요. 한 인물로서 무대에 오르는 순간이 여전히 정말 값지고 소중하다는 걸 요즘 들어 더 크게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 또 어떤 작업을 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감사한 마음만큼은 잃지 않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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