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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뮤지컬번역] 박창학 인터뷰/ 작품과 원작자에 대한 예의를 지켜라 [No.73]

글 |이동섭 사진 |김지현 2009-11-02 7,245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나는 뮤지컬 작품 중에서 파리와 런던에서 초연을 본 <노트르담 드 파리>와 <빌리 엘리어트>
를 가장 좋아한다. 그때 받은 감동을 망칠까 심히 두렵지만, 한국에 와서 한국어로 공연 중인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러 간 이유는 딱 하나였다. 작사가 박창학의 한국어 개사를 라이브로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이
하, <노트르담>)이고, 그냥 작사가가 아니라 ‘박창학’인데 어찌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게 그 작품을 사랑하
고, 그의 가사를 사랑해온 팬으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혹시 뮤지컬 팬인 당신이 박창학이 누군지 모른다면, 당신이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은 크게 두 가지이다. 그는 시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가사로 유명하며, 『라틴소울』이란 책을 펴낼 정도로 제3세계, 월드뮤직 애호가라는 점이다. 특이한 에피소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그가 사전을 좋아해서 책꽂이에 사전만 모아두었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팬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윤상을 윤상으로 만든 40퍼센트는 박창학이 쓴 가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뮤지컬을 윤상(의 음악)보다 사랑하는 독자라면, ‘그래도 대중음악과 뮤지컬은 기본부터 다르다’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만나서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9월 초 토요일 아침, 가을은 바람에 실려 살살 불어오고 있었다.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뮤지컬 개사가? 아직은 그저 두 편 정도 해보았을 뿐

 

뮤지컬에 대한 관심도를 먼저 체크해 보았다. 월드뮤직을 좋아하니 혹시 프랑스나 이탈리아 뮤지컬은 좋아하지 않을까?
뮤지컬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음반 작업은 제가 완벽하게 모든 요소들을 통제할 수 있는데 반해, 뮤지컬과 같은 라이브 퍼포먼스 장르들은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겠지만 현장성으로 인해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이런 불안한 요소들이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배우가 아무리 잘해도 음향팀이 실수할 수도 있으니까.

 

적극적인 관심은 없었겠지만, 좋아했던 작품은 있지 않았을까?
이안 길런이 녹음한 음반으로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좋았어요. 실제로 뮤지컬을 본 적은 없어요. <맘마미아>같이 원래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뮤지컬화되었다면, 관심은 가지만, 내 입장에서 이런 말하는 게 참 우스운데, 그게 한국말로 어떻게 개사되었을까, 그런 걱정을 먼저 하게 되니까. <지저스>나 <맘마미아>는 (뮤지컬로) 못 봤어요. 겁이 나서. 그래서 반대로 내가 해놓은 <노트르담>을 보고 ‘아, 미치겠다’라고 하는 원래 <노트르담> 팬들의 기분도 이해를 해요.

 

나중에 캐물으려했던 부분을 너무 쉽게, 인정해버려서 살짝 아쉬웠다. 원곡이 가진 느낌이 깨질까봐 두려워서 한국어 공연을 보지 못했다는 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왜 <노트르담 드 파리>의 개사 작업을 맡게 되었을까?
성 쓰루(sung through)니까. 연극적인 요소(대사)가 없으니까 일단 편했어요. 중간에 대사가 많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조율할 것이 많아지고 그렇다고 (대사까지) 내가 다 하는 것도 그렇고(…) 원래 코치안테와 플라몽동의 노래를 좋아했는데 ‘기회가 되서 그들의 뮤지컬을 내가 개사하면 조금 덜 창피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나에게 있어 가사를 쓰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몇 백 번이든 이 노래를 질리지 않고 들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거든요. 들을 수 있으면, 어쨌든 내가 만족한 결과가 나오는데, 만약 들을 수 없으면 그때부터는 (음표) 세어가면서 글자 수를 맞추는 정말 (단순한) 일이 되어버려요. <노트르담>의 경우는 ‘질리지 않고 들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플라몽동보다는 코치안테의 음악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그리고, 나는 플라몽동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데 한 번 만날 수 있다니까, 또 <스타마니아>를 한국어로 공연하게 되면 내 생각을 하지 않을까…. (웃음)

 

팬심도 일정 부분 작용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플라몽동의 <스타마니아>를 꼭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플라몽동이나 한국 제작자가 그에게 이 작품의 개사를 맡겼으면 좋겠다.  물론 그의 바람은 단순 개사가 아니라, 조금 더 나아간다.
그럴 수 없겠지만, 아예 처음부터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친구들과 음악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녹음실에서 가요처럼 만든 한국어로 된 <스타마니아> 음반이라… 상상만으로도 기대된다. 듣기로는 <노트르담>의 개사가를 선정할 때 여러 명이 참여하는 경쟁 방식이었다는데, 어떤 이유로 플라몽동이 박창학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에 플라몽동의 대답은 이러했다. “내가 생각하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노래들은 기본적으로 선율 위로 이야기가 물 흐르듯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Mr. Park의 가사는 이러한 면에서 나의 기본 생각과 일치했고, 몇 차례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확신을 얻었다.” 박창학은 원작의 서정미를 잘 살리기 위해 다른 뮤지컬 개사가들의 통상적인 작업 방식처럼 한 음에 한 음절씩 맞추지 않았다. 그래서 언뜻 들으면, 원곡에 비해 그의 가사량이 조금 더 많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글자 수가 아니라, 원곡의 정서이다. 이런 이유로, 박창학이 10개월에 걸쳐 전곡을 개사해서 다시 그걸 불어로 옮겨 플라몽동에게 전해주었을 때, 플라몽동은 다시 한 번 “Mr. Park의 가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가 (불어도 하고 뮤지컬도 아는) 내게 “<노트르담>을 직접 보시니까, 어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가사를 극찬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답다(Belle)’를 본격 해부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내 작품이 아니고, 플라몽동의 작품이다

 

‘Belle’에서 플라몽동은 첫 가사인 ‘벨’에서부터 단어의 발음이 ‘엘’로 끝나도록 해서 라임(운율)을 잘 살렸다. 그렇다면, 한국어에서는?
라임이 살아서 (리듬이) 느껴지는 건 한국어에서는 각운보다 두운이거든요. 나는 운을 살리는 것을 되게 좋아해요. 가사라는 게 일종의 정형시니까. 틀에 맞춰서 생각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는 자유시보다 더 재미있고 그런데, 거기에 너무 얽매이면, 정말 장난한 것처럼 되는 결과가 생기기도 해요. ‘아름답다’ 같은 경우엔 라임을 좀 맞춰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노래의 앞부분을 제외하고는 좀 힘들었어요. 그래도 각운을 맞출 수 있는 건 나름대로 맞춘 것인데. 운을 맞춘 것을 그렇게 알아주길 원하지는 않지만 (웃음) 그런 면에서 제일 마음에 들면서도 제일 아쉬운 노래죠.

 

원래 불어 가사와 그가 개사한 한국어 가사를 나란히 놓고 보면, 그가 ‘그. 이. 너(어)’ 등의 두운과 ‘ㄹ. 아’ 등의 각운을 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특별히 어려웠던 노래는?
‘대성당의 시대’와 ‘아름답다’. 특히, ‘아름답다’는 ‘벨’로 시작을 하니까 이걸 버릴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어요. 극에서 콰지모도가 묶여있다가 풀리면서 ‘벨’이라고 할 때 ‘아름답다’라고 하고 싶었는데 (노래에 들어갈 때는 어쩔 수없으니까 ‘벨’로 하고), 벨 자리에 ‘아름답다’라고 하면 너무 말이 많아 보인다며 프랑스 연출가가 어색하게 들려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해야된다고 좀더 자주 가서 주장을 했어야 되는데….(일동 웃음) 지금은 ‘벨, 벨’ 이렇게 되어 있는데, 한국 사람들 듣기엔 영어 벨인지, 작품 속에 종이 나오니까 무슨 소리일지 모를 수도 있고. 전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그거예요. 거기에 외국어가 남았다는 거.

 

내가 ‘아름답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개사라고 생각한 부분은 이런 것이다. ‘Glisser mes doigts dans les cheveux d`Esmeralda’(콰지모도) 직역을 하자면 ‘에스메랄다의 머리카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넣어 쓰다듬다’를 ‘내가 원하는 사랑은 에스메랄다’로, ‘Pousser la porte du jardin d`Esmeralda’(프롤로) ‘에스메랄다의 정원 문을 열다’를 ‘나의 것이 되게 해주오’로, ‘Je ne suis pas homme de foi’(푀비우스) ‘나는 정절을 지키는 남자가 아니다’를 ‘나도 어쩔 수 없어’로 바꾸었다. 절묘하게 원곡의 뉘앙스를 살리면서 귀에도 어색하지도 않게 들린다. 알다시피,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노트르담>은 가능하면 최대한 직역에 가깝게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워낙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높으니까. 내가 예상하건대, 플라몽동이 아예 시(가사)를 완성해서 그걸 코치안테에게 넘겼고, 그는 그 시에다가 최대한 말이 되게 음을 붙였을 것 같아요. 어떻게 개사를 하든지 노래를 불렀을 때, 다른 노래가 되면 안 되잖아요.

 

그렇다, 중요한 것은 원곡이 갖고 있는 분위기를 해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원곡의 정서를 이해한다고 해결되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 이름이나 고유명사가 많이 나오는데, ‘에스메랄다’를 예로 들면, 에스/메/랄/다(4음절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말로는 다섯 음절이 돼요. 그래서 개사할 때 어순을 바꿔서 (에스메랄다가) 다른 위치로 가면 음표 하나가 더 필요해져요. 최대한 원곡의 분위기를 살리려면, 일단 고유명사는 원곡의 자리를 지켜야 해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어려워요. 어순 자체가 다르니까. 한두 군데 빼고는 사람 이름, 고유명사는 거의 그 자리에 있어요.

 

원래 전문가는 디테일에 강하다고 했다.
의미를 전부 살리기 위해서 꼭 이렇게 고쳤다고 하기는 어려워요. 글자 수의 제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도 있는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져야죠. 또 의미나 내용적인 부분에서 바꿨다고 하기엔 노래의 운율적인 부분에서 문제도 있고. 나름대로‘ 이게 차선이다’라고 납득이 가는 선에서 제시한 거예요.

 

번역도 참 어렵지만, 개사는 단어의 음악성까지 고려해야 하니 훨씬 더 복잡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그가 겪었던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전제로 쓰여진 작품을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슷한 느낌을 줄 수 있을까?’하는 것과 포기해야 될 부분에 대해서는 미련이 안 남아요. 직역이 가능할 것 같으면 그대로 옮겨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뉘앙스가 미묘해지는 게 많아서 좀 힘들었어요.

 

이 부분에서 그의 설명이 조금 더 전문적으로 변했다.
한국 노래는 한 음표에 한 글자가 들어가야 되거든요. 멜로디를 짜놓아야 음에 가사를 붙였을 때 말이 되는 노래가 되는데, <노트르담>은 가사가 붙을 자리에 음표가 그대로 있어요. 내가 음절이 붙어있는 자리에 한국말을 집어넣으면 그대로 나와요. 그런 의미에서 악보를 갖고 작업하기는 불가능하죠. 그러면 정말 우스운 한국노래가 되니까. 그래서 악보는 나중에 기보할 때만 참고하고 그냥 노래를 들으면서 가사를 붙이듯 작업했어요. <돈 주앙>은 <노트르담>과는 달리 가요를 번안한다는 입장에서 작업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좀더 자유롭기도 했고. 물론, 한 번 해봤으니 조금 더 잘한 것도 있고. (웃음) 사실 <돈 주앙>은 원작보다 우리 배우들이 한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미안한 얘기지만, 가사도 원곡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노래하는 것도 우리 배우들이 더 좋아요.

 

 

완벽한 개사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개사, 완벽한 개사는 어떤 것일까?
완벽한 개사는 완벽한 번역처럼 있을 수 없는 이야기고, 최대한 가능한 선에서 말해보자면 원래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 노래로서 어색하지 않아야 해요. 나의 최종목표는 원작자. 가상의 원작자에게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거예요. (내 개사를) 가장 잘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나처럼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플라몽동이잖아요? 그런 플라몽동이 만족할 수 있는 개사를 하는 게 목표죠.

 

그는 원작자와 가상의 대화를 하고 있다는 심정으로 작업한다고 했다.
사실, 원작자와 대화를 하면 끝이 없어요. 다 묻고 싶어지니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최대한 나를 믿어주는 거예요. ‘(원작자는) 저 사람이라면 문제없다, (개사가는) 최대한 원작자의 의도를 살린다’라는 신뢰를 구축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자잘한 사안에 대한 의견 교환보다.

 

그는 가사 작업을 할 때 몇 백 번 들어도 어색하지 않을 때까지 작업한다고 했다. 자신이 개사한 걸 다시 들으면 어떨까?
윤상 3집의 어떤 곡을 다시 들으면서 ‘왜 이렇게 했을까. 여기를 한두 글자 고쳐볼까’라는 생각은 안 해요. CD가 나오면 그걸로 끝인데, 개사는 끝이 없어요. 마감이 없으면 영원히 고치고 싶어요. 가사는 완성이 됐으니까 발표하는데, 결국 개사에 있어서 완성은 없는 것 같아요. 아무튼 내 것은 아니니까. 플라몽동 것을 내가 최대한 그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한국어로 바꾸어놓는 것이지 내 작품은 아닌 거죠.

 

그렇다면, <노트르담>에서 어떤 곡을 고치고 싶은 건지 물었다.
본질적으로는 없어요. 여러 번 들어봤는데 한두 군데. 예를 들면, 한국 뮤지컬 가사가 좀 어색하게 들리는 원인 중 하나가 ‘-(하)네’로 다 끝난다는 거예요. <노트르담> 때는 필요 이상으로 ‘네’가 안 들어가도록 ‘지’, ‘어’로 끝나게 했어요. 다시 들어 보니까, 저런 것 한두 개는 그냥 ‘네’로 갔어도 되는데, 그런 정도. (일동 웃음)

 

그럼, 가장 만족하는 개사는?
뤽 플라몽동보다 잘하기는 어렵지만, 그도 좋아하겠지 싶은 것은 ‘달’,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정도. ‘피렌체’도 좋아요. 신부 넘버들은 어느 정도 자신 있어요. 그리고, 가장 애증이 교차하는 작품은 ‘아름답다.’

 

뮤지컬 개사 작업 이후, 그는 가요 작업과는 다른 무엇을 발견하기도 한다.
뮤지컬 작업에서는 내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감동받을 때가 있어요. (가수들의) CD에서는 10년이 지나도 그럴 리 없지만, 어느 날 프롤로 신부가 노래를 잘해서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지요.

 

 

그도 뮤지컬의 매력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었다. 또한, 뮤지컬 배우들이 ‘이렇게 가사가 잘 붙는 뮤지컬을 해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개사를 인정해줄 때 제일 기쁘다고 했다. 플라몽동이 혹시 한국어를 이해한다면 박창학 개사에 대해 매우 만족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실망을 하는 일은 없다고 확신한다. 중간중간 배우들의 실력과 실수로 좀 짜증났지만, 리카르도 코치안테의 아름다운 곡은 박창학과 만나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좋았다. 그리고 <돈 주앙>에 대한 그의 말은 결코 자화자찬이 아니다. 내가 파리에서 이 작품을 볼 때는 화려한 춤만 보였지만, 한국어 공연에서는 노래와 음악도 잘 들렸기 때문이다. 개사가로서 그는 ‘가상의 뤽 플라몽동’이 만족하는 가사를 이야기했다. 이때 플라몽동은 단순히 <노트르담 드 파리>의 작사가로서가 아니라, 작품이 구현하고자 하는 세계를 상징하는 이름일 것이다. 그러니, 한국어 <노트르담 드 파리>는 박창학의 <노트르담 드 파리>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그러니, 박창학을 비롯해서 많은 작사가들이 라이선스 뮤지컬 작품의 개사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번역투의 노래를 듣고 싶지도 않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며 손발이 오그라들고 싶지 않다. 그리고 개사를 엉터리로 하는 것은 관객에게도, 작품에게도, 원작자에게도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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