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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SPOTLIGHT] <달을 품은 슈퍼맨> 추정화 연출, 포기하지 않는 한, 진 게 아니다 [No.117]

글 |송준호 사진 |김수홍 2013-06-12 5,030

시한부 판정, 빚쟁이에 쫓기는 청년 세입자, 지적 장애 가족,
그리고 달동네의 서민 생활.
<달을 품은 슈퍼맨>은 <인생극장>의 주요 소재들을
무대 위에 재현한 듯한 뮤지컬이다.
대개 힘든 사정을 지닌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휴머니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익숙한 장치다. 문제는 과정이다.
‘뻔한 이야기’와 ‘삶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드라마’는
바로 연출의 힘에서 갈린다.
그런데 이 쉽지 않은 과제를 ‘연출가’ 추정화가 짊어졌다.
20년 경력의 노련한 배우가 불현듯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 이유는 왜일까.
그리고 이 클리셰 덩어리의 총합에서
그가 끝내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무대 밖으로 외도하는 베테랑 배우?

<달을 품은 슈퍼맨>의 막이 오른 지 4일째 만난 추정화는 목이 쉬어 있었다.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들려줬던 린톳의 당차고 낭랑한 목소리는 없었다. 배우로서 20년을 무대에서만 지내다가 처음으로 객석에서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경험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첫 공연 때의 감상을 묻자 “뒷목이 뻣뻣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너무 떨리더라구요. 사실 시간이 없어서 드레스 리허설도 못하고 바로 본 공연을 한 거거든요. 배우들도 긴장하고 있고, 저는 전체 전개나 개별 연기들도 다 외우고 있으니까 속으로 연기까지 하면서 봤어요.”
그의 연출 목록에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리게 된 이 작품은 소박한 달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이야기의 중심은 윤도현, 우현 형제 가족이다. 사고로 지체 장애를 앓는 형과 그를 못마땅해하는 동생, 이들을 품고 살아가는 엄마의 이야기가 주변 인물들과 어우러져 드라마를 만든다. 실제로 친구의 가족이 겪은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는 추정화는 “가진 건 없지만 꿈을 좇아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리는, 그래서 희망을 말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추정화의 무대 밖 진출이 처음은 아니다. 그가 극작에 참여한 <달동네 콤플렉스>(이하 <달콤>)가 지난해 말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이번 작품 역시 그가 썼으니 두 작품 연속 ‘달동네 이야기’를 쓴 셈. 혹시 달동네 마니아인가 싶었지만, 사실은 제작사의 소재 제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른 분이 쓴 달동네 이야기를 코미디로 다듬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쓴 게 바로 <달을 품은 슈퍼맨>이에요. 당시 제목은 <달의 랩소디>였죠”
하지만 당시 <달을 품은 슈퍼맨>은 제작사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려됐다. 그래서 3일 만에 또 다시 쓴 작품이 <달콤>이다. 그런데 공연에서 <달콤>은 그가 예상한 것과 다른 작품이 됐다. 배우들의 연기 방향이 기대한 바와 달랐고, 무엇보다 그가 의도한 코미디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추정화의 눈에는 오로지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의 땀만 보였다. 당시 먼저 썼던 <달을 품은 슈퍼맨>에 애정을 품고 계속 발전시키고 있던 그는 얼마 후 직접 연출을 맡게 되면서 그때의 아쉬움을 떨칠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달콤>의 배우들을 비롯해 <밀당의 탄생> 등 전작을 함께 작업했던 후배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달을 품은 슈퍼맨>의 12명의 배우들은 그렇게 한자리에 모였다.
추정화는 연출 데뷔작인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이 일등공신이라고 인터뷰 내내 말했다. 그것은 으레 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초보 연출가인 그를 도와 배우들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개인기를 총동원해 완성한 결과가 이번 공연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적인 컨셉과 연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연출가의 몫이었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이 공연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추정화의 설명이다. 그래서 연습하는 동안 호칭도 ‘연출님’이 아닌 ‘언니’ 또는 ‘누나’였다고. “배우들이 저를 연출가나 작가로 봤다면 부담스러워서 못했을 거 같아요. 누나, 언니, 동생처럼, 그렇게 가족과 함께하는 느낌이어서 힘들지 않고 재미있게 했던 것 같아요.”

 

?

 

풋내기 연출가가 꿈꾸는 세계?

‘배우들이 만들었다’고 한사코 공을 돌리는 그였지만, 연출의 영역이 그리 만만할 리 없다. 특히 <히스토리 보이즈>의 연습과 공연 일정과 정확히 맞물린 <달을 품은 슈퍼맨>의 제작은 두 배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연극 연습을 하면서 뮤지컬 배우들을 만나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그러면서 대본도 네 번이나 다시 썼어요.” <히스토리 보이즈> 공연이 시작되면서 뮤지컬은 연습에 들어갔다. 하루에 배우와 작가, 연출가를 오가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침부터 5시까진 뮤지컬 연습을 하고 저녁에는 세 시간 동안 연극을 하니까 너무 힘들었죠.”

연극 공연을 마친 후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연습실에만 처박혀 공연 준비에 매진했다. 연출에 대한 압박감은 이때 최고치에 달했다. 특히 설정은 있지만 구체적인 장면으로 만들어지지 않을 때는 흰머리가 나면서 늙는 느낌마저 들었다고. 대신 고생한 만큼 많은 걸 얻었다. 가장 큰 소득은 경험과 공부의 필요성이다. “전 다른 배우들과 달리 작품 전체를 보는 습관이 있어서 연출가의 시각을 갖는 데는 문제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대 전반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거나 디테일한 운영 같은 부분은 턱없이 부족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번 작업을 통해서 그가 얻은 교훈은 ‘작품은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배우만 할 땐 몰랐어요. 그땐 나만 잘하면 됐는데, 연출을 해보니까 모두가 다 잘해야 돼요. 누구 하나 뒤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연출가가 할 일이에요.” 그런 그를 도와 자기 일처럼 나서준 사람 중에는 남편이자 창작 콤비인 허수현 작곡가도 있다. 추정화는 “사생활에서는 성격이 안 맞는데 일 궁합은 굉장히 잘 맞아요”라고 농을 던지며 “솔직히 이번 공연도 남편이 살렸어요”라고 털어놓는다. 공연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제작자가 잠적하는 사건이 있었던 것. 개막을 2~3주 앞두고 공연 성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지금의 YD뮤지컬컴퍼니가 허수현 작곡가에 대한 신뢰를 담보로 제작에 나섰다. “신기한 게 저희 연습도 안 보고 오로지 작곡가만 믿고 해준다는 거였어요. 물론 저희도 열심히 했고 남편도 좋은 음악으로 보답했지만, 그래도 정말 감사하죠. 우리를 품어준 진짜 슈퍼맨이에요(웃음).”
우여곡절 끝에 연출가 데뷔를 마친 추정화는 벌써 다음을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달을 품은 슈퍼맨>을 잘 마무리하는 것, 그다음은 <달콤>을 새롭게 리메이크해서 작품의 질을 보완하는 것이다. 배우로서의 활동은 접을 계획인가 궁금할 때쯤, 그는 앞으로 영화나 드라마, 특히 연극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최근작인 <히스토리 보이즈>로 행복했다는 그는 다음 작품도 연극 <쉬어 매드니스>로 정했다. 뮤지컬은 생각이 없냐고 물었더니 “요즘 애들 노래하는 거 보세요. 그 정도는 되어야 뮤지컬배우 할 수 있어요”라며 손사래를 친다.
연극 출연도 김태형과 변정주 등 좋은 연출가와 작업하면서 배우기 위해 결정했다는 그는 확실히 새로운 영역에 매료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배우 추정화를 잃어버리는 건 아쉽다. <히스토리 보이즈>에 함께 출연했던 최용민 배우도 같은 게 궁금했는지 추정화에게 “이제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추정화는 “그때 제가 ‘뮤지컬은 연출하고 연극에선 연기하고 싶어요’라고 답하니까 선배님이 제게 ‘욕심 많은 년’이라고 하시던데요”라며 웃는다. 
작가와 연출가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추정화. 배우와 이 두 영역은 전혀 다른 세계인 만큼 앞으로 그가 그리고 싶은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고민할 틈도 없이 그는 ‘식신’이라는 익숙한 이름을 입에 올렸다. “언제 봐도 즐거운 영화가 <식신>이에요. 처음 봤을 때 정말 감동받았어요. 휴머니즘, 철학, 유머… 제가 꿈꾸던 게 그 안에 다 담겨 있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주성치 마니아가 됐죠. 거기 나오는 인물들도 지지리 가난하고 못났지만, 버티고 견뎌서 결국엔 이뤄내잖아요. 힘든 삶이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찾는, 그런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7호 2013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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