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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드라큘라> DRACULA [No.133]

글 |조연경(런던 통신원) 사진 |Matt Martin 2014-12-01 5,008


강렬한 스팀펑크로 재탄생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를 소재로 한 작품이 또 등장했다. 여러 번 우려내고 재해석해도 변하지 않는 게 고전의 맛이라고들 한다. 그래도 이미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에 단골로 등장했던 흡혈귀 드라큘라라니, 대체 무슨 얘기를 더 한다는 걸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자신 있게 내세운 단어는 스팀펑크, 그리고 액터 뮤지션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뮤지컬이라고 하자니 애매하다. 감동적인 넘버를 새로 작곡해서 내놓기보다 유명 팝 음악을 신중하게 골라 록으로 편곡해서 사용했다. 배우들이 연주하고 노래하는데 기존의 뮤지컬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색다른 시도가 돋보였다. 그래도 드라큘라,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런던, 고딕, 스팀펑크, 록, 액터 뮤지션 이렇게 쭉 나열해 보니 흥미로운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를 재해석한 동명의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극단 ‘액션 투 더 워드(Action to the Word)’가 이번에는 <드라큘라>를 들고 나왔다. 전작에서 고전을 색다르게 재해석해 남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공연을 선보였던 이 극단의 신작도 기운이 대단하다. 극단의 예술감독이자 작품의 연출을 맡은 알렉산드라 스펜서 존스는 젊은 배우들을 주축으로 드라큘라 이야기에 스팀펑크와 록을 더해 에너지 넘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오리지널 넘버가 아닌 유명 팝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배우들이 날것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뿜어낼 수 있도록 했다. 런던에서 프리뷰 공연을 한 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로 이동한 <드라큘라>는 단번에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드라큘라 백작의 인간적인 고뇌나 사랑 같은 묵직한 주제는 없지만, 즐겁게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짜릿한 해방감을 안겨주는 강렬한 작품이다.

 

스팀펑크와 드라큘라의 찰떡궁합

관객들이 입장하면서 무대를 흘깃거렸다. 아직 공연이 시작된 것 같진 않은데 낮게 음악이 깔린 무대에 놓인 테이블에 여배우가 덩그러니 시체처럼 쓰러져 있다. 이윽고 강렬한 록 음악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면 드라큘라가 달려 나와 죽은 아내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런던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조너선 하커는 상사의 요청으로 부동산 문제 때문에 드라큘라를 만나러 트란실바니아로 향하게 된다. 조너선은 가기 전부터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연인 미나를 런던에 남겨두고 떠난다. 먼 길을 지나 당도한 드라큘라의 성은 음침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빠르고 담백하게 전개하면서 숨을 고른다. 그러면서 이미지에 집중한다. 철제 침대나 행거 등의 소품은 차갑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무대 뒤편에 놓인 드럼도 위엄 있다. 빅토리아 시대와 스팀펑크 양식을 접목한 의상은 음침해서 더욱 매혹적이다. 코르셋과 조끼, 페티코트 등을 활용해서 고전적이면서도 펑키한 느낌을 살렸다. 스팀펑크의 상징 격인 시계태엽을 배우의 의상에 조그맣게 달아 놓는 등, 배우들의 의상을 신경 써서 세련되게 제작했다. 배우들의 악기도 훌륭한 소품이 되어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조너선이 성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아주는 드라큘라는 조너선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가 몸을 밀착시키고 속삭이는 등 캐릭터 자체가 독특했다. 제멋대로 구는 폭군 같다가도 때로는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고, 현학적인 혼잣말을 중얼대기도 했다. 평범하게 걷는 법 없이 늘 뛰어다녔고, 그것도 그냥 뛰는 게 아니라 무대 위의 소품을 이용해 삼차원 공간을 충분히 활용한 움직임을 보였다. 기척 없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큰 소리로 포효하기도 했다. 게다가 거의 공연 내내 상의를 입지 않은 채로 등장하기 때문에 더 동물 같고 야성적인 느낌이었다. 전자기타를 치며 노래할 때는 인기 절정의 록 스타 같았다. 처음엔 행동이 크고 표정이 과장되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이내 그런 캐릭터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독특한 말투와 부담스러운 몸짓 속에서 외로움이 느껴졌다. 
드라큘라는 조너선을 성에 감금하고, 그의 약혼녀 미나가 자신의 죽은 아내와 똑같이 생겼다는 걸 알고 조너선을 괴롭힌다. 조너선은 드라큘라에게 시달리면서 점점 초췌해지지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미나를 생각하며 버틴다. 드라큘라는 끊임없이 그곳을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조너선을 가소롭다는 눈빛, 혹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그를 보며, 절실했던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드라큘라의 캐릭터가 괴이함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그의 극단에 서 있는 캐릭터는 정신병자 렌필드다. 조안나 수어드 박사의 환자인 렌필드는 극의 빠른 전개에 고삐를 당겨 조금씩 늦춰주는 역할을 한다. 렌필드가 정신병원을 나와 홀로 무대 위에서 중얼거리고 배회하는 동안 그가 만드는 기괴한 분위기가 무대를 채운다. 드라큘라가 조너선을 성에 버려두고 런던에 다가올수록 드라큘라를 탐지하는 안테나 같은 렌필드의 정신착란은 점점 심해진다. 어쩌면 아이 같고 코믹하게 그려진다고 볼 수도 있는 드라큘라의 공포스러운 면모를 렌필드가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익숙한 듯 다른 음악

배우 아홉 명이 모두 악기를 다루는데 평범하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를 뿜어내며 격정적으로 연주했다. 배우들이 각자 맡은 악기는 캐릭터와 밀접하게 연결된 듯 보였다. 드라큘라를 비롯한 남자들은 전자기타, 조너선의 연인 미나는 바이올린을 맡았다.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연극처럼 연기에 집중했고, 다른 배우의 장면에서는 뮤지션으로 변신해 연주에 집중하기도 했다. 밝고 건강한 성격에 사랑스러운 미나도 바이올린을 잡으면 거칠고 섹시하며 열정적으로 변했다. 영국 신사와 카우보이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발랄하고 맹한, 미나의 친구 루시는 플룻을 연주했다. 원작에서 루시를 사랑하는 또 한 명의 남자 수어드 박사는 이 작품에서 루시에게 연정을 품은 조안나라는 여성으로 바뀌었고, 첼로를 담당했다. 더블베이스와 드럼, 음악감독이 직접 연주하는 건반까지 다채로운 악기들이 풍부한 음악 구성을 만들었고, 배우들이 움직이면서 연주를 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볼거리가 많았다. 거친 몸짓으로 악기를 연주하는데도 훌륭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이 들어간 장면은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순간에 충실하게 장면을 꾸몄다. 잘 알려진 팝 음악을 록 느낌이 나도록 편곡해서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강렬하게 록으로 편곡된 팝 음악은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있었다. 조너선이 드라큘라의 성에 갇혀 세 여인의 유혹을 받을 때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톡식(Toxic)’이 쓰여 욕망 넘치는 광란의 파티를 연상케 했다. 다른 역할을 하던 배우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벗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조너선을 괴롭히는 이 장면은 특히 강렬했다. 그 밖에도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 더 프리티 레클리스의 ‘메이크 미 워너 다이(Make Me Wanna Die)’, 티슬 앤드 위즈의 ‘멈포드 앤드 선스(Mumford and Sons)’ 등의 노래가 각각의 장면에서 인물의 생각을 대변하고,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무대 양 끝에 놓인 스탠딩 마이크를 활용해서 해당 캐릭터를 맡은 배우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루시를 사랑하는 아서와 카우보이의 합창은 작품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를 잠시나마 밝게 풀어줬다. 길지 않은 이 작품에 연극, 록 콘서트, 뮤지컬, 행위 예술 등 다양한 요소가 담겨 있어 지루할 새가 없었다. 배우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땐 잘 만든 연극 같고, 악기를 연주하며 합을 주고받을 땐 클래식이나 록 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다. 노래할 땐 뮤지컬이 느껴지고, 렌필드나 드라큘라가 소리 없이 몸짓만으로 무대를 장악할 땐 행위 예술이나 현대무용처럼 다가왔다. 



섹시해서 더 즐거운 유혹

조너선이 드라큘라의 성에서 씨름하는 동안 그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아 불안한 미나는 친구 루시와 함께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여러 남자들과 여자가 루시를 좋아하지만 루시의 마음은 이미 아서를 향해 있다. 하지만 드라큘라가 찾아오면서 루시의 행복은 끝나게 된다. 드라큘라를 숭배하는 렌필드는 드라큘라가 런던으로 다가오는 걸 느끼고 행복해한다. 미나를 찾아온 드라큘라는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우선 루시를 물어 자신의 지배 아래 놓는다. 루시의 상태가 이상한 걸 보고 미나는 조안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조안나는 루시가 아프다는 얘기에 황급히 달려와 살펴본 후 자신의 스승 반 헬싱 교수를 부른다. 반 헬싱이 루시의 남자들과 힘을 합쳐 루시를 평온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 동안, 미나는 드라큘라와 만나게 된다. 미나는 드라큘라에게 연민을 느끼지만 결국 조너선을 선택한다.

이야기는 빠르게 전개된다. 그러다가 음악이 나오는 부분에선 이야기 전개가 잠시 멈추고 배우들이 마음껏 논다. 고전 의상을 살짝 비튼 스팀펑크풍의 의상을 입은 배우들이 직접 악기 연주까지 하며 귀에 익숙한 듣기 좋은 노래를 들려주니 히트곡 메들리처럼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지 않을 리 없다. 이 작품은 예쁘게 포장해서 내놓은 달콤한 케이크처럼 눈길을 끌 만한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단번에 보는 사람의 눈과 귀를 만족시킨다. 나중에 뭐가 남을지, 몸에 좋을지는 잘 모르지만 당장 그 순간에 좋은 것,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 사라지는 무언가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젊은 배우들의 움직임, 에너지가 워낙 대단해서 관객들은 만족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에 눌려 음악적 재미가 약해진다. 음악이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음악이 이야기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도록 분량을 줄여버린 듯한 느낌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아서인지 결론을 급하게 내렸다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드라큘라>는 스팀펑크와 드라큘라라는 흥미 요소에 이끌려 호기심으로 공연장을 찾았다가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날것의 에너지를 느끼고 기에 눌려 얼떨떨해지거나, 혹은 기를 받아가게 되는 작품이다. 매일 밤 공연하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배우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고전을 영리하게 활용해 식상하지 않게 접근했고, 그 시도와 결과물이 훌륭했다.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한 달 동안 수천여 개의 공연이 올라온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 중에서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단 하나의 공연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액션 투 더 워드’는 신선한 시도를 통해 눈길을 끌었고, <드라큘라>가 상을 받으며 연출, 음악, 배우 등이 인정받아 프린지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은 공연이 되었다. 몇 해 전 비슷한 과정으로 주목받은 이 극단의 전작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국과 유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아시아까지 진출했다. <드라큘라>는 런던에서 짧은 프리뷰를 거쳐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강렬한 한 달을 보내고 아직까지 향후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상당한 주목을 받고 수상까지 한 만큼, 조만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 아닌 다른 무대에서도 이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3호 2014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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