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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PERSONA] <스모크> 유주혜의 홍 [No.178]

글 |박보라 사진제공 |로네뜨 2018-07-27 4,763

 

<스모크> 유주혜의 홍

살고자 하는 마음 

 

천재 시인 김해경, 그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홍, 초, 해죠. 한 사람이면서도 다른 세 사람이었던 이들. 김해경 안의 이들은 마침내 으슥한 한 공간에서 재회했고 많은 이야기를 펼쳐놓았는데요. 시간이 흐른 지금, 홍을 만나 당시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이 글은 홍 역을 맡은 유주혜와의 대화를 토대로 작성한 가상 인터뷰이며, 작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홍,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란 사람이요? 연기 속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 난 강직하고 참을성도 넘치죠.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성숙하다고 생각해요. (미소) 
 

당신에게 기억이 생긴 건 언제부터라고 생각해요?

난 김해경과 늘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음…, 내게 기억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언젠가 그가 자신 안에서 초를 끄집어냈어요. 그때, 나도 떼어졌고 이렇게 기억이 생겼죠. 
 

당신은 초를 언제부터 알게 됐어요? 

김해경은 자주 거울을 바라봤어요. 종종 거울 속에 비친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죠. 그런데 늘 같은 손을 내밀고 있으니 악수를 할 수도 잡을 수도 없었어요. 그는 그때 떠올린 거예요.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라는 생각을요. 그리고 난 초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난 초에게 말을 건네보기도 했고, 바라보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 초는 내게 버틸 수가 없다면서 자긴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어요. 그때마다 마음이 아팠죠.
 

그럼 해는요? 

나와 해는 늘 함께 있었어요. (미소) 마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였죠. 우린 이야기도 많이 나누곤 했어요. 
 

초는 시를, 해는 그림을 그렸잖아요. 당신은 평소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난 김해경에게 외면당한 보따리었어요. 그 후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난 늘 무언가를 그리워했죠. 혼자 춤도 추고, 하늘을 바라봤어요. 시를 읽으면서 음악을 흥얼거리기도 했죠. 그리고 김해경이 썼던 시를 혼자 읊어보기도 하고요.
 

당신은 초와 해에게 납치를 당했잖아요.

처음엔 누가 날 납치했는지 짐작조차도 가지 않았죠. 내가 납치를 당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덜컥 무섭고 겁도 났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초와 해가 날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예요. 정말 의아했죠.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그리고 배신감도 몰려왔어요. 우린 항상 함께 존재했는데, 이렇게까지 해서 데리고 와야 했나 싶었어요. 초와 이야기를 하고 시간이 흘러 마음이 진정되니 나를 이렇게까지 해서 데리고 왔어야만 하는 이유가 궁금해지더군요. (그 이유를 알게 됐나요?) 내게 솔직하게 말하면 난 절대 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초와 해가 납치라는 극단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때 해는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다고요. 

맞아요, 처음 해가 날 못 알아봤을 때 정말 놀랐어요. 왜 나를 못 알아보는 건지,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죠. 그런데 해의 모습이 정말 순수해 보였어요. 아주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의 모습이 보였어요. 그 모습을 바라보니 희망이 보였어요. 오히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나 싶었고요. 해에게 바다를 말하고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죠. 


 

납치되었던 공간은 어땠나요? 

그곳은 내게 아주 익숙하지만 낯선 곳이었어요. 나는 그대로 있는 것 같았지만 무언가 뒤바뀌어 있었죠. 마치 데칼코마니 같았어요.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우리가 항상 함께 듣고 있었던 축음기도 있었고, 작은 빨간약도 있었고. 
 

그럼 납치되기 전, 당신에게 초와 해는 어떤 존재였나요?

우리 셋은 거울 속의 김해경이었어요. 김해경이 우리를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됐죠. 그리고 그는 시를 만들어냈고요. 마치 날개가 찢어져 죽어가는 나비처럼, 거울 속에 갇혀 죽어가는 나비처럼요. 우리는 그렇게 시작됐던 ‘함께의 존재’였죠. 
 

당신은 초와 해에게 ‘살자’고 말해요. 왜 그렇게 살고 싶었나요? 

음…, 세상 누구도 우릴 알아주지 않았어요. 심지어는 무시했죠. 그런데 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컸던 만큼 죽고 싶은 마음도, 살고자 하는 마음도 컸어요. 초와 해에게 계속 살자고 외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더라도 나는 내 글을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나는 글을 쓸 때 행복을 느꼈고 좋았으니까. 남들이 비록 알아주지 않아도 이 모든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죠. 고아였고, 폐병을 앓았고, 언어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걸 사랑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죠.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과 고통은 무엇인가요?

글이요. 해가 자기는 다시 글을 쓰지 않는다면서 절 피아노로 밀치더군요. 그런데 전 그에게 시를 읊어줬어요. 시를 쓰면서 행복했던 감정을 말해 주고 싶었죠. 떠나지 말라고, 나는 결국 사라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내게 행복과 고통은 바로 글이에요.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요?

해는 결국 살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미소) 우리는 불행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글에 날개를 달아서 날아오르게 하고 싶어요. 비록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하더라도 열심히 쓰다보면 하나쯤은 하늘에 닿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김해경 안에서 함께 행복한 고통을 나누며 글을 쓰고 있어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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