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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OLUMN] <인터뷰> 범행을 기억하지 못해도 처벌받을까 [No.223]

글 |고봉주(변호사) 사진 |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2023-04-13 1,048

<인터뷰> 
범행을 기억하지 못해도 처벌받을까

 

*이 글은 공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심신 장애에 해당할까


<인터뷰>는 싱클레어 고든이 추리소설 작가 유진 킴의 보조 작가가 되기 위해 그의 사무실을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싱클레어의 진짜 정체는 10년 전 살해당한 소녀 조안의 동생 맷으로 밝혀진다. 맷은 유진이 조안을 살해하고 범죄 사실을 소설로 썼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맷이 유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그의 또 다른 인격이 튀어나오며 이야기는 한 번 더 뒤집힌다. 마침내 드러난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새아빠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한 맷과 조안은 서로만을 의지하며 남매 이상의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조안이 맷을 버리고 싱클레어라는 남자와 떠나려 하자, 맷은 배신감에 조안과 싱클레어, 엄마를 살해한다. 이후 맷은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른 인격이 맷의 의식을 잠재우고 기억을 지워버린다.


맷은 둘 이상의 인격이 존재하고 그 인격이 행동을 지배하는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다. 실제로 살인 사건의 범인이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을 경우 그를 처벌할 수 있을까? 형사법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자는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능력이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다시 말해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책임 능력이 없는 자는 처벌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형사미성년자다. 우리나라에서 만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책임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 처벌을 면제받는다. (단, 10세 이상이면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성인이 되면 사물 변별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을 기준으로 책임 능력 유무를 판단한다. 둘 중 하나라도 전혀 없다고 판단되면 ‘심신상실’이 인정되어 처벌을 면제받고,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형을 감경받는다. 실제로 심신상실이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범인들은 대개 심신미약을 주장한다. 범행 당시 만취했거나 약물에 중독되었거나 수면 중이라서 심신미약 상태였으니 형을 감경해 달라는 식이다.


그렇다면 맷은 심신상실자나 심신미약자에 해당할까? 우선 맷이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책임 능력이 부정되거나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심신 장애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맷이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거나 부족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즉, 맷은 해리성 정체 장애로 인해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형을 면제받거나 감경받을 수 있다.


맷의 또 다른 인격 ‘노네임’의 말에 의하면 맷은 범행 당시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맷이 조안을 살해할 때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거나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안을 살해한 후 추가 범죄까지 저지른 것을 보면 맷은 책임 능력이 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도 우울증이나 해리성 장애 등의 정신 질환이 범행 당시 범인의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책임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판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맷이 범행 당시 만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자였다면,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형을 면제받을 수 있다. 

 

핏줄을 죽이면 처벌이 가중될까


뮤지컬에서 맷은 자신의 엄마와 누나를 살해한다. 두 사람은 모두 맷과 피를 나눈 혈족이지만, 각각의 살인에 대한 처벌 수위는 다르다. 형법상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하면 존속 살해죄로 가중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여기서 직계존속이란 부모와 조부모처럼 조상으로부터 곧바로 이어 내려와 본인에 이르는 혈족을 가리킨다. 형제·자매처럼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혈족은 직계존속이 아니라 ‘방계혈족’에 해당한다. 즉, 맷이 직계존속인 엄마를 살해한 것은 존속살해죄로 처벌받지만, 방계혈족인 누나를 살해한 것은 보통살인죄로 처벌받는다. 보통살인죄보다 형이 감경되는 살인죄도 있는데, 바로 영아살해죄가 이에 해당한다. 직계존속이 참작할 만한 동기(치욕을 은폐하기 위하여, 또는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여)로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하면 형을 감경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영아살해죄를 감경 처벌하는 것이 영아에 대한 차별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새아빠는 자녀를 체벌할 권리가 있을까


해리성 정체 장애의 발병 원인은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다. 특히 어릴 때 가혹한 학대를 당해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으면 방어 기제의 일종으로 다른 인격이 생성된다고 알려져 있다. <인터뷰> 속 맷 역시 어린 시절 새아빠에게 학대를 당해 해리성 정체 장애가 생긴 것으로 그려진다. 새아빠가 맷과 조안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은 명백한 아동 학대다. 아동 학대는 육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로 구분하는데, 새아빠는 모든 종류의 학대를 일삼았다. 과거에는 이렇게 아동 학대를 저지른 친권자가 민법상 징계권을 근거로 삼아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항변하곤 했다. 징계권이란 친권자가 자녀의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규정으로, 양부모에게도 친부모와 마찬가지로 자녀에 대한 징계권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생후 16개월 된 아이가 양부모의 학대를 받다가 숨진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2021년 민법에서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이 삭제되었다. 이제는 친권자라 할지라도 징계권을 근거로 자녀를 체벌할 수 없고, 자녀에게 과도한 체벌을 가하면 폭행 및 아동 학대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3호 2023년 4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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