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김소정 뮤지컬 평론가가 매월 한 편의 뮤지컬을 깊이 있게 분석하는 평론을 연재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한국 뮤지컬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박천휴(극작)와 윌 애런슨(작곡)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Maybe Happy Ending>이 제78회 토니상에서 작품상, 음악상, 극본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무대디자인상 총6관왕을 달성하며 한국 공연계에 새 역사를 썼다. 이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제89회 뉴욕 드라마 비평가 협회에서 뮤지컬 작품상을, 제91회 드라마 리그 어워드에서 뮤지컬 작품상과 연출상을, 2025년 외부 비평가 협회상에서는 작품상, 극본상, 연출상, 음악상을, 제69회 드라마 데스크상에서는 뮤지컬 부문 작품상, 연출상, 음악상, 작사상, 극본상, 무대디자인상을 수상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오디컴퍼니의 대표 신춘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에 리드 프로듀서로 참여해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냈으며, 천세은(극작)과 최종윤(작곡)의 뮤지컬 <마리퀴리>는 작년 웨스트엔드에서 정식 공연되었다.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라이선스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영미권까지 한국 뮤지컬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도 정말 많은 작품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고, 여러 사업을 통해 창작진 육성, 작품 개발 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과연 맨 처음 어떤 과정을 거쳐 국내에 수입되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걸까?
이 과정을 담은 뮤지컬이 바로 서울시뮤지컬단의 신작 <더 퍼스트 그레잇 쇼 The First Great Show>다. 이 작품은 1960년대 한국 최초의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풀어낸 코미디 뮤지컬로, 국가의 명령으로 북한 피바다 가극단의 공연을 뛰어넘는 새로운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 중앙정보부 문화예술혁명분과 유덕한 실장과, 배우를 꿈꿨으나 이리저리 방황하다 연출가가 된 김영웅이 합심하여 국내 최초의 뮤지컬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한국 뮤지컬 시작의 역사를 조명하고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점에서, 한국 최초의 걸그룹 저고리시스터즈부터 희자매까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걸그룹의 역사를 조망한 뮤지컬 <시스터즈 She Stars!>와 1595년 런던에서 셰익스피어에 대항하기 위해 뮤지컬을 만들려 고군분투하는 바텀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썸씽로튼 Something Rotten!>과 결이 비슷하다. 특히, 뮤지컬 <썸씽로튼>이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회고하는 작품이라면,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한국에서 우리의 뮤지컬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여러 번의 리허설을 거쳐 작품을 올리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19명의 배우가 한 뮤지컬의 코러스 라인 오디션에 참가하는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코러스 라인 A Chorus Line>과 유사한 구조성을 띤다.
서울시뮤지컬단의 당사자성을 보여주다
이 작품이 서울시뮤지컬단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의의가 있다. 서울시뮤지컬단이 바로 한국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6)를 만든, 최초의 뮤지컬 극단 예그린악단을 모태로 한 극단이기 때문이다. 예그린악단은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의 주도로 창단된 종합음악예술단체이며,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의 민족 예술 복원과 현대화, 국제화를 목표로 내세운 문화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또한 당시 남한보다 뛰어난 문화적 수준을 가지고 있던 북한의 피바다 가극단에 필적할 만한 남한의 공연예술단체가 필요했다. 이처럼 국내에 처음 본격적으로 뮤지컬이 수용된 이유에 있어 정치적 목적을 배제할 수 없다.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이러한 과거를 단순히 고증하거나 복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는 예상과 달리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장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언급도 되지 않는다. 대신, “완전히 새롭고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썸씽 뉴(something new) 그레잇 쇼”, “예술적이지 않지만, 예술을 하는”을 외치며, 소재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서 찾는다. 수많은 인물이 말도 안 되는 정치적 검열로 허락되지 않고, 작가 윤지영은 수없이 대본을 수정한다. 그러다 선정된 것이 ‘이순신 장군’이다. 광화문에 세종대왕과 함께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떠오르고,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상연하고 있는 작품이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박정희 정권 당시 이순신의 민족 영웅화 작업에 기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박정희는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순신을 내세우며,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어서 자신 또한 이순신 장군처럼 민족의 영웅이라는 논리를 펼쳤으며,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진 것도 이때쯤이다. 이에 작품에서 이순신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만드는 것은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설정인 것이다. 더불어 ‘전통의 복원과 현대화’라는 예그린악단의 목적의식을 보여주듯 이를 곳곳에 배치하여 보여준다. 서양 공연예술의 근원이 디튀람보스(디오니소스제전)에 있다면, 한국 공연예술의 원형은 굿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보여주듯 본 작품에서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모인 단원에 무당과 장구재비(무당이 굿을 할 때 반주를 담당하던 악기가 장구)가 등장한다. 그리고 한국의 전통음악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소리꾼이 등장하고, 예그린악단에서도 실제 채용했던 무용수들과 합창단, 성악가, 그리고 당시 대중가요를 이끌었던 트로트 가수가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모인다. 더불어 낯설던 뮤지컬에 대한 단원들의 인식 변화 또한, 역사적인 사실을 반영한다. 당시 뮤지컬은 성악가, 한국무용과 같은 전공자들에게 다소 저급한 예술로 폄하되었으나, 기획제작팀의 꾸준한 설득과 관객들의 폭발적인 환호로 뮤지컬에 대한 단원들의 인식은 점차 변해갔고,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흥행과 정·재계의 후원으로 당시 예그린 단원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은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단원들은 진심으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낀다.
1966년 제작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기록 영상을 보면 지금의 우리가 인식하는 뮤지컬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오페라, 창극에 오히려 더 가까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지금의 기준에서 본다면 넓은 의미에서의 음악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에서 이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는 경우, 전반적인 작품의 미감이 깨질 위험성이 있다고 사료한 듯 보인다. 더불어 과거의 예술 작품에 담긴 독창적이고 고유한 아름다움을 다시 구현하는 것은 ‘진정한’ 본연의 가치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살짜기 옵서예>를 구현하는 것은, 원본을 복제하는 것에 불과하기에 원작의 아우라는 이미 힘을 잃게 된 상태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새로운 진정성을 통한 고유의 아우라를 만드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이 작품에서 만들어진 뮤지컬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당시에도 새로운 것이었고, 지금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에게도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새로운 뮤지컬 작품이다. 이에 이 작품의 극중극, 제목이 없는 뮤지컬 작품은 그 작품만의 아우라를 획득하게 되고, 동시에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단순히 과거의 뮤지컬 역사를 ‘재현’하는데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뮤지컬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수많은 역경과 고난, 그리고 2025년 뮤지컬 시장이 구축되기까지의 여러 가지 맥락들을 내포하며 이 작품만의 독자적인 의미를 형성하게 된다. 즉, 서울시뮤지컬단은 이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기원을 반성적으로 재현하며, 단순한 과거 회고가 아닌 자기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제 서울시뮤지컬단은 정책적 요구와 예술계의 요구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공공단체의 숙명을 딛고 일어서,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 상황을 예술적 방식으로 다시 쓰고, 예술이 어떻게 권력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하며, 끊임없는 실험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당사자성을 확보하면서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선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보잘것없던 우리가 처음으로 대단해지는 순간
뮤지컬은 대단한 무언가에 의해 탄생하지 않았다. 뮤지컬은 민스트럴 쇼, 레뷰, 벌레스크와 같이 하나의 예술이기보다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여겨지던 다양한 장르들의 특징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만들어진 극예술이었다. 뮤지컬의 시작점으로 인식되는 브로드웨이에서도 뮤지컬은 발레, 오페라 등 자신의 기존 분야에서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전쟁으로 인해 미국으로 망명 온 사람들의 결과물이었다. 더불어 20세기 초부터 브로드웨이 뮤지컬 무대는 성소수자에게 예술적 표현의 통로이자 사회적 낙인을 초월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등 성소수자에게 기회를 제공했고, 백인 음악과 춤 이외에도 흑인과 같은 다인종의 음악과 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발전해 온 것처럼 항상 약자의 삶에 주목해 왔다. 어쩌면 뮤지컬 극장은 우리 개인이 꿈꾸는 세상을 미리 경험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이런 뮤지컬의 본질적인 성격은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에서도 강조된다.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에서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모인 연출 김영웅은 연출 경험이 전무했고, 윤지영 작가에 의해 서양에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윤지영 작가 또한 극작 경험이 없었고, 뮤지컬을 위해 모인 이들은 모두 자신이 속해있던 분야에서 퇴출당하거나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혹은 아마추어였다. 다만 각하의 사랑을 받으며, 당대 최고의 가수 설정인 윤마리만이, 난독증으로 ‘바람아 불어라’ 노래 가사를 제외하고는 대본과 새로운 노래를 익힐 수 없었음에도 공연의 흥행을 위해 무(無)맥락적으로 극의 하이라이트에 등장하게 된다. 모두가 ‘뮤지컬’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극은 이들에게 뮤지컬을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나오는 넘버 ‘그게 바로 뮤지컬이니까요’는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뮤지컬에 관해 설명하는 넘버 ‘A Musical’과 비슷한 멜로디와 전개 방식을 차용한다. 그러나 정·재계의 개입과 단원들의 불만 폭주로 인해 뮤지컬을 만들기 위한 항해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렇지만 여러 위기를 겪으며, 이들은 ‘뮤지컬을 꼭 완성해서 무대에 올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며 의기투합하게 된다. 이와 함께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들 이외에도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된 유덕한 실장 또한 이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며, 분리되어 있던 것 같던 유덕한 실장과 김영웅 연출의 이미지와 서사는 점차 겹치게 되며 하나로 통합되어 동일한 꿈을 위해 나아가는 협력자가 된다.
김영웅은 배우를 하려고 극단에 들어왔지만, 소품, 조명과 같은 일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연출까지 오게 된다. 그는 연출 경험도 없고, 자신에게 우연히 온 엄청난 기회에 뮤지컬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지만 “여기가 내 자리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 어설프고 엉망이어도 끝까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난 다시 하겠다고. 아무것도 모르겠고 뭘 해도 다 불만이고 대단하지도 않아. (...) 끝까지 달려간다. 여기가 내 자리”(넘버 ‘내자리’)라고 말하며 뮤지컬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다짐하며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한편, 유덕한 실장은 성악을 전공했지만, “예술은 길이 될 수 없다. 현실을 보아라”라는 아버지의 말에 음악의 꿈을 버리고, 낙하산으로 지금의 자리에 있지만 잘하는 일이 하나 없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좋아져서 문화예술혁명분과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공연 취소를 요구하는 군부의 말에 유덕한 실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자신도 모르는 새 김영웅 연출을 포함한 뮤지컬 단원들과 뜻을 같이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에 넘버 ‘예술적으로’에서 처음 만난 유덕한 실장과 김영웅 연출은 처음에는 수직관계로 시작했지만, 후반부 이 넘버가 리프라이즈될 때 이 두 사람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김영웅이 앞서 불렀던 넘버 ‘내자리’ 리프라이즈(“그래도 하고 있잖아. 아무것도 의미 없고 뭘 해도 다 불만이고, 대단하지도 않아. 어설픈 공연이라도 끝까지 해보고 싶어. 끝까지 달려간다. 거기가 내 자리”)를 통해 강조된다. 특히, 공연 당일 성대결절이 온 이순신 역을 맡은 성악가 여남주를 대신해, 모든 대사와 노래를 알고 있는 유덕한 실장이 그를 대신해 립싱크를 하게 된다. 결국, 이 공연을 통해 그는 자신의 묻어두었던 성악가로서의 꿈을 펼치게 된다.
독재정권 하에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공연은 갑자기 시작되었다가, 하루아침에 취소되게 되지만, 이들은 “작고 낡은 배 열두 척으로 전쟁에서 이긴 장군처럼.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었지만 노래와 춤으로 행복했었던 그 시간들을 보여줘요. 남들보다 대단치 않아도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있어. 무대만 있으면 해볼 만해. 우리도 기다렸던 순간 지켜야만 해, 한 번은”이라고 말하며, 각하를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우리를 위한 공연’이 된 만큼, 그들은 이를 어떻게든 지켜서 해보고자 한다. 타의에 의해 결정된 ‘이순신’을 소재로 한 공연을 준비했지만, 이순신의 정신이 그들에게 분유된다. 넘버 ‘임파서블(impossible)’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뮤지컬 공연은, 이제 이 넘버의 리프라이즈가 전개되면서 ‘임파서블’은 ‘파시블(possible)한’ 것이 되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준비했던 공연을 시작한다. 처음 단원들에게 뮤지컬을 소개했던 넘버 ‘그게 바로 뮤지컬이니까요’는 그들이 보여주는 공연을 설명하는 노래로 바뀌어 리프라이즈되면서, 과거에는 윤지영 작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함께 뮤지컬에 관해 이야기하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렇게 오프닝 넘버 ‘완전히 새롭고 한 번도 알려진 적 없는, 대단한 썸띵 뉴 코리안 쇼’는 클로징 넘버 ‘그게 바로 뮤지컬이니까요 rep’으로 마무리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예술 형식이었던 뮤지컬을 통해 이들은 행복을 찾고, 자신들의 숨겨왔던 꿈을 찾아간다. 공연이 끝나고, 김영웅 연출이 나와서 관객에게 말한다. “이 쇼를 찾아와주신 신사숙녀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쇼의 연출을 맡은 김영웅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펼쳐진 이 쇼가 대체 뭔지 너무 궁금하시죠? 이 쇼는 누군가에는 꿈입니다. 누군가에겐 전부고, 누군가에겐 위험하겠죠. 아직은 혼란스럽고,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정체 모를 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쇼를 절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우리가 처음으로 대단해지는 순간이니깐요. 그래서 이 쇼의 제목은 더 퍼스트 그레잇 쇼!”.
이 쇼를 통해 김영웅 연출과 유덕한 실장은 항상 보잘것없이 느껴지기만 했던 자신이 처음으로 대단해짐을 느끼며, 이는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에 모든 것을 빼앗겨 흰색 의상만 입고 공연을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연기를 하며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알지만 어떻게 해서든 무대를 완성해 나가려는 그들의 모습에 ‘백의민족’으로 대표되던 우리 민족의 항쟁 역사 속 민초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이름 없던 그들이 모여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처럼, 뮤지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금에 우리가 마주하고, 감각하며 살아가는 것에 그 어떤 것도 당연히 얻어진 것은 없다. 누군가의 피, 땀, 눈물이, 수많은 이들의 시간이 겹겹이 축적되어 우리 앞에 현현하고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의무가 있다. 무의미해 보이나, 결코 무의미한 것도, 존재도 없다.
뮤지컬 창작진과 관객을 위한 헌정작
윤마리와 아이들의 넘버 ‘바람아 불어라’는 처음 등장할 때는 쇼스타퍼의 기능을 함과 동시에 당시 유행했던 대중가요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러나 군부에 의해 공연이 중단될 위기에서 대포 소리가 들리면 자신이 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윤마리가, 군부가 쏜 총을 대포 소리로 오인해 무대 위에 등장해서 ‘바람아 불어라’ 중 “바람아 불어라. 나를 스치고 지나가. 어떤 폭풍이 와도 나의 노래는 멈추지 않아”를 열창한다. 바로 여기서, 넘버 ‘바람아 불어라’가 사실은 이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곡이었음이 드러난다. “살아가다 보면 거센 바람에 휘청여. 스타로 태어난 나, 끝까지 빛나는 게 운명. 어떤 바람도 어떤 역경도 난 쓰러지지 않아. 어둠 속에도 별은 빛나. 바람아 불어라, 높이 날아갈 수 있게. 바람아 불어라. 더는 두렵지 않아”라고 말하는 이 노래에서 ‘바람’은 사회적 억압과 인식이다. 예술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뭉친 수많은 별들이었던 예술인들은 사회적 억압과 비판적인 인식을 꿋꿋하게 이겨내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예술을 역경과 고난 속에서 완성해 나가고, 결국 빛나게 된다. 최종윤 작곡가에 의하면 이 넘버는 1960~70년대 대중문화의 정서와 무대성을 염두에 두고 작곡된 넘버이지만, 단순 복고가 아니라 뮤지컬 <드림걸즈>의 넘버 ‘One Night Only’의 음악적 감각을 참고했다. 넘버 ‘One Night Only’가 극 중 음악의 상품화와 진정성에 기반한 예술성 모두를 상징하는 음악인 것처럼, 윤마리의 넘버 ‘바람아 불어라’ 또한 당시 최고의 인기 노래이자 동시에 본 작품에서 이 시대를 살았던 모든 예술가의 꿈을 대변한다.
더불어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인용음악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적으로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넘버 ‘The Phantom of the Opera’, 뮤지컬 <위키드>의 넘버 ‘Defying Gravity’, 뮤지컬 <캣츠>의 넘버 ‘Memory’,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넘버 ‘겟세마네’의 소절을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을 만큼 아주 짧지만, 강력하게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 뮤지컬의 역사를 그린 작품인데, 뮤지컬 <이순신>의 대표 넘버 ‘나를 태워라’는 고사하고, 한국 창작뮤지컬의 멜로디는 다소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왜 외국 뮤지컬의 멜로디만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모두에게 익숙한 멜로디를 차용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 네 작품들은 한국 뮤지컬 시장의 발전에서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 물론 이 작품들만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국내 뮤지컬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2001년에 24만 관객 동원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내며, 낯설었던 뮤지컬을 대중에게 인지시키면서 뮤지컬 팬층이 확장되면서, 뮤지컬 배우층도 넓히는 등의 기여를 했다. 뮤지컬 <캣츠>는 1994년, 당시 대형 공연의 두 배 가까이 높은 금액의 티켓임에도 2천 석이 넘는 예술의전당을 모두 매진시켰으며,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처음으로 누적 관객 200만 명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2003년부터 전국 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함으로써 지방 뮤지컬 시장의 활성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경우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매 시즌 원작을 재해석한 연출과 편곡을 더했고, 헤롯 역에 김영주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젠더 크로스 캐스팅을 시도한 작품이다. 2012년 국내에서 초연된 뮤지컬 <위키드>는 당시 유료 객석 점유율, 최다 관객 수, 최고 매출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단 네 번의 시즌만으로 누적 9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국내 뮤지컬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유의미한 기록을 세웠다. 특히, 이 작품은 ‘다름에 대한 존중,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인 만큼, 당시 사회적으로 배척받을 수밖에 없었던 뮤지컬의 탄생적 맥락에서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대변인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작품 전반에 걸쳐 멜로디 음이 3~5음 정도만 스쳐 가거나, 특정 장면에서는 편곡 방식, 코드 감각과 같은 스타일만 차용하는 등 수십 개의 뮤지컬이 음향적, 구조적 레퍼런스로 작용하고 있다. 가령 뮤지컬 <컴퍼니 Company>, <어쌔신 Assassins>, <사운드 오브 뮤직>, <북 오브 몰몬 Book of Mormon> 등도 부분적으로 인용하거나 오마주되고 있으며, 작품의 대사와 가사, 멜로디 속에 “누가 죄인인가”(뮤지컬 <영웅>), “지금 이 순간”(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등 짧게 짧게 찰나의 순간이지만 빼곡하게 기존의 뮤지컬들이 파편적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러한 인용음악들로 구성된 노래는 이 작품에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인용음악은 단순히 기존의 음악을 새로운 음악에 인용한 것이 아니다. 이때, 음악은 하나의 텍스트로 간주됨으로써 텍스트가 된 음악은 과거의 맥락에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텍스트에서 다시 태어나며, 이 과정에서 의미는 복잡하고 풍성하게 확장된다. 음악적 상호텍스트성을 함유하게 되는 것인데, 어떤 음악을 인용할 때 작곡가는 자신이 인용한 음악에 내재한 사회, 문화, 역사 등 전반적인 정신적 가치를 모두 이해한 뒤, 그것을 인용하여 어떤 의미를 구축해 낼 것인지를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지금까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오는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들의 음악적 구조를 인용함으로써, 뮤지컬은 매우 복잡한 역사를 가지며 발전해 왔으며, 정말 많은 작품이 역사 속에 발자취를 남겼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해외 뮤지컬이 활발하게 상연되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제는 해외 유수의 뮤지컬들이 한국 창작 뮤지컬 작품 내에 녹아들어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하였고, 관객들이 이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뮤지컬 시장의 규모가 커졌음을 은연중에 시사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지금의 뮤지컬이 있기까지 고군분투한 창작진, 제작사, 연구자, 평론가, 뮤지컬 잡지사 등 뿐 아니라, 뮤지컬을 끊임없이 사랑하며 함께 시간을 공유해 온 관객들을 위한 헌정작이다. 뮤지컬은 오랜 시간 동안 연극의 한 분과로 인식되어 왔고, 최근 들어서야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2022년 공연법 개정). 오락적이고 상업적이라는 성격이 강조되며, 예술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오랜 시간 있어 왔으며, 대사를 하다가 갑자기 노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척당하는 예술 장르였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뮤지컬은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그 속에서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꿋꿋이 견뎌왔다. 이것은 뮤지컬 제작사나 창작진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공연은 결국 관객에 의해 마지막으로 완성되며, 시장의 발전 또한 관객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뮤지컬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기세를 확장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에 있어 가장 크게 작동한 감정적 기제는 바로 ‘위로’와 ‘공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은 왜 이리도 우리를 사로잡고, 감동을 주는 것일까? 브로드웨이 극장이 구조적 불의에 대한 저항과 사회 시스템 변화의 맥락에 있어 ‘Social Change’를 주로 추구한다면, 한국 창작뮤지컬은 상처받은 개인을 감싸안고, 공감과 위로를 통해 공동체적 유대를 재구성하는 방식인 ‘Social Embrace’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창작 뮤지컬은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고, 그 감정을 증폭시키는 멜로디를 대개 사용했고, 관객은 극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며, 살아갈 힘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개에 초점을 맞추는 브로드웨이 작품보다, 감정에 방점을 찍는 한국 뮤지컬은 무한 경쟁 사회 속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포옹해 주며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가 말하는 ‘위대한 쇼’란 거창한 업적이나 영웅담이 아니다. 아무것도 대단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서로의 어설픔과 부족함을 끌어안고 끝까지 가보겠다는 약속. 그 약속을 지켜낸 무대 자체로서 ‘그레잇(great)’한 것이며, 고군분투하며 발전해 온 한국 뮤지컬의 어쩌면 숨겨졌을지도 모를 진짜 모습이기도 하다. 이에 본 작품은 기억의 연극이자, 자기 긍정과 부정을 통해 도달한 새로운 자기 선언이다. 특히, 이 작품은 뮤지컬 관객이 단지 ‘소비자’에 머물고 있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어쩌면 관객은 비싼 돈을 내고 티켓을 구매하고 극장에 가서 극을 소비하기에 소비자라고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관객이 뮤지컬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뮤지컬을 본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뮤지컬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기반을 마련해준 공동 창작자로서 기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은연 중에 보여주듯,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의 캐릭터 포스터 사진은 배우들이 객석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이로써 비록 뮤지컬이 국내에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출발했지만, 지금까지 발전하고 유수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뮤지컬인(人)들의 수많은 노력과 든든한 후원자이자 지지자로서 존재한 관객들에 의한 것이었음이 더욱 강조된다. 그렇기에 관객이 커튼콜에서 이 작품과 작품을 만든 모든 이들을 향해 보내는 박수는 동시에 한국 뮤지컬이 대단해지는 그 시작의 순간에 바치는 우리의 박수이기도 하며, 반대로 스스로에게 보내는 찬사이기도 한 것이다.
참고문헌
박만규, 『한국 뮤지컬사』, 한울아카데미, 2011.
박병성, “[SPECIAL] <캣츠> 40년의 발자취”, 더뮤지컬, 2020.09.21. <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4676 >.
박병성, “[SPECIAL] 오페라의 유령⓵ - 한국 뮤지컬 역사에 남긴 것”, 더뮤지컬, 2023.07.26. <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5166 >.
오희숙, 『문화 상징으로서의 인용음악: 현대음악에 나타난 상호텍스트성 미학』,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2.
이계창, 「1960년대 한국의 뮤지컬 수용 역사와 문화제국주의」, 『공연문화연구』 37, 한국공연문화학회,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