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②] <두마리 달팽이> 임영주, 느린 걸음이 닿은 곳

글 |이솔희 사진 |. 2026-09-17 334

[무대를 찾아낸 배우들]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배우의 숙명. 그 숙명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무대를 찾아낸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유튜브 드라마 시리즈 <두마리 달팽이>의 배우 임영주입니다.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고, 심지어는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마저 이질감 없이 구현하는 시대. 이러한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은 정말 뒤처지는 걸까?

 

유튜브 드라마 시리즈 <두마리 달팽이>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두마리 달팽이>는 웹드라마 <짧은대본>, 드라마 <은둔고수 태백호> <화려한 날들> 등에 출연한 배우 임영주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sn@log’에서 지난 4월 첫 공개된 웹드라마로, 임영주가 직접 이야기를 쓴 것은 물론, 연기와 촬영, 편집까지, 전 과정을 직접 소화한 콘텐츠다. 작품의 출발점에는 임영주의 개인적인 고민이 있었다. ‘AI가 배우를 대체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글을 본 후 절망감, 분노 등 여러 감정을 느끼던 그는 문득 ‘이 감정의 변화만큼은 인간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을 기록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두마리 달팽이> 시리즈다.

 

‘이 빠른 시대에 자기다움을 고집하는 건 멋진 신념일까, 도태되는 지름길일까?’ <두마리 달팽이>는 이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네 청년의 이야기다.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유튜브 편집자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서른 살 청년 ‘두마리’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어린 시절부터 달팽이를 좋아해 어느 순간부터 껍데기를 등에 업은 채 살아가는 인물, 때로는 껍데기 속으로 숨어들기도 하지만, 느릴지언정 기어코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이 인물에게 임영주는 자기 자신을 투영했다.

 

“저는 여러 가지를 빠르게 배우고 소화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느린 편에 가깝죠. 저 스스로 좋아하는 고집스러운 면도 있고요. 그런데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니까 ‘내가 고집을 버리고 이 흐름에 편승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흐름에 편승해 보려고 하니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럼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내적 고민도 생겼고요. 그래서 <두마리 달팽이>를 만들면서 답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두마리 달팽이> 시리즈는 총 8화로 구성되어 있고, 7화까지 온라인상에 공개됐다. 처음부터 긴 시리즈를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1화부터 3화까지의 간략한 시놉시스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풀어나갈수록 새로운 질문이 생겼고, 그 질문이 다음 이야기를 불러왔다. AI를 공부하다 보니 기술과 자본의 관계에 관심이 갔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꿈과 생계 사이의 문제도 작품 속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두마리 달팽이>는 임영주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와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동료 배우들의 이야기이자, 더 나아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의 이야기다.

 

메인 촬영 장비는 임영주의 아이폰, 그리고 아이폰에 탈부착이 가능한 접사 렌즈다. 이마저도 작품에 등장하는 달팽이를 가까이서 촬영하기 위해 중고로 급하게 구한 것이다. 이 외에는 필요한 장비를 그때그때 대여하는 방법을 택했다. 배우 생활을 하며 남는 시간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 몇 년 전부터 틈틈이 만들었던 브이로그와 그 과정에서 익힌 편집 기술이 이번 작업에 힘을 발휘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성하는 데는 약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최소한의 장비와 인력,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마음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AI 시대의 불안감에서 시작된 작품일 뿐, AI를 적대시하는 작품은 아니다. 임영주는 자료 조사와 정보 정리, 일부 이미지와 영상 구현 과정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AI가 없었다면 이번 작업을 못 했을 것”이라며 “혼자서 대부분의 일을 하다 보니 너무 벅찼는데, AI가 작업 시간을 많이 줄여줬다. ‘달팽이 인간’ 같은 상상도 AI가 없었다면 구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모든 작업을 AI로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쓰는 하나의 도구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두마리 달팽이>에는 ‘마리’와 반대되는, AI를 자신의 작업에 활용해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인 ‘명주’가 등장한다. 6화까지 이름과 목소리로만 등장하던 그는 7화에 처음으로 얼굴을 비추는데, 이 인물 역시 임영주가 직접 연기했다. ‘마리’가 열등감을 느끼던 존재인 ‘명주’가 단순히 성공을 거둔, 행복한 인물로 등장할 경우 시청자에게 일종의 적대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와, AI를 사용한 그 인물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이 아닌, 결국 기술 뒤에 있는 인간을 조명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명주는 동료 없이, AI와 둘이서 작업을 하는 인물이에요. 저도 집에서 혼자 편집을 하는데, 제가 그때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을 명주도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명주를 질투하던 마리가 명주를 보고 ‘이 친구도 자기의 고충이 있구나’ 깨닫는 장면을 통해서 결국 AI는 도구일 뿐,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감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두마리 달팽이>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댈” 수 있는 공간, 무대에서 펼쳐진다. <두마리 달팽이> 작업을 통해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경험의 가치를 깨달은 덕에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AI가 배우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배우라는 존재가 가진 힘이잖아요. ‘AI가 그 힘마저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아직 남아 있어요. <두마리 달팽이>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무대에서 공연하기로 결정한 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가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AI 시대에도 서로가 서로를 믿고, 바라봐 주고, 응원해 주는 그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 펼쳐지는 <두마리 달팽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일반적인 사실주의 연극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두마리 달팽이>에서 꺼내놓은 생각들을 기반으로 하되, 배우들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며 발견한 동작을 하나씩 조각처럼 모으고, 그 조각을 연결해 장면을 만드는 신체극이다. 완성된 대본을 두고 움직임을 입히는 대신 배우의 몸에서 시작된 움직임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야기와 연결하는 것이다. 임영주가 과거에 참여했던 그로토프스키의 ‘가난한 연극’ 훈련 워크숍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물론 처음에는 당연히 ‘8화 내용을 무대에서 선보이자’는 생각을 동료들과 나눴지만, ‘사실적인 이야기를 할 거면 기존에 하던 대로 영상으로 만들면 되지, 굳이 무대에서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사람의 몸으로만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추상적인 움직임이나 몸의 언어에서 느껴지는 의미는 AI가 복제할 수 없으니, 저희는 몸에 집중해 보기로 했어요.”

 

지난한 창작 과정을 거쳐 약 70분 분량의 공연이 완성됐고, 이 노력의 결실은 오는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무대는 혼자서 완성할 수 없는 작업이기에, 함께하는 동료들(배우 두범수, 이영건)을 향한 신뢰와 애정도 크다. 임영주는 “즉흥 움직임 연습을 하는데, 저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 <두마리 달팽이> 작업을 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들이 즉흥 작업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든든하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을 얻게 되어 좋다”고 말했다.

 

 

<두마리 달팽이>의 출발점에서 던졌던 질문, ‘자기다움을 고집하는 건 멋진 신념일까, 도태되는 지름길일까?’ 종착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임영주는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렸을까?

 

“가만히 서서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도태’일 수 있지만, 계속 부딪히고 깨지면서 나만의 단단한 껍데기를 만들어낸다면 그건 ‘신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두마리 달팽이>에서 동양 역을 맡은 두범수 배우가 이런 말을 했었어요. ‘신념인지 도태인지, 그건 누가 판단하느냐’고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그 기준은 저 자신에게 있는 거더라고요. 나의 고집이 ‘신념’이라고 나 자신을 믿어줄 수 있으려면 또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게 앞으로 저의 숙제인 것 같아요.”

 

‘어떤 속도로 가야 할까’를 고민했던 달팽이 마리는, 그리고 임영주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유튜브 화면 밖으로 걸어 나와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친 마리와 임영주가 내린 지금 이 순간의 결론이다.

 

“느린지 빠른지, 그 속도보다는 그래서 내가 이제 어디로 갈 건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될 거야’라는 목표만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 목적지에 꽂혀있던 깃발을 뽑은 느낌이에요. 이제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어디인지를 고민하면서 살아가려고 해요.”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