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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뉴욕] <슈렉(Shrek)> 뮤지컬로서의 존재 가치는?

- 2009-01-20 912

2008년의 끝 무렵,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눈길을 끌고 있는 두 작품은 것들은 우연찮게도 모두 영화에서 원작을 가져온 무비컬인 <빌리 엘리엇>과 <슈렉>이다. 차이점이라면  <빌리 엘리엇>은 실사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이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를 인정받은 작품이라는 점이며, <슈렉>은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한 신상이라는 점이다.


녹색 괴물 ‘슈렉’이 무대에서 살아 움직일 때

 

뮤지컬 <슈렉>은 슈렉의 부모가 어린 슈렉에게 집을 떠나서 크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갈 것을 종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킬킬거리는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첫 장면에서 이 뮤지컬의 줄거리를 예측할 수 있다. 슈렉은 크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놀림감이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사람들을 피해 늪에 자기만의 공간을 세워놓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편, ‘겁나 먼’ 왕국에서 쫓겨나온,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괴짜들이 슈렉의 땅에 쳐들어오고, 슈렉은 그들을 도와 왕국을 통치하고 있는 차밍 왕자에게 항의하러 간다. 차밍 왕자는 왕이 되기 위해 피오나 공주와 결혼하고자 하는데, 그녀는 용이 지키고 있는 성에 갇혀있다. 차밍 왕자는 슈렉에게 피오나 공주를 구출해 데리고 오면, 괴물들이 왕국에 다시 들어오는 것을 허가하겠다고 말한다. 동키와 피오나 공주를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 슈렉은 피오나 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던 공주 또한 외모와 상관없이 슈렉을 사랑함을 깨달으면서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못생기고 뚱뚱한 녹색 괴물, 얼굴이 무지하게 큰 ‘숏다리’ 왕자, 삐뚤어진 성격을 가진 피노키오, 말하는 쿠키, 당나귀와 사랑에 빠지는 용은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무슨 노래를 부를 것인가.
<슈렉>은 등장인물 모두가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고 저마다 다른 유머의 코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뮤지컬 <슈렉>의 기본적인 이야기의 구성은 영화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이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재미란 2차원으로 태어난 상상 속의 캐릭터들이 어떻게 3차원으로 구현되느냐에 달려있다.
영화에서 기발한 상상력으로 허를 찔렀던 캐릭터들은 뮤지컬에서도 비슷한 설정과 대사로 웃음을 준다. 쿠키는 손인형으로 만들어져서 배우의 손에 의해 입을 움직이고, 냉소적인 피노키오는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코를 반복적으로 늘였다 줄였다 한다. 그리고 특이하게 ‘이상한’ 이 괴짜들은 “우린 남들과 좀 다르지만, 상관없어. 우린 우리야” 라는 주제로 합창을 부르며 하나로 묶인다.
피오나 공주의 쾌할 명랑한 캐릭터는 영화에서 인기를 얻었던 엽기 에피소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뮤지컬답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경쾌한 탭댄스를 추는 것으로 완성된다. 멍청해 보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당나귀 동키는 동물캐릭터를 인간이 연기했다는 면에서 가장 새로운 해석이 들어간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여성스러운 손짓, 발짓과 눈꺼풀의 잦은 깜박거림을 기본으로 하여 리듬감 있는 경쾌한 템포의 곡으로 포장했다.
뮤지컬에서 가장 눈에 뛰는 캐릭터는 차밍 왕자이다. 머리가 엄청 큰 가분수에다가 숏다리의 차밍 왕자를 배우가 무릎을 꿇은 채로 전면에 얇고 짧은 가짜 다리를 붙이고 연기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기 왕국의 군인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은 유일하게 영화보다 뮤지컬에서 더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반면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주인공 슈렉이다. 특수 분장을 2시간을 넘게 감당하느라 그랬겠지만, 배우의 동작이 시간이 갈수록 둔해 보였다. 좋은 목소리와 가창력을 지닌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곡에서는 좀 더 파워풀하게 불러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스토리텔링의 전반적인 부분을 맡고 있어서 그런지, 액션 신이나 러브 신에서 바쁘게 느껴졌다.
 
충실한 재현이냐, 장르적 재탄생이냐

 

같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떤 장르적인 재미를 덧붙일 수 있는지에 무비컬의 사활이 달려있을 것이다. 또한, 내용과 형식이 항상 같이 가기 때문에 원작의 이야기에서 어떤 에피소드를 취사선택하고, 그것을 가장 뮤지컬다운 요소로 재탄생 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슈렉으로 분장하기 위해 입은 특수 의상은 녹색 괴물 그 자체였고, 피노키오나 요정들의 의상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캐릭터들을 무리 없이 잘 표현해주었다. 숲이나 성을 묘사한 무대는 만화스럽게 과장되게 표현했다. 큰 원이 여러 층으로 분할되어 각기 상하로 움직이고, 작은 원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큰 원이 따로 회전하는 무대는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보여주었다. 2천 4백만 달러가 들어갔다는 무대에서 수직, 수평을 자유롭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무대는 브로드웨이 무대의 기술력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숲 안에서 동키가 슈렉을 뒤쫓을 때 나무를 표현한 칼럼을 수평이동으로 처리한 장면이나 슈렉과 동키가 모험을 떠날 때 숲을 그려놓은 원형 세트의 회전으로 장소의 이동을 표현한 장면은 진부했다. 그리고 용의 머리부분만 무대에 세워놓고 큰 비늘을 든 많은 인원의 인물들이 몸통을 표현한 것은 기발하기보다 산만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밝고 가벼운 느낌의 음악으로 꾸며진 뮤지컬 넘버는 듣기에 편안했지만, 기억에 각인될 만한 드라마틱한 음악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오프닝의 스코어가 슈렉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것에 치중하는 바람에 슈렉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해 주는 음악은 부족한 느낌을 준다. 슈렉과 피오나 공주의 갈등과 해결에 있어서, 이야기의 흐름에 치중한 나머지 중요한 심리적인 포인트를 표현하는 음악은 상대적으로 약하게만 느껴졌다.
 
월트 디즈니의 뮤지컬 <라이언 킹>이 무대 위에서 애니메이션과는 차별화된 전혀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킴으로써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층위로 업그레이드하여 전 세계인을 매혹시켰다면, 뮤지컬 <슈렉>은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이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뮤지컬 <슈렉>이 애니메이션을 무대에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또한 재현을 위해 시도한 무대적인 아이디어는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어른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슈렉>만의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프리뷰 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오픈한 <슈렉>에 대한 브로드웨이 평단의 반응은 양쪽으로 나뉜다. 아무리 훌륭한 원작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장르적인 재탄생이 없을 때 무비컬의 존재 가치는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 | 민지혜(뉴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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