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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아리랑> 윤형렬·박지연 [NO.166]

글 |나윤정 사진 |박진호 Studio BoB 헤어·메이크업 | 이창은 스타일링 | 김영진 2017-07-31 5,990

애틋한 기억을 따라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뮤지컬화해 화제를 모은 <아리랑>이 2015년 초연 이후 2년 만에 재연한다. 다시 돌아온 <아리랑>이 기대를 모으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캐스트와 신선한 조합을 이룰 새로운 캐스트들이 눈에 띈다는 것. 양치성 역의 윤형렬과 방수국 역의 박지연이 바로 그들이다. 2017년 상반기 각자 다른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힌 윤형렬과 박지연은 <아리랑>을 통해 새로운 변신을 예고해 주었다. 두 배우가 걸어온 지난 시간들이 <아리랑>과 만나 더욱 견고한 무대를 만들어줄 것 같다.





윤형렬, 기다림보다 큰 열망

<아리랑>의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뮤지컬 관객들에게 반가웠던 이름 중 하나는 윤형렬이 아니었을까. 지난해 10월 막을 내린 <페스트> 이후 반 년 넘게 공백기를 가진 그였으니 말이다. 종종 콘서트나 <노래싸움 승부>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식을 알리긴 했지만, 뮤지컬 배우로서 그의 무대가 더 기다려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작년 말 출연하기로 했던 작품이 좋지 않은 일로 엎어져 의도치 않게 공백이 생겼어요. 잠시 쉬면서 재충전을 하기로 했죠. 다행히 이 시간이 전화위복이 되었어요. 그 사이 저에게 큰 사건이 생겼거든요. 드디어 석사 논문을 쓰고 대학원을 졸업했다는 것! (웃음) 아마 이런 시기가 없었으면 졸업을 못했을 거예요.”


대학원 졸업은 올해 초 윤형렬이 세웠던 가장 큰 목표. 이것을 성실히 노력해 달성했으니 이제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세워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바로 뮤지컬 <아리랑>을 통해서다. “다음 목표는 <아리랑> 흥행이에요.(웃음) 그동안 대학원 생활로 바쁘긴 했지만, 무대를 향한 갈망이 너무나 컸어요. 아, 빨리 공연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매일 했어요. 무대가 그리웠던 만큼 그 의욕을 좋은 작품으로 잘 풀어내야죠. 그 첫 번째 만남이 <아리랑>이잖아요. 당연히 흥행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양치성이란 역할을 온전하게 보여주는 것. 그게 배우로서 세운 가장 중요한 목표예요.”


윤형렬이 <아리랑>을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초연. 그는 그 순간을 떠올리며 인상적인 기억을 꺼냈다. “그때 (서)범석 형이 초대해주셔서 공연을 보러 갔어요. 정말 재밌게 봤고, 울기도 많이 울었죠. 제목부터 민족적인 정서가 느껴지잖아요. 특히 모든 배우가 다 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감골댁은 뒷모습만 봐도 슬펐고요. 모든 역할이 가슴 아팠는데, 그중 양치성은 콤플렉스가 많은 인물이어서 그런지 더 눈길이 갔어요. 무대가 전하는 느낌 하나하나가 제게 굉장히 깊은 인상을 남겼죠.” 이렇듯 강렬한 첫인상을 전해 준 작품이었기에 그는 자연스레 <아리랑>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얼마 전 공연 연습을 시작했다는 윤형렬. 그는 다시 이 작품을 마주하며 초연 당시의 울컥함을 또 한 번 느꼈단다. “양치성 역할을 맡아 음악 연습을 하다 보니 별거 아닌 가사에도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궁지’라는 넘버인데요. ‘인제 보이제, 살려니까 보이제’란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자기가 머슴으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건 아니지만 머슴살이를 하고 있고, 아버지가 머슴이니 자신도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이제 그 현실이 보인다는 내용의 노래거든요. 수국이를 사모하지만 그 근처에도 갈 수 없어 머슴의 한계가 보인다는 치성의 이야기가 가슴 아팠어요.”


이 작품에서 윤형렬이 연기하는 양치성은 비극적인 시대가 만들어낸 안타까운 악인이다. 그의 색깔이 더해진 양치성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사뭇 기대가 된다. “사실 양치성은 처음부터 친일파가 되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에요. 태어날 때부터 머슴으로 고통받았고, 아버지도 의병대에게 죽임을 당한 배경이 있죠. 그렇다고 그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아니에요. 표면적으론 정말 악인이잖아요. 역할의 정서를 최대한 충실하게 표현하되 그를 좀 더 애틋한 인물로 그려내고 싶어요. 양치성은 그야말로 발악하며 살아요. 그런데 그 치열한 모습마저 불쌍하게 보일 때가 있잖아요. 관객들이 그를 보며 참 가슴 아파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까? 이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에요.”


<아랑가>의 개로,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리스월드 등 최근 악하고 센 이미지로 연기 변신을 선보였던 윤형렬. 그런 만큼 <아리랑>의 양치성에게 이어지는 기대도 크다. “사실 제가 남에게 못되게 못하는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계속 악역을 맡고 있네요. 이젠 좀 착한 역을 하고 싶어요. 늘 가는 곳마다 여주인공과 멀찍이 떨어져 짝사랑만 하다 보니, 여주인공과 자주 만나는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웃음) 하지만 배우는 나사든 볼트든 적재적소에서 자기 역할을 잘해야 하잖아요. 그래야 공연이 제대로 굴러가니까요. 관객들에게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 공연의 목적이니까, 무대에 누가 되지 않게 전 맡은 바 최선을 다해야죠.” 인터뷰 내내 성실과 노력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했던 듬직한 배우 윤형렬. 무대를 향한 그의 열망이 컸기에 윤형렬의 <아리랑>은 더욱 큰 여운을 남길 것 같다. “저 정말 빨리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고 싶거든요. 지금 공연에 대한 의욕이 가득해요. 무대를 그리워했던 만큼 열심히 준비해서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박지연, 깊이 스며드는 시간

박지연을 처음 만난 것은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으로 한껏 존재감을 드러내던 시절이었다. <더뮤지컬> 2013년 1월 호, 올해의 유망주로 선정된 그녀와의 인터뷰는 유독 싱그러움이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4년 후인 지금, 그녀는 싱그러움을 넘어 배우로서 더욱 깊고 넓은 세계를 보여주었다. <고스트>, <원스> 등으로 이어진 연기 변신뿐 아니라 특히 올해 그녀가 경험한 많은 일들이 이러한 성장을 완성해 주었다. “1월 1일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늘 가고 싶었던 파리, <원스>의 도시 더블린, 지인이 살고 있는 독일, 저에게 의미 있는 장소들을 가봤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최대한 느리게, 그리고 즐겁게 여행을 했던 게 올해 가장 기쁜 일 중 하나예요. 또 드라마 <안단테>에 참여한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타이트한 촬영 스케줄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신기하고 재밌는 시간이었죠.”


또 하나, 올해 그녀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은 바로 지난 3월부터 <빨래>로 소극장 창작뮤지컬에 도전하게 된 것. 그로 인해 박지연은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무대를 오르고 있었다. “모든 배우가 작은 분장실을 함께 쓰고, 공연 준비를 함께해요. 이삿짐을 옮겨 놓고, 빨래도 미리 적셔놓죠. 그런 하나하나가 정말 행복했어요. 대극장에선 경험하지 못한 소극장 뮤지컬만의 특별한 힘을 느끼고 있어요.” 나아가 <빨래>란 작품이 주는 힘도 그녀의 마음을 한껏 흔들어놓았다. “내가 이렇게 맘껏 울어 본 적이 있나? 이렇게 위로를 받아본 적이 있나? 연기라 하더라도 그 자체가 엄청나더라고요. 물론 매일 울고 매일 위로받는다는 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정신적으론 정말 건강해지는 느낌이에요. 이 공연이 참 좋았던 건 모든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거든요. 나영이는 솔롱고를, 솔롱고는 마이클을. 그런 점에서 힘들 때조차 행복을 느끼게 돼요.”




박지연은 <빨래>에서의 경험이 차기작 <아리랑>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리란 기대를 내비쳤다. “배우 인생에서 지금 이 시기에 <빨래>를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에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화를 내보고, 눈물, 콧물 흘리며 울어볼 수 있었거든요. 이런 감정들을 경험한 것이 <아리랑>을 공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마치 <아리랑>을 하기 전에 예방주사를 맞은 느낌이랄까요?(웃음)” <아리랑>은 일제강점기를 버텨낸 민초들의 삶을 그린 조정래의 동명 대하소설을 뮤지컬화한 작품. 원작 자체에서 느껴지는 묵직함만으로도 큰 도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처음엔 너무너무 두려웠어요. 초연을 봤을 때도 제가 이 작품을 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어요. 요즘 『아리랑』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잘 읽히더라고요. 표현 하나하나가 진한 국물 같아요. 대본만 봤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디테일들이 소설에 다 담겨 있어요. 이 작품에 관심 있는 관객들은 원작 소설을 꼭 함께 읽어보길 권하고 싶어요.”


<아리랑>에서 박지연이 맡은 역은 방수국. 비극적인 시대가 자아낸 고통와 유린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비운의 여인이다. “처음엔 화가 났어요. 수국뿐 아니라 감골댁과 옥비, 당시의 여인들은 왜 이렇게까지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던 거죠. 그런 만큼 그들의 아픔을 잘 표현해 냈으면 해요. 수국이란 인물로 절대 몸을 사리고 싶진 않아요. 정말 깊이 찢어지고 싶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박지연에게 힘든 지점도 존재했다. “제가 당차게 수국이를 표현할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해요. 그동안 강인한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알고 보면 저는 굉장히 나약하고 연약하거든요. 혼자만이 느끼는 어려움들도 많아요. 하지만 수국이만큼은 절대 나약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면 해요. 제 자신이 아무리 찢기더라도 수국이의 강한 정신은 꼭 지켜내고 싶어요.”


2010년 <맘마미아!>의 소피 역으로 데뷔 후 역할마다 자신의 역량을 충실히 보여주었던 박지연. <아리랑>을 향한 그의 솔직한 감정과 표현들은 이러한 확신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7년이란 경력이 이 작품을 만나 더욱 강인한 빛을 내지 않을까? 나아가 앞으로 배우 박지연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배우로서, 그리고 제 자신으로서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실 공연을 할 때 몸과 마음이 아무리 힘들어도 옆에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 작품은 좋았던 무대로 기억에 남아요. 반대로 아무리 작품성이 좋은 공연이라고 해도, 사람을 얻지 못했다면 잊고 싶은 작품이더라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봐요.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었을까.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배우 생활하면서 세운 가장 큰 목표에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6호 2017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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