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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칼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사랑이 프란체스카에게 가르쳐준 것들

글 |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쇼노트 2025-05-27 503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더뮤지컬 칼럼을 통해 공연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삶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상실과 이주 같은 거대한 사건이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경청이 변화를 이끈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변화’에 관한 이야기다. 프란체스카의 삶은 20년을 주기로 크게 달라진다. 그가 나고 자란 나폴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안에서도 가장 많은 폭격을 받은 지역이었다.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은 프란체스카에게 수시로 들리는 공습경보는 그 자체로 생존의 위협이었다. 그는 물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미군 장교 버드의 손을 잡고 나폴리에서 탈출한다. 배와 기차, 트럭에 이르기까지 탈 수 있는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해 최대한 멀리. 아이오와에 도착한 프란체스카는 ‘프란’이라 불리며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나폴리와는 다른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며 20여 년을 보낸다.

 

집을 가꾸고 아이들을 돌보는 안전한 익숙함이 권태가 될 때, 벌어진 틈 사이로 낯선 존재가 스며든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펜넬의 매력을 안다. 그를 ‘프란체스카’로 부르고 나폴리에서의 삶을 궁금해한다. 낯선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고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람.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또다른 자아처럼도 보인다. 어쩌면 나폴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다른 삶의 가능성일 수도. 프란체스카는 오래도록 자신을 증명하려 애썼을 것이다. 타인의 강요가 없어도 ‘다르다’라는 사실은 스스로를 재단하게 만들고, 판단 앞에서 감정은 언제나 무의미해진다. 그런 프란체스카에게 나타난 로버트가 그의 무뎌진 감각을 깨운다. 그리고 판단 없이 상대의 말을 담담히 경청하는 태도로 프란체스카 스스로가 자신의 억눌린 감정과 생각을 꺼내도록 돕는다. 버드와 아이들이 쏟아내는 말들에 반응하기 급급했던 그는 로버트와의 대화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을 찾아간다. 느리고 고요하게.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함께 떠나자는 로버트의 손을 끝내 잡지 않는다.

 

 

무엇이 가족을 선택하게 했을까. 뮤지컬은 원작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로버트와 이별한 이후 프란체스카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그는 딸이 가족을 꾸리고, 아들이 대학을 가고, 남편이 병들고 세상을 떠나는 과정 모두를 곁에서 지킨다. 프란체스카의 선택을 도덕과 책임의 영역으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선택의 바탕에는 로버트로부터 받은 사랑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사랑과 존중을 받은 경험은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프란체스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로버트와의 대화 속에서 알게 된다. 버드를 선택했을 때의 절박함, 이방인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던 시간들, 아이들이 잘 성장하길 바라는 걱정과 믿음.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됐음을, 긍정도 부정도 모두 내 안의 것임을 프란체스카는 받아들인다. 더불어 내가 받은 사랑의 정체, 당연하다 느꼈던 것들에 가려진 배려와 노력도 발견한다.

 

익숙한 삶을 선택했지만 프란체스카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삶을 대한다. 무엇보다 ‘나’라는 하나의 세상에서 ‘우리’라는 다층적 단계로 넘어선다는 점이 중요하다. 프란체스카는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에 매몰되는 대신, 그것이 ‘나’의 확장임을 수용한다. 넓어진 범위만큼 더 많은 것을 품게 되는 것도 ‘우리’에게서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마을에 섞여든 듯하면서도 부유하던 그는 로버트의 등장 이후 온전히 땅에 발붙인 모습으로 이웃들을 만난다. 이웃들의 시선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됐고, 내면의 혼란을 이해하고 조용히 기다려준 이에 대한 감사함으로 일상을 이어간다.

 

권태와 공허는 끊임없이 자신을 자신 외의 것에서 찾으려 할 때 나타난다. 타인과의 비교, 지독한 인정욕구, 의무로 점철된 강박이 스스로의 삶을 가둔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타인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온전한 나를 찾는 과정을 사랑에서 찾은 작품이다. 로버트와의 로맨틱한 사랑이 주로 표현되지만, 프란체스카가 보지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그의 변화와 선택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들이 쌓여 인생을 완성한다는 진리가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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