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usical

더뮤지컬

magazine 국내 유일의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이 취재한 뮤지컬계 이슈와 인물

피처 | [SPECIAL⑥] 전하영, 시선의 끝에서

글 |이솔희 사진 |표기식 2025-05-14 421

2025 라이징 스타 특집_<봄을 닮은 얼굴들>

이토록 반짝이는 봄, 무대 위에도 다채로운 반짝임이 가득합니다. 꽃봉오리 터지듯 눈부신 가능성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 지금 무대 위에서 가장 반짝이는 여덟 명의 배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세요.


 

관객의 시선 끝에 서 있는 순간, 전하영은 늘 다짐한다. 자신에게도, 관객에게도 단 한 번뿐인 이 순간을 최고의 기억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그러한 노력 덕분일까. 전하영은 빠른 속도로 대학로 관객의 마음에 안착했다.

 

2019년에 출연한 뮤지컬 <그리스>가 하영 씨의 데뷔작이에요. 지난 6년을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이제야 조금 체감하는 것 같아요.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스>로 데뷔를 하고, 앙상블로서 1년 가까이 공연하면서도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공연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만 크게 느꼈지, 주연 배우들의 마음은 캐치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2년간 작품에서 한 역할을 맡아 무대에 서다 보니까 그때 <그리스> 공연을 함께했던 언니, 오빠들이 얼마나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작품에 임했을지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요즘에는 관객분들이 많은 사랑을 주시는 만큼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내야겠다는 마음뿐이에요.

 

처음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성악과, 실용음악과 진학을 고려하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연이 안 닿더라고요. ‘가수가 내 길이 아닌가?‘ 싶어서 음악 쪽이 아닌 일반 학과에 진학해야 하나 생각하던 차에, TV에서 <엘리자벳> 광고를 봤어요. 작은 글씨로, 스쳐 지나가는 광고였는데 제 눈에는 그것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홀린 듯이 공연을 보러 갔어요. 제일 뒷자리에서 봤는데도 마음이 들끓더라고요. ’저 무대 위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싶어서요. 근데 어떻게 해야 뮤지컬 배우가 될 수 있는 건지 모르잖아요. 마침 그때 학교에 연극 수업을 해주시던 선생님이 계셔서, 바로 그분한테 달려갔어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했죠. (웃음) 그랬더니 선생님이 점심시간마다 자기한테 오라고, 레슨을 해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입시 준비를 시작해서, 무사히 연극영화과에 가게 됐어요.

 

'무대 위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 뮤지컬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말했잖아요. 그럼 <그리스>를 통해 처음으로 무대에 섰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전하영이 아닌 캐릭터로서 무대 위에 서 있으니까 마음이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나 자신으로서 애교 부리는 건 너무 민망한데(웃음) 캐릭터로서 존재하니 마음껏 까불어도 되고, 마음껏 애교 부려도 괜찮았어요. 새로운 나를 마주하는 기분이었어요. 여담이지만, 공연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리스> 팀은 여전히 돈독해요. 연락도 자주 하고, 가끔 다 같이 모여서 MT도 가고요. 이번에 제가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았을 때도 다들 한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데뷔 시절을 함께해준 사람들이 그렇게 축하해 주니까 감사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전하영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은 2023년 출연한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였던 걸로 기억해요. 온전히 자신의 실력만으로 관객의 눈에 포착된 것이니 배우로서 감회가 남달랐을 듯합니다.

물론 어떤 캐릭터든 각자의 역할이 있지만, 제가 한 인물로서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역할을 맡은 게 거의 처음이었다 보니 연습하고 공연하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어요. 내가 주는 감정에 따라 상대방의 리액션이 달라지고, 더 나아가서 작품 자체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기도 했어요. 사실 <그리스>를 할 때부터 배우로서의 존재감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거든요. 그래서 그 존재감을 잘 보여드리기 위해 캐릭터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는 게 좋을까, 나와 내 주변 인물들의 전사를 어떻게 상상하는 게 좋을까 정말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배우의 작은 디테일이 캐릭터의 존재 가치, 이유를 확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걸 <수레바퀴 아래서> 공연을 하면서 배웠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도 작품과 캐릭터 안에 숨겨진 부분을 찾는 과정에서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어요.

 

하영 씨가 대학로 무대에 안착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을 꼽아보자면 단연 <접변>이겠죠.

<접변>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작품에 캐스팅이 되기 전에, 제작사인 포커스테이지 관계자분들을 우연히 사석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과거에 출연했던 음악 프로그램인 ‘너의 목소리가 보여’와 ’싱어게인’ 영상을 그분들이 보시게 됐어요. 그때의 만남 이후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제가 맡았던 ‘만만‘이 홍콩 가수 역할이거든요. 만약 내가 그때 관계자분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분들이 제가 노래하는 영상을 보지 않았다면 이 역할에 캐스팅되지 못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운이 정말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작품인 만큼 더 잘 해내고 싶었어요. 더군다나 그때까지 그렇게 큰 역할을 맡아본 적이 없다 보니 부담감도 정말 컸거든요. 제가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매일 늦은 밤까지 연습했어요. 힘들긴 했지만 색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과 캐릭터를 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었고, 그 덕에 공연도 행복하게 할 수 있었어요. 여러모로 제게 많은 것을 알려준, 부담감과 긴장감이 큰 만큼 설렘과 행복도 컸던 작품이에요.

 

하영 씨에게 <접변>은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상을 안겨준 작품이기에 더욱 특별해요. 수상자 발표 당시, 남자 신인상 수상자로 이름이 잘못 불리는 헤프닝이 있어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더욱 강렬하게 남았을 텐데, (웃음) 그때의 기억을 다시 한번 돌아볼까요.

시상식에 가기 며칠 전부터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기대했다가 못 받으면 괜히 상처받으니까, 애초에 기대도 하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수상 소감도 당연히 준비 안 했고요.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시상식에 갔고, 남자 배우 부문을 발표할 때는 더더욱 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었죠. 근데 갑자기 제 이름이 불리는 거예요! (웃음) 갑자기 긴장이 확 되고, 동시에 행복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냥 당장 무대 위로 올라가서 춤을 출 수 있을 만큼 신나기도 했고, 한 마디로 정신이 없었어요. 이름이 먼저 불린 덕분에 수상 소감을 미리 준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죠. (웃음) 그때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말도 안 돼‘였던 것 같아요. 평생에 한 번뿐인 신인상을 내가 받다니, 그것도 이렇게 멋진 배우분들, 수많은 관객분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받다니! 무엇보다, 시상식 현장에 아버지가 와 계셨는데 제가 상 받을 때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시상식이 끝나고 집에 갔을 때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그 표정을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뮤지컬 <인화>와 <삼색도>를 통해 관객을 만나고 있어요. 한 무대에서 번갈아 가며 공연되는, 같은 듯 다른 작품이죠. 새로운 형식인 만큼 어려움도, 재미도 크겠죠?

두 작품에 ’인디 뮤지컬’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기존의 뮤지컬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라는 의미인데, 제게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인화>는 고등학교 선생님인 소현과 학생 인화의 이야기이고, <삼색도>는 궁 안에서 만난 세 여인의 이야기예요. 전혀 다른 작품, 캐릭터를 하나의 무대에서 펼쳐내야 한다는 게 퍼포머로서는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그만큼 배우는 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고, 관객분들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작품에 마음이 갔어요.

 

<삼색도>에서는 세자빈 태애 역을, <인화>에서는 죽은 듯 살아가는 고등학교 선생 소현 역을 맡았어요. 하루에 두 작품을 연이어 공연해야 하는데, 각 인물을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요.

‘자아‘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뒀어요. <인화>는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예요. 나의 숨겨진 욕망을 찾아가고, 드러내는 과정이 ’자아’라는 키워드와 연결된다고 생각했어요. <삼색도> 역시 세 인물이 더 넓은 세상을 찾아가면서 자아의 성장을 이루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요. 전혀 다른 두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공연하다 보면 두 작품에서 오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밖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을 수 있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되게 재미있는 포인트 중 하나예요.

 

 

하영 씨가 생각하는 무대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공연이 시작하고 나면 멈출 수 없는, 생생한 현장감이 무대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서 매 순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날의 공연은 단 한 번뿐이잖아요. 배우에게도, 관객에게도요. 그래서 오늘의 관객분들에게 최고의 공연을 보여드리기 위해 매번 젖 먹던 힘까지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무대 위에 서 있으면 관객분들이 제 눈 깜빡임 하나까지 주의 깊게 보고 계신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 시선을 통해 관객분들의 에너지가 저에게 전달이 돼요. 그리고 그 에너지가, 제가 연기하는 캐릭터를 진짜 살아있는 인물로 만들어줘요. 그래서 무대 위에, 조명 아래에, 관객분들의 앞에 선다는 게 제게는 굉장히 소중한 일이에요.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체감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누군가 제 공연을 봤다, 누군가가 나의 팬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럴 때마다 신기한 마음 반, 진짜 매 순간 잘해야겠다는 마음 반이에요. 내가 배우로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하고요. ‘나 진짜 잘 살아야겠다.’(웃음) 매일 이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네이버TV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