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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OVER STORY] 김선영, 영원한 디바의 이름으로 [No.198]

글 |박병성 2020-04-06 1,282

영원한 디바의 이름으로

 

여성 배우 가운데 <더뮤지컬>의 단독 표지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이는 김선영이다. 2006년 <에비타>를 시작으로 2012년 <엘리자벳>, 2013년 <살짜기 옵서예>, 2016년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주인공으로 단독 커버를 장식했다. 남자 캐릭터의 비중이 높은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여성 배우를 단독 표지로 내세우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네 번이나 단독 표지 모델이 됐다는 것은 그녀가 단독으로 내세워도 좋을 만큼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으며,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냈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다. 


 

비교 불가한 독보적인 가창력

김선영은 1999년 데뷔작 <페임>의 메이블로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부터 주목받았다. 처음 그녀를 주목하게 한 것은 비교 불가한 가창력이었다. 그녀의 가창력은 일본에서도 인정받았다. 2006년 도쿄와 오사카에서 <지킬 앤 하이드> 일본 공연이 이루어졌다. 당시 일본은 한국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일본 관객들은 조승우 같은 젊은 배우가 지킬 역을 맡았다는 데 놀랐고, 김선영의 가창력에 또 한 번 놀랐다. 많은 일본 배우들이 가성을 이용한 바이브레이션이 많은 창법을 구사하곤 한다. 망설임 없이 시원하게 진성으로 내뿜는 김선영의 고음은 일본 관객들에게 가슴속을 뻥 뚫어주는 듯한 통쾌함을 주었다. 
 

김선영은 서울예술단 시절 이정화를 잇는 차기 주역으로 <태풍>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유일하게 김선영이 공주 캐릭터를 연기하던 시기였지만, <태풍>의 미란다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은 자신에게 편한 옷이 아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때는 줄리엣 대신 유모 역할을 원할 정도로 이런 캐릭터의 옷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김선영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모하지 않다. 자신을 잘 아는 배우이다.

압도적인 가창력은 데뷔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2004년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로 연기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노래를 좀 더 뮤지컬답게 부르게 된 것도 그때였다. 이전까지는 가사의 감정에 충실한 노래를 불렀다면 이때부터는 곡 전체를 하나의 정서로 파악하고 부를 줄 알게 되었다. 김선영 루시의 ‘A New Life’는 레전드 중 레전드로 꼽힌다. 싸구려 술집에서 웃음과 몸을 팔며 지내온 루시가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고 부르는 노래이다. 김선영은 이번엔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러운 희망을 말을 내뱉듯 가볍게 던지면서 시작해서 마지막 간절한 바람과 확신을 담아 고음으로 치닫는다. 많은 이들이 간절한 희망을 호소하는 후반부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데 사실 후반부의 폭발력은 의심 속에 가볍게 던졌던 희망에서 시작된다. 그러한 음악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부르는 김선영의 ‘A New Life’는 그 누구의 노래보다도 깊은 울림을 줬다. 
 

김선영은 구김 없이 밝은 캐릭터보다 주체적이고 삶의 굴곡이 많은 인물을 연기할 때 진가가 빛난다. 그녀 속에는 깊고 어두운 동굴이 하나 있다. 동굴 속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는 어둠을 담고 있다. 깊은 곳으로부터 습기 찬 어둠의 냄새를 끌어올린 목소리가 그늘진 캐릭터와 만났을 때 캐릭터의 아픔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나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위키드>의 엘파바,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 그리고 <호프>의 호프 모두 차이는 있지만 깊은 어둠을 지닌 인물이다. 듣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쌓여 있는 어둠마저도 해소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원한 여왕님, 영원한 디바

서울예술단을 나와서도 <마리아 마리아>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의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지만 그녀의 가능성과 가치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확인시켜 준 역할은 <미스 사이공>의 엘렌이었다. 크리스의 미국인 아내 엘렌은 1막 후반부에 비로소 등장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이다. <미스 사이공>은 킴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어서 크리스와 엔지니어 등을 제외하면 다른 캐릭터는 큰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김선영의 엘렌은 달랐다. 크리스를 두고 삼각관계를 드러내는 노래 ‘I Still Believe You’에서 킴에 결코 밀리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노래는 킴의 주도로 시작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김선영은 자기 파트로 넘어오는 순간 독보적인 가창력과 감성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전환시킨다. 세계적인 연출가 로렌스 코너는 김선영에 대해 “전 세계 엘렌 중 가장 훌륭한 배우”라고 극찬을 했다. 영어를 공부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자고 제안까지 했다. 
 

2006년 <에비타> 이후 김선영은 대극장 무대에서 누구의 더블 캐스트가 아닌 그녀 자신으로 작품의 중심에 서게 된다.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담은 이 작품에서 김선영은 가장 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에 이르지만 결국 외롭게 죽어가야 했던 굴곡 많은 여인을 훌륭히 연기해 낸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당시 존재한 양대 뮤지컬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을 휩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 똑같은 기록을 <호프>로 달성한다. 김선영은 사람들과의 교류도 없이 오직 미발표 원고만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며 간직한 호프를 완벽하게 재현한다. 특히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린 자신에 대해 고백하는 노래 ‘호프’는 그녀의 한평생 외로움을 목도한 듯한 연기로 공연마다 관객들을 눈물짓게 했다. 김선영은 건강 이상으로 하차한 차지연을 대신해 전 회차 공연을 원 캐스트로 해냈다. 이 작품에서 호프는 감정적으로 힘겨운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 시종 무대를 지켜야 하는 물리적인 부담이 큰 작품이었음에도 성실한 자기 관리와 책임감으로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맨 오브 라만차>의 알돈자, <위키드>의 엘파바,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 <호프>의 호프까지 매해 그녀는 출연 작품 목록에 새로운 이름을 올려놓았다. 김선영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지켜본 PL엔터테인먼트의 송혜선 대표는 그녀를 이렇게 평가한다. “노래를 잘하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배우가 아니다. 오히려 캐릭터를 위해 노래를 버릴 줄 아는 배우, 배역으로 노래할 줄 아는 진정한 뮤지컬배우이다.” 매 작품에서 그녀가 빛나는 것은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현명함이 있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자기 관리와 겸손함,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기 이전에 작품의 배역으로 존재할 줄 아는 현명함으로 그녀는 십여 년째 영원한 여왕님, 영원한 뮤지컬 디바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8호 2020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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