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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뮤지컬 VS 뮤지컬영화② - <마틸다> 더욱 강력해진 반란 [No.221]

글 |안세영 사진 | 넷플릭스, 신시컴퍼니 2023-03-09 1,346

<마틸다> 
더욱 강력해진 반란

 

 

<마틸다>는 책을 좋아하는 똑똑한 소녀 마틸다가 자신을 구박하는 부모와 학교 교장에게 맞서 스스로 운명을 바꾸는 이야기다. 로알드 달의 동화를 뮤지컬화한 이 작품은 201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입성했는데, 재치 넘치는 음악과 풍자적인 내용, 아역 배우의 놀라운 활약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공개한 뮤지컬영화 <마틸다>는 바로 이 작품을 영화화한 것이다. 

 

익숙한 창작진과 신선한 출연진


뮤지컬영화 <마틸다>에는 원작 뮤지컬의 주요 창작진이 그대로 참여했다. 오리지널 공연의 연출가로 올리비에상을 받은 매튜 와처스가 메가폰을 잡고, 뮤지컬 극본을 쓴 데니스 켈리가 각색을 맡았다. 안무가 엘렌 케인 또한 영화에 참여했고, 작사·작곡가 팀 민친은 영화를 위해 새로운 곡을 썼다. 


반면 출연진은 뮤지컬배우가 아닌 뜻밖의 배우들로 꾸려졌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흉포한 교장 트런치불 역에는 엠마 톰슨이 캐스팅되어 이목을 끌었다. 뮤지컬에서 트런치불은 위압감과 코믹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덩치 큰 남자 배우가 연기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를 여자 배우가 연기한 것이다. 우아한 이미지의 배우 엠마 톰슨은 특수 분장으로 매부리코와 사각턱을 달고 몸집을 키워 본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위압적인 인상을 만들어냈다. 마틸다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담임 선생님 미스 허니 역에는 라샤나 린치가 캐스팅되었다. 허니는 원작 동화에서 “성모 마리아 같은 얼굴, 밝은 갈색 머리에 푸른 눈, 깨질 것처럼 가냘픈 몸”을 가졌다고 묘사되며, 한국 공연에서도 배우가 금발 머리 가발을 쓰고 연기한다. 그런 허니 역에 액션 영화에서 활약해 온 흑인 배우 라샤나 린치가 캐스팅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트런치불 역에 백인, 허니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됨에 따라 영화에서 트런치불은 허니의 친이모가 아닌 의붓 이모로 설정이 바뀌었다. 


주인공 마틸다 역에는 2009년생 아역 배우 얼리샤 위어가 높은 경쟁률의 오디션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이 밖에도 영화에는 수많은 아역 배우가 등장하는데,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은 빨간 베레모를 쓴 호르텐시아 역의 미샤 가벳이다. 뮤지컬에서 비중이 작았던 호르텐시아는 영화에서 상급생을 대표하는 인물로 존재감이 커졌다. 이 역할을 맡은 미샤 가벳은 각종 댄스 대회 챔피언 출신으로, 영화에서 화려한 춤 실력을 자랑하며 인기를 모았다.


국내 뮤지컬 마니아 사이에서는 뮤지컬배우가 대거 참여한 한국어 더빙도 화제가 되었다. 주인공 마틸다의 목소리는 <마틸다> 국내 초연 당시 같은 역할을 연기한 설가은이 맡았다. 현재 재연에서 마틸다로 활약 중인 최은영은 또 다른 학생 아만다의 목소리를 연기한다. 트런치불 역에는 정영주, 의사 역에는 이정열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이 밖에도 박예음(라벤더 역), 유석현(나이젤 역), 윤시영(호르텐시아 역), 이준서(에릭 역), 최호근(브루스 역) 등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해 온 아역 배우들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입혔다. 한국어 자막은 다수의 영화는 물론 <썸씽로튼> <하데스타운>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의 뮤지컬을 번역한 바 있는 인기 번역가 황석희가 맡았다.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나열하며 노래하는 ‘School Song’의 운율을 한국어로 잘 살려 호평받았다. 

 

 

더욱 선명해진 대립 구도


영화는 2시간 30분짜리 뮤지컬을 2시간 길이로 압축했다. 원작 뮤지컬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웜우드 가족의 비중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웜우드 부부가 부르는 뮤지컬 넘버 ‘Loud’, ‘Telly’는 삭제되었고, 마틸다의 오빠 마이클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뮤지컬에서 웜우드 부부는 TV에 빠져 사는 아들 마이클을 예뻐하지만, 책벌레 딸 마틸다는 무시한다. 이를 통해 마틸다가 가족 안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부각하는 한편, 책을 멀리하고 TV만 가까이하는 세태를 풍자한다. 후자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곡이 바로 ‘Telly’인데, 어쩌면 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로서는 이런 곡을 굳이 넣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웜우드 가족의 비중이 줄었음에도 마틸다를 향한 학대의 강도는 오히려 뮤지컬보다 크게 느껴진다. 영화 속 웜우드 부부의 집은 온통 알록달록 호화롭게 꾸며져 있지만, 마틸다의 방은 어둡고 지저분한 다락방이다. 또한 영화 속 마틸다는 또래 친구들보다 늦게 학교에 입학하는데, 그 이유는 웜우드 부부가 마틸다를 학교에 보내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로 허니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면서 허니와 마틸다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뮤지컬에서 두 사람이 도서관에서 처음 마주치고, 마틸다가 입학한 후 허니의 가정 방문이 이뤄지는 것과는 다르다. 영화는 웜우드 부부의 행태를 명확한 학대로 규정하고, 관객이 이들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질 여지를 차단한다. 뮤지컬 결말에서 웜우드 부부가 마피아에게 쫓길 때, 마틸다가 마피아를 설득해 부모를 구해주는 장면 역시 삭제됐다. 대신 마틸다가 친부모와 헤어지고 허니와 새로운 가족이 되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 밖에도 트런치불을 두려워하는 허니가 마틸다를 위해 용기를 내며 부르는 노래 ‘Pathetic’, ‘This Little Girl’이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압축된 이야기에서 영화가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교장 트런치불과 학생들의 대립이다. 영화에서 학생들을 향한 트런치불의 폭력은 더욱 스케일이 커졌다. 상급생이 신입생에게 혹독한 학교생활을 예고하는 ‘School Song’은 원래 교문 앞에서 부르는 노래인데, 영화는 그 대목에서 교도소같이 음산한 학교 구석구석에 카메라를 비춘다. 학교 복도에는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고, 진흙탕 위에 세워진 거대한 체력 훈련장에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트런치불이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을 가두는 ‘초키’도 실제로 화면에 등장한다. 뮤지컬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반항할 때 트런치불은 레이저를 쏴서 교실 전체를 초키로 만드는데, 영화에서는 관 모양의 무시무시한 형틀 초키를 여러 개 만들어 학생들을 가두려 한다. 


한층 가혹해진 트런치불에 맞춰 이에 맞서는 마틸다 역시 더욱 강해졌다. 마틸다의 초능력은 단순히 컵을 쓰러트리고 분필을 움직이는 데 그치지 않고 초키를 박살 낼 정도로 강해진다. 뮤지컬에서 마틸다가 초능력을 사용해 칠판에 쓴 글씨를 본 트런치불은 자신이 죽인 탈출 마술사의 유령이 나타났다고 믿고 겁에 질려 도망친다. 하지만 영화에서 트런치불은 속임수라며 믿지 않는다. 그러자 마틸다는 쇠사슬로 탈출 마술사 형상을 한 거인을 만들어 초키를 모조리 때려 부순다. 그리고 트런치불이 아만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의 땋은 머리를 빙빙 돌려 투포환처럼 던져서 내쫓는다. 영화는 학생들의 대사를 통해 마틸다를 “혁명을 이끄는 영웅”으로 칭송한다. 학생들이 교장에게 “안 돼요(NO)”라고 말한 마틸다를 지지하며 교복 안에 ‘NO’라고 쓰인 쪽지를 품고 다니는 장면도 나온다. 트런치불을 물리친 뒤에는 다 함께 ‘Revolting Children’을 합창하며 축제를 벌이는데, 학교 전체를 배경으로 뮤지컬보다 더 큰 규모의 군무가 펼쳐지며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이렇듯 영화는 교장 트런치불의 부당한 횡포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혁명에 뚜렷한 방점을 찍는다. 마틸다가 학교에 입학하는 날, 도서관 사서 펠프스와 마틸다가 나누는 대화는 영화의 메시지를 요약하고 있다. “누가 무서운 짓을 하면 똑같이 해주면 돼요”라고 말하는 마틸다에게 펠프스는 “똑같이 맞서면 너도 나쁜 사람이 돼”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마틸다는 “둘 다 나빴지만 좋은 일로 끝난다면 그건 좋은 거잖아요”라고 대꾸하며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영화에 새롭게 추가된 이 대사는 무조건 ‘착한 아이’가 되라고 말하는 일반적인 동화의 교훈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옳지 않은 세상에 맞서기 위해서는 ‘약간의 똘끼’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Film vs Musical

 

 

Library
책벌레 마틸다는 이야기를 짓는 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마틸다는 여러 번에 걸쳐 도서관 사서 펠프스 앞에서 공중 곡예사와 탈출 마술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뮤지컬에서 이들의 곡예는 마틸다가 작은 헝겊 인형을 들고 이야기하는 동안, 무대 뒤에 애니메이션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공중 곡예사와 탈출 마술사 역의 배우가 잠깐씩 무대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곡예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반면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위험천만한 곡예를 선보이는 장면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높이고 볼거리를 더한다. 또한 뮤지컬 속 평범한 도서관을 차량을 개조한 이동식 도서관으로 바꾸어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담아낸다. 

 

 

When I Grow Up
뮤지컬 2막 초반에 학생들이 그네를 타고 객석 위까지 날아오르는 ‘When I Grow Up’ 장면은 <마틸다>를 대표하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영화에는 그네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같은 장면을 부모님과 함께 하교하는 학생들이 상상 속에서 어른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장면으로 연출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던 에릭은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카레이서로 변신하고, 버스에 타고 있던 아만다와 나이젤은 버스 운전사와 비행기 조종사로 변신한다. 트런치불 교장의 폭압 속에서도 밝은 미래를 꿈꾸며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무대 위에서 그네가 주던 해방감과 속도감을 고스란히 되살린다. 

 

 

Quiet
체력 단련 시간에 트런치불이 폭언을 쏟아내자 학생들은 귀를 막고 괴로워하며 쓰러진다. 그런데 마틸다가 ‘침묵Quiet’이라는 말을 내뱉자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처럼 무대 위 모든 소란이 멈춘다. 어둠 속에서 마틸다에게만 조명이 비치고, 마틸다는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 안에서 평화를 찾는다. 마틸다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무대 위에 형상화한 이 장면을 영화는 어떻게 그려냈을까? 영화 속 마틸다는 카메라를 향해 눈을 똑바로 맞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런 마틸다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며 회오리가 일어나고, ‘태풍의 눈 속으로’라는 가사처럼 마틸다는 상상 속에서 회오리 가운데로 솟구쳐 열기구를 타고 구름 위를 두둥실 떠다닌다.

 

 

Still Holding My Hand 
작사·작곡가 팀 민친은 뮤지컬의 커튼콜을 대신해 영화의 마무리를 장식할 곡으로 ‘Still Holding My Hand’를 추가했다. 마틸다와 허니가 함께 부르는 이 곡은 혼자서는 바꿀 수 없었던 운명을 함께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노래가 흐르는 동안 한 가족이 된 마틸다와 허니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허니가 트런치불로부터 되찾은 집에 함께 살며, 마당에는 작은 오두막을 만들어 놓았다. 그 앞에서 마틸다는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처럼 옆돌기를 선보인다. 더불어 허니가 교장이 된 후 놀이동산처럼 변한 학교의 모습이 펼쳐지며 환상적인 해피 엔딩을 선사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221호 2023년 2월호 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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