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가 더뮤지컬 칼럼을 통해 공연 속 여성 캐릭터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 모린은 조앤을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즉흥적인 모린의 입장에서 조앤은 충분히 그렇게 보일 만하다. 공연 준비로 정신없는 모린에게 빈속에는 공연 못 한다며 식사를 종용하고,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공연이 “후지다”며 최종변론과도 같은 대사 추가를 요구한다. 단골 클럽과 입고 싶은 옷에 이르기까지 삶 전반에 간섭한다고 느껴질 만큼, 모린에게 조앤의 태도는 통제적이다. 극도로 다른 두 사람의 MBTI는 아마도 ISTJ와 ENFP일지도.
그러나 조앤의 통제는 개인적 결함이라기보다 그가 살아온 세계의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고위공직자인 어머니는 인사청문회를 준비 중이고, 아버지는 국무성에서 일한다.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위치를 점유한 제퍼슨 가문은 조앤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프랑스 대사 딸에게 1:1로 탱고를 배우고, 하버드를 졸업해 변호사가 되며, 친구들 중 유일하게 휴대폰을 가진 삶. 조앤은 이 세계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통제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수시로 내뱉는 “문제없어”라는 말은 감정보다 문제 해결을 우선해왔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그 세계로부터의 탈출을 동경해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조앤에게 모린은 동경 그 자체다. 그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타인의 시선과 욕망을 에너지 삼아 움직인다. 감정을 외면한 채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조앤과는 다르다. 달라서 매혹됐고 그래서 사랑하게 됐다. 모린의 연인이 된 조앤은 자신이 바라던 삶에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차이는 더욱 선명해지고, 조앤은 다른 여성에게 눈길을 주는 모린을 비난한다. 그의 질투는 감정의 블랙홀과도 같다. 규율과 통제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세계를 마주한 충격, 자신의 세계가 붕괴하리라는 두려움,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불안,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 자기 삶 역시도 통제해왔을 조앤이 느끼는 혼란은 생각보다 강할지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의 사랑을 의심하는 조앤에게 모린은 사실과 순간에 집중하는 법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누가 매일 너의 침대에 있냐”라는 말은 의심과 불신이 얼마나 많은 행복과 기쁨을 빼앗는지를 질문한다. 마음을 열고 삶을 놓치지 말라는 <렌트>의 ‘No day but today’가 조앤과 모린 사이에도 강렬하게 흐른다. 조앤은 마침내 모린을 자신의 일부로 편입하려 하지 않고, 함부로 통제할 수 없는 타자로서 그대로 수용하기를 선택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세계를 깨겠다는 다짐 그 자체다.
모린이라는 낯선 세계를 만난 조앤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신이 견고하다고 믿어온 삶의 틈을 벌려 확장을 시도한다. 그 과정의 비틀거림은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이 여정에 희망이 있다면, 조앤이 이 흔들림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 그리고 그가 흔들릴 때 곁을 지켜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모린과 미미, 엔젤과 콜린은 지금을 살아가는 행위로서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고, 로저와 마크는 비슷한 감정의 순간들을 공유하며 그의 곁에 선다. 닥터마틴을 신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안부를 묻는 가족 역시 조앤이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그러나 여전히 기댈 수 있는 세계다.
사랑의 형태는 모두 다르고, 어느 하나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랑이 우리를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조앤 역시 이스트빌리지에서 다양한 사랑을 만났다. 1년 사이, 문제없다고 말하던 그는 더는 못 참는다고 화낼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중임을, 통제보다 기꺼이 함께 흔들리는 것임을 배워간다. 1년을 사랑으로 잰다는 문장은 그래서 진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