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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우리가 지지한 뮤지컬 1 <나인> [NO.101]

글 |정세원 사진제공 |오디뮤지컬컴퍼니 2012-03-02 4,322

우리가 지지했던 훌륭한 실패작

 

실패작이라는 단어에서 잠시 멈춰진다. ‘과연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다. 이번 호 기획은 국내 소개된 작품들 중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국 뮤지컬의 역량을 높은 뮤지컬 9편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평단을 비롯한 공연 관계자들에게 뜨거운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흥행으로까진 이어지지 못한 작품들을 선정했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그때의 공연에 대한 기억과 재공연시 보완할 점들을 점검해 보았다.

 

 

 

내 안의 나와 마주보기 <나인>

 

 

 

한 사람의 인생, 특히 복잡다난한 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 내 눈앞에서 웃고 있는 이 사람이 속으로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 있다면 더더욱. 2008년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한 <나인>은 스스로 ‘낼 모레면 마흔이지만 영혼은 아홉 살’이라 노래하는 바람둥이 천재 영화감독 귀도 콘티니가 꿈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하는 내면을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보였다. <나인>의 주인공 귀도는 아홉 살 때 바닷가에 사는 창녀 사라기나를 통해 성적 충격을 경험한 후 엄격한 가톨릭 학교의 폭력적인 억압과 어머니의 질책으로 정신적 성장을 멈춘 채 살아왔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래왔듯 창조적인 삶을 살아온 귀도에게 마음의 안식과 위로를 전해준 것은 여자다. 그는 아내 루이자와 정부 칼라, 작품 속 뮤즈 클라우디우스를 비롯한 모든 여인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지만, 정작 자신은 누구도 사랑하지 못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을 반영한 영화 <카사노바>를 만드는 과정에서 결국 혼자 남겨진 귀도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되고 마침내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아내의 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 작품의 줄거리다.


<나인>의 매력은 귀도의 자의식의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스토리텔링으로 전해주는 대신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 사이를 어지럽게 넘나들며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무대 세트와 의상 등의 색채를 블랙, 화이트, 그레이 등의 무채색으로 절제하고 조명에 힘을 실어 몽환적이면서도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어린 귀도를 제외하고 극 중 유일한 남자인 귀도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열다섯 명의 여인들이 꾸미는 상상의 무대는 무척 매력적이다. 첫 장면에서는 블랙 수트 차림의 귀도가 지휘봉을 크게 휘두르면 그에 대해 재잘거리며 다가오던 열네 명의 여인들이 가사 없이 ‘랄랄라~’로 진행되는 합창과 춤을 선보인다. 아내 루이사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바람둥이 귀도는 몽환적인 조명 아래에서 여자들의 품에 안겨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 장면을 그대로 연출한 장면이긴 하지만, 귀도가 자신의 정부 칼라로부터 온 전화를 받는 장면 ‘A Call From the Vatican’은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흰 천을 타고 귀도의 눈앞에 나타난 칼라 역의 정선아는 침대 커버를 몸에 두른 반라의 모습으로 그를 유혹하고 다시 거꾸로 매달려 퇴장하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섹시한 장면을 완벽하게 소화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녀복을 입은 칼라가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며 몽둥이를 들고 걸어가는, 귀도의 어린 시절의 성적 판타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그의 손에 지휘봉을 건네며 ‘어른이 되라’고 말하는 아홉 살 귀도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진단 및 처방

“심오하고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지만, 손드하임의 작품보다도 더 대중적이지 못한 공연”이라는 조용신 칼럼니스트의 얘기처럼, 대중성이나 오락성보다는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신춘수 대표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장르의 뮤지컬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래서 새롭게 디자인한 <나인>을 무대에 올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련되고 음악적 중독성이 강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이유로 “전체 프로덕션의 불균형”을 꼽았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공연 관계자는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스완은 한국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실험성을 포기하고 설명적인 무대를 선보였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좀 더 미니멀한 무대로 관객들의 상상을 자극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캐스팅의 아쉬움도 있었다. 원종원 교수는 “작품 전면에 내세운 황정민은 섹시함보다는 착하고 순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였다면서 “단순한 스타 마케팅보다는 무대 위에서 여심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남성적이면서도 마초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1호 2012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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