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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NUMBER BEHIND] 박용전 작곡가의 <곤, 더 버스커> [No.138]

사진제공 | 오픈런컴퍼니 정리| 나윤정 2015-04-10 5,254

전작처럼, <곤, 더 버스커>에서도 제가 극본, 작곡, 연출을 맡았어요. 작품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버스킹은 최근 몇 년간 자주 하고 있던 일이었고, 작곡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 왔기 때문에, 음악은 큰 부담감 없이 남겨 두었어요. 작업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대본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사용하고, 마지막 한 달 동안 쏟아내듯 곡을 썼죠.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가 명확하면 가사와 멜로디는 그 길을 타고 스르륵 나오기 때문에 먼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버스커들의 음악은 제 경험에서 모티프를 많이 얻었어요. 떠오르는 대로 부르는 즉흥 노래들, 우연히 만난 다른 버스커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합주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노래를 선곡해 그때그때 다르게 부르는 그런 경험들요. 버스커와 대비되는 방송국 사람들의 음악은 특별한 기준 없이 장면의 분위기나 가사의 내용, 정서를 고려해서 와인랙에서 술을 한 병씩 골라 마시듯 제 안에 있는 음악들을 꺼내 썼어요.  



왜냐하면
성산대교 북단 한강 시민공원의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흥얼흥얼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예요. 최근에 이 노래의 가사와 배경에 담긴 정서를 느낀 일이 있었어요. 그 순간을 떠올리며 일인칭으로 상대에게 이야기하듯 음악을 썼어요. 어떻게 보면 작곡을 했다기보다 이야기를 한 거예요. 제 경우는 가사와 멜로디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요. 아무 일도 안 했다면,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요. 특히, 이런 정서적인 노래는 일인칭 시점이 되지 않으면 정말 안 나와요. 상상이나 간접 경험 등 수많은 시도 끝에, ‘어떤 노래는 완전히 내 얘기밖에는 쓸 수가 없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죠. 

게릴라 버스커
송 PD가 자신에게 좋은 기획이 있다며 국장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노래예요. 제가 워낙 밥 말리를 좋아해서,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버스킹에서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이 노래 분위기가 딱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만들어놓고 보니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레게 음악을 그 반대 장면에서 쓰게 됐더라고요. 어쩌면 이 아이러니한 상황조차 장면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원래 시스템이란 것이 그렇잖아요. 

나에게
10년 전, 이 작품의 공동 극본·제작자인 제 파트너 김도혜 PD와 그의 동료 김영덕 씨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었어요. 이전부터 친했지만,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원류’라는 특별전에 작곡가로 참여하면서 한창 어울려 다녔어요. 그런데 정치적인 외압 때문에 영화제가 ‘개판’이 돼서, 그 영화제를 지켜온 사람들이 한순간에 쫓겨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때 영화인들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서울에서 대항영화제 ‘리얼판타스틱’을 열기도 했죠. 당시 김 PD가 “정말 화가 나서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기에, 그날 밤 위로의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만들었어요.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미리 만들어놓은 노래인 셈이죠. 그런 만큼, 항아리에서 10년 묵은 장처럼 깊은 맛이 느껴진다면 좋겠어요. 작품에선 연인 사이에 위로를 건네기 위해 쓰이지만, 이 곡을 만든 계기는 문화를 탄압하는 관료주의의 횡포에 저항하고 연대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죠. 우연인지 운명인지, 작품의 정신과도, 이 장면과도 잘 맞는 노래예요. 

울 때조차 예뻐요
끝까지 못 쓰고 있다가 제일 마지막에 쓴 노래예요. 감이 잘 오지 않아 시작도 못하고 있다가, 이 장면의 배경인 해운대로 차를 몰고 갔어요. 늦은 저녁 도착했는데, 한 다리 건너 아는 퍼커션 연주자와 그의 친구들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죠. 그들의 모습을 보니 저도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제 마음을 읽었는지 그들이 노래를 시키더라고요. <오디션> 노래를 몇 곡 불렀고, 그 공연을 통해 제 피도 한층 뜨거워졌어요. 그러고 나서 그들과 함께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곤, 더 버스커> 노래를 부르며, 버스커다운 여흥을 즐겼죠. 그날 저와 버스킹을 했던 박순호 타악연주자는 뮤지션이자 춤꾼(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이수자)이었는데, 한 달 정도 후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해서 제 공연을 보러 오지 못했어요. 그런 만큼 그날의 기억은 이 노래와 함께 오래오래 생각이 나요.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38호 2015년 3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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