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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NEW YORK] <티나: 티나 터너 뮤지컬>, 로큰롤 여제의 삶 [No.195]

글 |여지현 뉴욕 통신원 2019-12-09 6,770

<티나: 티나 터너 뮤지컬>
로큰롤 여제의 삶



 

한 여성 가수의 이야기

미국 대중문화사에서 티나 터너는 굉장히 입지가 뚜렷한 인물이다. 티나 터너는 1960년대 남편 아이크와 함께 아이크 & 티나 터너라는 이름의 R&B 듀오로 나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폭력적이었던 아이크와 헤어진 후에는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더 이상 무대에 오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1980년대 솔로 가수로 컴백하면서, 당시 마돈나와 함께 가장 영향력이 큰 디바이자 명실상부 로큰롤의 여제로서 자리잡았다. 1991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2005년에는 케네디 센터 영예의 상을 받았다. 1960년대 아이크 & 티나 터너로 냈던 여러 장의 음반에서 ‘Proud Mary’ 등을 비롯한 곡이 큰 인기를 얻었지만, 솔로 가수로서는 ‘Private Dancer’와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등의 곡을 통해 그녀만의 색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지난 2008년과 2009년에는 데뷔 50주년 기념 세계 투어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013년부터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마돈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녀의 대표곡 ‘I Want To Take You Higher’(인순이가 2004년 ‘Higher’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곡) 그리고 ‘We Don't Need Another Hero’는 모두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상처 입은 티나의 이야기

티나 터너의 이야기는 이미 1983년에 『I, Tina: My Life Story』라는 제목의 자서전으로 출판됐고, 1993년에는 그녀의 삶을 다룬 영화 이 개봉했다. 때문에 뮤지컬 <티나: 티나 터너 뮤지컬>에서 다루는 티나 터너의 일대기가 딱히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진 않다. 그러나 뮤지컬이란 장르는 로큰롤 여제의 삶, 공연을 다루는 데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뮤지컬화가 시작됐다는 추측을 해본다. 무엇보다 장르적 특성을 잘 활용한 부분은 공연의 시작과 끝으로, 액자 형식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티나 터너가 18만 명의 브라질 팬을 앞둔 공연장에서 공연을 시작해 끝을 맺는 것으로 끝난다. 
 

화려한 콘서트 무대로 공연을 시작하긴 하지만 1막의 대부분은 티나 터너의 어두운 삶을 주목한다. 콘서트의 열기는 이내 테네시 시골 마을 흑인 교회로 전환된다. 기껏해야 8~9세 정도로 보이는 어린 시절의 티나 터너(본명 안나 메이)가 교회에서 그녀의 흥을 주체하지 못해 복음 성가를 큰 소리로 부르고, 그 모습을 부끄러워하는 엄마에게 매번 제지당하는 모습을 스케치로 보여준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안나가 얌전하지 않아 키우기 힘들다며 자기가 둘째는 안 낳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남편과 싸움을 시작한다. 폭력적인 남편은 아내와 안나의 언니 아일린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결국 엄마가 언니 아일린만 데리고 집을 나가고 안나는 아빠와 남겨진다. 이 장면에서 이미 관객은 안나가 어린 시절부터 폭력적인 아빠와 차가운 엄마 밑에서 상처를 받으며 컸다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장면이 바뀌면 10대 소녀가 된 안나와 할머니가 등장한다. 엄마를 대신해서 안나를 키운 할머니는 그녀에게 엄마와 언니를 따라 세인트루이스에 가서 너의 재능을 펼치라고 등을 떠밀고, 그렇게 안나는 세인트루이스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간 세인트루이스의 클럽에서 아이크 터너를 만나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아이크의 제안으로(수입이 짭짤할 것이라고 엄마를 설득해서) 같이 공연 길에 오르게 된다. 아이크는 안나 메이에게 ‘티나’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준다. 티나 터너는 공연을 같이하던 밴드 멤버와 연인이 되고 아이까지 갖게 되지만 그녀가 없으면 안 되는 아이크는 결국 밴드 멤버를 쫓아낸다. 이후엔 강요하다시피 티나 터너와 약혼을 하고 그렇게 아이크와 그녀는 험난한 16년의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공연이 계속될수록 그들의 인기가 올라가지만, 아이크의 폭력은 더욱 심해지고(실제로 티나 터너는 멍든 눈으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결국 폭력을 견디지 못한 티나 터너는 공연장을 뛰쳐나온다. 그렇게 1막이 끝난다.
 

그녀를 힘들게 했던 관계를 청산했으니 2막부터는 사정이 좀 나아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티너 터너는 아이크와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가 런던의 캐피털 레코드에서 일하는 매니저가 티나 터너를 찾아와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보려고 노력하지만, 나이를 꽤 먹은 흑인 여성 가수라는 꼬리표가 결국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천만다행으로 티나 터너는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에 ‘What's Love Got To Do With It’으로 인기를 얻는다. 이 곡으로 그녀는 트레이드 마크인 금빛 사자 갈기 머리와 길쭉한 다리를 뽐내며 솔로 가수로서 화려한 재기를 시작한다. 2막에서 티나 터너의 엄마가 건강이 나빠지고 결국 죽음을 맞는데, 갈등과 대화를 거쳐 그녀는 엄마와 어느 정도 앙금을 풀어내게 된다. 공연의 마지막, 무대는 다시 브라질의 콘서트장 뒤편으로 바뀐다. 공연을 준비하는 티나 터너에게 런던에서 잠시 만났지만, 결국 함께하지 못했던 음반 회사 마케팅 매니저가 찾아온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리고 콘서트가 시작되면서 공연은 막을 내린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커튼콜이 끝나고 나면 이내 진짜 콘서트 같은 앙코르가 시작되고 ‘Proud Mary’를 비롯해서 두어 곡을 더 부른 다음에 정말 끝이 난다.



 

티나 터너의 페르소나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중인 템테이션스의 주크박스 뮤지컬 <에인트 투 프라우드>도 그렇지만 가수의 자전적인 삶을 다루는 주크박스 뮤지컬은 굉장히 빠르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티나: 티나 터너 뮤지컬> 역시 특징적인 상황 몇몇을 가지고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다른 점은 티나 터너가 가진 에너지 그 자체이다. 일흔 살이 거의 다 된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관록을 보여주며 월드 투어를 진행했을 만큼 자신의 노래와 춤, 그리고 공연에 열정을 지닌 티나 터너의 삶은 주크박스 뮤지컬 장르의 빠른 전개와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또 여타의 주크박스 뮤지컬보다 음악을 잘 사용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보통 노래가 이야기의 분위기를 맞춰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내기 힘들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이 작품의 음악은 상황에 대한 코멘터리 혹은 티나 터너가 처한 상황을 더 극대화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준다. 예를 들어 ‘I Want To Take You Higher’는 1막의 중간에 티나 터너와 아이크의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에 쓰인다. 그녀가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아이크는 뒤에서 다른 여자들과 파티를 하고 있고, 무대 뒷벽에는 형형색색의 비정형의 이미지가 춤을 춘다. 그리고 이 곡에서 관객은 티나 터너가 창가학회로 알려진 일본계 불교에 귀의해서 ‘남묘호랭게쿄’라는 염불을 외우는 것을 듣는다. 마약과 섹스로 ‘더 높은 곳’에 가는 아이크와 그에 반해 종교에 귀의해 ‘더 높은 곳’에 가는 티나, 그리고 아이크 없이 티나 터너 혼자 공연하며 실질적으로 아이크를 이끌어 가는 모습들이 교차하며 나온다. 결국 이런 장면은 노래 ‘Higher’가 지닌 의미를 확장하고, 그렇게 음악을 통해 작품의 이야기가 깊어지는 효과를 준다. 1막에서 사용되는 노래는 이렇게 아이러니하게도 어둡고 힘든 티나 터너의 상황을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말한 장면 이외에도 결혼을 요구하는 아이크에게 티나 터너가 부르는 ‘Better Be Good To Me’ 역시 그랬다. 또 2막의 첫 곡인 ‘Private Dancer’는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는 댄서에 대한 이야기로, 경제적으로 갑자기 어려워진 티나 터너의 상황에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며 그녀의 절박함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위에서 예를 들었던 장면이 음악만으로 그만큼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영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연출가 필리다 로이드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비롯한 연극 연출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주크박스 뮤지컬 장르 흥행의 시초가 된 1999년 뮤지컬 <맘마미아!>와 2008년 영화 버전 <맘마미아!>의 연출을 맡았다. 그래서일까. 이번 작품 역시 주크박스 뮤지컬로서 꽤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음악과 구성을 통해 스토리텔링에 입체감을 불어넣고, 무엇보다 티나 터너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려준다. 특히 여성 연출가로 티나 터너의 입장에서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을 지금의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게 전달해 준다. 필리다 로이드의 무대 연출은 마크 톰슨의 무대 디자인을 만나 효과적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무대 중간의 다양한 벽과 무대 오른쪽 문을 통해 무대 전환을 부드럽게 해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연출은 스튜디오부터 런던의 호텔, 엄마의 병원 등 다양한 실내 공간을 손쉽게 보여준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의미를 넌지시 전달한다. 무대 위에 존재하는 다양한 벽은 티나 터너의 삶, 즉 여성이자 둘째 딸, 흑인이자 노년의 나이로 부딪혀야만 했던 벽을 물리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또 2막의 첫 곡 ‘Private Dancer’의 무대는 티나 터너가 겪는 여러 제약을 빨간색의 테두리가 있는 다양한 크기의 네모 프로젝션 영상을 쏴 시각적으로 표현해 냈다.


 

 

성공적인 작품의 일등 공신 

사실 이 작품에서 필리다 로이드의 연출이나 마크 톰슨의 무대보다도 더 압도적으로 관객을 흡인하는 요소는 따로 있었다. 거의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녀가 겪은 아픔이나 경험을 통해 성장하며 로큰롤의 여제가 되는 과정을 체화해서 보여준 배우 에이드리엔 워렌의 존재감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아직 깨닫지 못한 채 할머니의 조언을 따라 확신 없이 세인트루이스에 간 10대의 티나 터너부터, 거칠고 일방적인 아이크에게 맞서지 못한 채 끌려다니던 유약한 티나 터너, 아이크를 떠나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티나 터너, 아이크가 만들어낸 티나라는 정체성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며 강인해진 티나 터너, 그리고 로큰롤의 여제로서 관객의 사랑을 받는 티나 터너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티나 터너를 한순간도 부족함 없이 보여준다. 특히 공연의 마지막 콘서트장에서 티나 터너의 트레이드 마크인 사자머리를 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브로드웨이의 관객과 호흡하며 무대를 뛰어다니는 그녀의 모습은 신들린 듯했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1막과 2막에서 에이드리엔이 연기하는 티나 터너의 목소리가 굉장히 다르다는 점이다. 티나 터너가 아이크를 떠나고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자신의 색깔을 찾게 되는 과정을 움직임과 목소리로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티나 터너 역의 에이드리엔이 다른 인물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 작품의 포커스가 흔들리지 않고 티나 터너에게 맞춰지는 데에서도 중요하다. 게다가 작품에서 다른 인물들은 티나 터너만큼 명확하지 않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아이크는 정형화된 인물로 그려져 있고, 아이크 역을 맡은 다니엘 J 왓츠는 그 모습을 충실히 연기하며 티나 터너라는 인물을 더 강조해 준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이 주크박스 뮤지컬로서 깊이를 지닐 수 있었던 원동력은 창작진과 배우가 티나 터너라는 인물이 가진 어두운 과거를 피하지 않고 포용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과거를 피하지 않았던 것은, 작품을 만들어간 사람들이 티나 터너라는 인물의 인생이 품은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반 이상이 그저 즐거운 쇼비즈니스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여성 가수가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티나 터너가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찾았을 때 관객은 더 공감할 수 있고, 그만큼 그녀의 목소리에 더 환호할 수 있었다. 2019년 이 시점에서 로큰롤 여제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꽤 주효했다. 그런 의미로 <티나: 티나 터너 뮤지컬>은 앞으로도 주크박스 뮤지컬의 성공 사례로 한동안 회자될 수 있을 것 같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95호 2019년 1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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